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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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3 수요예배 설교 ( 마태복음 11:1-19 /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증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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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6-06-06 16:54 조회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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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동영상 링크 :https://youtu.be/tfcLQtN6XUE?si=Tvt8Em7pl8r3dsIX


(설교요약)  

 

1. 예수님과 세례요한 (1-15)

오늘 본문은 세례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거했고, 주님의 길을 예비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헤롯의 죄를 책망하다가 감옥에 갇혔고, 그 고난의 자리에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세례요한은 메시아가 오시면 즉각적으로 악을 심판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눈에 보이게 세우실 것이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헤롯을 당장 심판하지 않으셨고, 요한을 감옥에서 즉시 건져내지도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내가 기대한 방식대로 일하지 않으실 때, 믿음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오래 기도했는데 응답이 더디고, 의롭게 살려 했는데 오히려 고난이 깊어질 때, 우리도 세례요한과 같은 질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질문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자신이 하시는 일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 말씀은 이사야서에 예언된 메시아의 사역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이적은 단순한 육체의 치유만이 아닙니다. 모든 죄인은 영적으로 맹인과 같아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못 걷는 자와 같아 의의 길을 걸을 수 없으며, 나병환자와 같아 죄로 더러워져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와 같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된 죽은 자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죄인을 고치시고 살리시는 참 메시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답은 “내가 네 기대와 다른 방식으로 일할 수 있으나, 나는 분명히 약속된 메시아이며 지금 구원의 일을 이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어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오해 때문에 넘어지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간표보다 완전한 시간표를 가지고 계시며, 당장의 문제 해결보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더 큰 구원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참된 믿음은 내가 원하는 예수님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을 그대로 믿고 붙드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뒤, 예수님은 무리 앞에서 요한을 변호하셨습니다. 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론에 따라 움직이거나 사람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말씀을 바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부드러운 옷을 입고 왕궁의 안락함을 탐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왕의 죄까지 책망한 강직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일시적인 흔들림 때문에 그의 사명과 인격 전체를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은 한 번의 실수로 쉽게 판단하고 버리지만, 주님은 자기 백성의 연약함을 아시고 회개하는 자를 다시 세우십니다. 요한은 말라기 3장 1절에 예언된 사자였으며, 오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한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고 하셨지만,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세례요한이 구원받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신약 성도들이 더 충만한 계시의 빛 가운데 있다는 뜻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과 심판주로 알았지만, 십자가와 부활, 승천과 성령 강림을 온전히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구원의 성취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큰 빛을 받은 성도답게 더 분명한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천국은 침노를 당하며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받지만, 은혜 받은 사람은 무기력하게 살지 않습니다. 천국을 사모하는 사람은 죄와 타협하지 않고, 복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며, 말씀을 삶으로 순종하고, 고난 중에도 그리스도를 놓지 않습니다.


2. 시대의 죄악 (16-19)

예수님은 당시 세대를 장터의 아이들에 비유하셨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 아이들처럼, 그 세대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와서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외쳤지만 그들은 애통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죄인을 불쌍히 여기셨지만 그들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양심이 마비된 세대의 모습입니다. 책망을 들어도 회개하지 않고, 은혜를 받아도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말씀을 많이 듣지만, 말씀 앞에서 실제로 반응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을 들을 때 애통함이 있는지, 복음의 은혜를 들을 때 감사와 기쁨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영적으로 가장 위험한 상태는 모르는 것보다 알고도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례요한이 금욕적인 삶을 살며 회개를 전하자 귀신 들렸다고 비방했습니다. 반대로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시며 은혜롭게 복음을 전하시자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며 죄인의 친구라고 조롱했습니다. 결국 문제는 세례요한의 방식이나 예수님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완고한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회개하기 싫은 사람은 어떤 말씀을 들어도 핑계를 찾고, 믿기 싫은 사람은 어떤 증거를 보아도 비방거리를 찾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의 회개 사역도, 예수님의 복음 사역도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그 열매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예수님은 죄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사랑하셨고, 죄를 용납하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회개시켜 구원하시기 위해 가까이 가셨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 은혜로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내 기준으로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는 바리새인의 자리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책망 앞에서는 회개하고, 은혜 앞에서는 감사하며, 복음 앞에서는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내 기대와 다른 예수님 때문에 실족하지 말고, 더 큰 계시를 받은 신약의 성도답게 살며, 영적으로 무감각한 세대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죄로 눈먼 자의 눈을 여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가난한 심령에게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굳게 붙드는 성도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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