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7 수요예배 설교 (마태복음 12:1-21 / 안식일의 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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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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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동영상 링크 :https://youtu.be/5-ncaIJBXQc?si=mlp6Iaxfyd-D8acg
(설교요약)
1. 안식일에 대한 교훈 (1-8)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벌어진 안식일 논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이유는 사람을 얽어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참된 쉼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영혼의 안식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배고픈 제자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만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신명기 23장 25절에 따르면 이웃의 곡식밭에서 손으로 이삭을 따는 것은 허용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와 배고픈 자를 배려하도록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만든 세부 규정에 따라 제자들의 행동을 추수와 타작으로 보고 정죄했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제자들의 배고픔을 보지 못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 없이 정죄할 거리만 찾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비난에 대해 두 가지 구약의 예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하던 중 배가 고파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는 진설병을 먹은 사건입니다. 성경은 이 일을 죄라고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이 사람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살리기 위함임을 보여줍니다. 둘째는 안식일에도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일했지만 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안식일에도 합당한 일이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고 제사가 드려지는 곳이었지만, 예수님은 성전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성전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그림자였고, 예수님은 그 실체이십니다. 성전의 제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완전한 제물이 되실 것을 예표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보다 크신 예수님과 함께 복음의 길에 있던 제자들을 바리새인들이 함부로 정죄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호세아 말씀을 인용하시며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배나 제사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명 없는 형식적 제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순종과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자비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외적인 형식과 내적인 생명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주일을 세상 일에서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하지만, 동시에 주일은 사람을 억누르는 날이 아니라 영혼이 살아나고 자비가 회복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제정하신 창조주이시며,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결정하실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바리새인의 전통이 안식일의 주인이 아니고, 사람의 해석이 안식일의 주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참된 안식을 바라보게 하는 그림자였고, 예수님은 그 안식의 실체이십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단지 육신이 쉬는 날이 아니라, 부활의 날이며 새 창조의 날이고, 말씀과 은혜와 생명을 받는 날입니다.
2. 안식일에 병을 고치심 (9-2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손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사람이었고,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생계의 어려움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한 도구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물었지만, 이것은 진리를 배우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도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건져내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고통 가운데 그대로 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주일은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는 날이 아니지만, 사랑의 수고를 멈추는 날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살리는 선한 일은 주님의 날에 합당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마른 손을 내미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그 손이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마른 손과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감추고 싶은 연약함, 오래된 상처, 메마른 심령, 기도하지 못하는 마음,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약함을 내어드릴 때 주님께서 고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치유 앞에서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 의논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시고 생명을 살리셨지만,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사람을 죽일 모의를 했습니다. 겉으로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마음은 살인으로 가득했습니다. 이것이 외식의 무서움입니다. 예배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비가 없고, 율법을 말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미워한다면 그것은 참된 경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모의를 아시고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아직 십자가의 때가 이르지 않았고, 그들이 복음을 받을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쓸데없는 다툼에 머물지 않으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을 나타내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하며 예수님을 오해하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사역은 사람들의 인기를 구하는 자기 과시가 아니라,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생명을 살리는 사역이었습니다.
마태는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택하신 종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다투지도 아니하시고 들레지도 아니하시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메시아입니다. 세속적인 왕처럼 힘을 과시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길을 통해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십니다. 연약하고 낙심한 자를 버리지 않으시며, 메마른 심령을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온유와 자비는 죄를 가볍게 여기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죄악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은혜 받을 때요, 지금이 주님께 나아갈 때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이방인들의 소망이 되었고, 본래 언약 밖에 있던 우리에게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힘이나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된 안식이시며, 우리의 구원이시며, 영원한 소망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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