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3 수요예배 설교 ( 마태복음 9:18-38 /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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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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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uMHUK-CR3ig?si=MZUSJVlPalcUTBuA
(설교요약)
마태복음 8장과 9장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시고, 백부장의 종을 말씀으로 고치시며,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고, 귀신 들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며,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의 권세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질병과 귀신과 자연과 죽음까지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주님이십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의 주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죽어가는 딸을 위해 예수님께 나온 야이로,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 앞을 보지 못하던 두 소경, 귀신 들려 말하지 못하던 사람, 그리고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하며 방황하던 무리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 힘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들으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고치시고 살리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1. 믿음으로 고침 받은 사람들
회당장 야이로가 죽음 앞에 선 딸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회당장이라는 지위도, 사람들의 존경도, 아버지로서의 사랑도 딸의 생명을 붙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손을 얹어 주시면 딸이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믿음은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과 질병과 인생의 위기 앞에서 깨닫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절망 속에서도 주님께 나아가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는 길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졌습니다. 이 여인은 오랜 병으로 몸도 무너지고, 율법적으로 부정한 자로 여겨져 사람들과 예배의 자리에서도 멀어져 있었습니다. 가진 것도 다 허비했고, 인간적인 소망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옷 자체에 대한 미신적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만이 자신을 살리실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참된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크신 주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꾸짖지 않으시고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만 고치시는 분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시는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셔서 죽은 소녀를 향해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지만, 예수님께 죽음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소녀의 손을 잡으시자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죽음까지도 다스리시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성도에게 죽음은 영원한 절망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입니다.
이어 두 소경은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육신의 눈은 어두웠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시고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또 사람들이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왔을 때, 예수님은 그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주님께 나아오지만, 어떤 사람은 누군가의 기도와 사랑과 전도를 통해 주님께 나아옵니다. 우리는 연약한 자들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추수할 일꾼의 필요성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에는 말씀과 긍휼이 함께 있었습니다. 진리와 사랑이 함께 있었습니다. 교회도 이 길을 따라야 합니다.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복음을 분명히 전하며, 병든 자와 약한 자와 상한 자를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하며 기진했기 때문입니다. 양은 목자가 없으면 길을 잃고, 보호받지 못하고, 스스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교 지도자들은 있었지만 참된 목자가 없어 영적으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바쁘게 살아가지만, 영적으로는 목자 없는 양처럼 살아갑니다. 돈과 성공과 쾌락과 사람의 인정을 목자로 삼지만, 그것들은 참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여전히 추수할 것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이 많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와야 할 양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추수하는 주인이신 하나님께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동시에 “주님, 제가 그 일꾼이 되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완벽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긍휼을 품고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결론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랑과 긍휼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아픔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긍휼을 받은 사람으로서 목자 없는 양 같은 영혼들을 외면하지 말고, 기도와 사랑과 전도로 주님께 인도하는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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