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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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1 주일 오전예배 설교 ( 시편 18:1-3 / 나의 하나님을 아는 기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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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6-06-21 12:56 조회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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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동영상 링크 :https://youtu.be/4zIhyj4eWWA?si=MnF0sox5R09WC-3u


(설교요약)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매우 친밀하게 고백합니다. “나의 힘”,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의 하나님”, “나의 방패”, “나의 산성”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반복되는 중요한 표현은 “나의”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멀리 계신 분으로만 부르지 않고,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피조물인 인간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큰 은혜입니다.


1.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하나님의 낮아지심의 은혜입니다

“나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속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시간과 가정과 재물과 직분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와 관계를 맺어 주셨습니다. 친히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하시고,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자격이 없었습니다.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와 심판을 주님께서 받으시고, 죄의 값을 자기 피로 갚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자녀 삼아 주셨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십자가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로 주어진 놀라운 특권입니다.


2.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자의 고백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이”, “나의 방패”, “나의 산성”이라고 부른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이 아닙니다. 이것은 다윗이 실제 삶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시편 18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부른 노래입니다. 다윗은 오랜 세월 사울에게 쫓기며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시고, 산성이 되시며, 방패와 구원자가 되심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안다는 것은 단순히 감정 체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계시하신 하나님을 믿고, 삶의 자리에서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실제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 앞에서 준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이레를 경험했습니다. 모세는 아말렉과의 전투 가운데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시고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 닛시를 경험했습니다. 성도도 고난 중에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알고, 두려움 중에 나의 방패로 알며, 연약함 중에 나의 힘으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같은 시간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를 버리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3.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예배와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험한 뒤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반드시 예배로 흘러가고, 하나님을 경험한 믿음은 반드시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하나님을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기에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감사로 예배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알기에 삶을 맡기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기에 약속을 붙듭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막연하게만 아는 사람에게 예배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나의 피난처와 목자와 구원자로 경험한 사람에게 예배는 특권이 됩니다. 찬송은 억지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고백이 됩니다.


결론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게 될 것입니다. 천국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고백해야 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이 고백이 우리의 예배와 찬송과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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