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0 수요예배 설교 ( 마태복음 11:20-30 / 회개하고 주께 나아가는 자의 안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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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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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동영상 링크 :https://youtu.be/8lcIdNFOQjc?si=bEXD8Bs-L1OfZGi3
(설교요약)
본문은 무거운 경고와 은혜로운 초청이 함께 담긴 말씀입니다. 앞부분에서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는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을 책망하십니다. 그러나 뒤에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은혜롭게 초청하십니다. 겉으로 보면 하나는 심판의 경고이고 하나는 안식의 초청처럼 보이지만, 이 둘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안식은 회개 없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자는 자기 죄를 깨닫고 돌이키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많은 은혜를 보고 들었어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참된 안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1. 심판을 받을 도시들 (20-24)
예수님께서 고라신과 벳새다를 책망하신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의 권능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었습니다. 천국 복음을 들었고, 병든 자가 고침 받으며 귀신 들린 자가 자유롭게 되는 은혜의 현장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눈으로는 보았지만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고, 귀로는 들었지만 삶의 방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경고입니다. 말씀을 많이 듣고 예배의 자리에 오래 있었다고 해서 저절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 앞에서 내 죄를 깨닫고, 내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을 예로 드시며, 그곳에서 같은 권능을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더 큰 책임이 따릅니다. 말씀을 더 많이 들은 사람, 복음을 더 가까이서 들은 사람은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더 진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가버나움을 책망하셨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였고, 많은 권능과 은혜를 경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버나움의 문제는 무지가 아니라 교만이었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고도 낮아지지 않았고,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보고도 주님으로 모시지 않았습니다.
교만은 은혜를 은혜로 받지 못하게 합니다. 교만은 말씀을 들어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을 판단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는 사실로 안심하지 말고,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말보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그 은혜 앞에 낮아졌는지, 말씀 앞에 순종하고 있는지, 예수님을 참으로 나의 구주와 왕으로 모시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2. 예수님을 통한 진리와 안식 (25-30)
회개하지 않는 도시들을 책망하신 후,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의 비밀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은 세상의 지식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혜와 의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서 교만해진 사람을 뜻합니다. 반대로 어린아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은 교만한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주셔야 예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은혜이고, 죄를 죄로 깨닫고 회개하게 된 것도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아들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를 알 수 없고, 예수님을 떠나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은 막연히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생활의 짐, 가족의 짐, 건강의 짐, 관계의 짐, 장래에 대한 불안과 실패의 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무거운 짐은 죄의 짐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며,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우리를 몰아갑니다.
세상의 돈, 성공, 인정, 즐거움으로는 이 짐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잠깐의 기분 전환은 있을 수 있어도 영혼의 안식은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자격을 갖추고 오라고 하지 않으시고, 짐을 다 정리한 뒤에 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죄로 지친 자, 자기 힘으로 버티다 쓰러진 자, 마음이 피곤한 자를 그대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안식은 죄 사함에서 오는 안식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의 평안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의 쉼입니다. 예수님은 이 안식을 주시기 위해 우리의 죄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나아가는 자는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벗겨 주시는 것은 죄와 욕심과 자기 의의 무거운 짐입니다. 그리고 메게 하시는 것은 주님과 함께 걷는 순종의 멍에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볍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감당할 힘을 주시며, 우리를 생명과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지 못했던 완고함과 교만을 내려놓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 배우며, 주님의 멍에를 메고 순종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이 참된 쉼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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