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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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3 수요저녁예배 설교 (눅 17:11-19 / 감사하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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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11-13 21:21 조회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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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gMSq06LjdB4?si=TLee8zDVb6-SP-_g


누가복음 17장 11-19절 감사하는 자가 되라 


본문은 열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통해 고침 받는 내용이다. 그 중에 한 사람만 돌아와서 감사했고 나머지 아홉사람은 감사하지 않았다. 말씀의 요지는 문둥병자와 병 고친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감사하는 자와 감사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 교훈하는 것이다. 


11-13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에 한 동네에 들어가셨다. 그때 나병 환자 열명이 예수님을 보고 멀리서 소리를 질렀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다. 불치병도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주님께서 동네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소리를 지른 것이다. 당시에 나병은 불치병이고 하늘이 내린 천벌로 여겨졌다. 나병은 통증은 느끼지 못하는데 코와 귀와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무서운 병이다. 통증이 없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썩어서 떨어져 나갈지를 모른다. 이 병에 걸리면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는다. 모든 병자들은 가족이나 친척이 돌봐주고 위로해주고 치료해주는데 나병 환자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나병 환자들끼리 모여 살았다. 몸도 힘들지만 마음과 정신적으로 철저히 외면당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사람이 가까이 오려고 하면 "부정하다! 부정하다!" 소리를 질러서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 나병 환자가 가까이 오면 돌을 던져서 멀리 내쫓았다. 그래서 나병 환자가 예수님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 소리를 쳤다.

우리식으로 하면 기도를 한 것이다. 주님께 병을 고쳐달라고 부르짖은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들어셨다. 


14절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아직 병이 나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열명의 나병 환자들이 예수님에게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이 말씀의 의도를 알았던 것 같다. 율법에 의하면 피부에 반점이 나거나 희게 되면 제사장에게 가서 진단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병이 나았을 때에도 제사장에게 가서 진단을 받고 완치되었다는 것을 인정 받아야 했다. 이런 내용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신 것은 병을 고쳐주실 것을 전제로 말씀하신 줄 알고 제사장에게로 갔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고침 받을 것을 기대하고 순종하여 제사장에게 가는데, 가는 중간에 고침을 받았다.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이다. 병 고침을 받은 것이다. 

이들은 믿음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주님께 부르짖은 것을 봐도 믿음이 있는 것이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도 믿음이 있는 것이다. 부르짖은 것 자체도 놀라운 믿음이고, 순종해서 제사장에게 간 것도 놀라운 믿음이다. 그들이 은혜를 받고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다.

성경에 보면 이적을 베푸실 때 순종의 행위가 있었다. 홍해 바다를 가를 때,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순종을 요구하셨다. 가다가 고침 받고 깨끗함을 받았으니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을까? 뛰면서 울면서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병이 다 나았다면서 좋아했을 것이다. 불치병을 앓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나 고쳤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렇게 좋아하다가 아홉 사람은 제사장에게 보이고 집으로 갔고, 한 사람만 주님께로 돌아왔다. 


15-16절

열 사람을 다 고쳐주었는데 돌아와서 감사한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다. 감사가 영광 돌리는 일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면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나머지 아홉 사람은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보면서 주님께서 참 섭섭해 하신 것 같다. 


17절

한 사람이 돌아와서 큰 소리로 외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예수님 발 아래 엎드려서 감사했다. 병이 다 나았으니 주님께 가까이 나올 수 있었다. 감격스럽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머리를 조아리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뜨겁게 감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만 그렇게 감사했고 나머지 아홉 사람은 감사하지 않았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 아홉이라고 하셨다. 아까 부르짖었던 열 사람 중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아까 병 고쳐달라고 호소하고 간구하던 열 사람 중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고침 받은 그 아홉 사람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아홉 사람도 똑같이 기적을 체험하고 병 고침을 받았다. 그런데 감사하지 못했다. 고침을 다 받고 은혜는 다 받고 깨끗해지기는 했는데 감사하지 못했다. 

이 아홉 사람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돌아보게 만든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문둥병자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힘으로 도저히 씻을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죄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죄 때문에 저주 받고 쫓겨나야 되고 죽어야 되고 부끄러움을 당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은혜로 죄사함받고 의롭다 함을 얻고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리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배당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찬송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가? 아홉 사람이 은혜를 받지 않아서 감사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기적을 똑같이 경험했다. 그런데 감사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기도도 하고 순종도 하고 부르짖기도 하는데 감사를 하지 않는다. 

실제로 살다보면 문둥병자와 같이 병이 드는 때가 있다. 심각한 병이 들어서 병원에 누워있을 때, 치료받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정말 신실하게 기도할 것이다. 한번만 고쳐주시고 살려주시면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시고 병을 고쳐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다 나은 다음에는 감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업하다가 실패할 때에도 그럴 때가 있다. 너무 큰 어려움을 당해서, 죽을 위기에 처해서 부르짖는다. 한번만 도와주시면 은혜 주시면 선교도 하고 봉사도 하고 주를 위해서 몸 바쳐 살겠다고 해놓고서는 회복된 후에는 바쁘다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

아홉 사람에게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제사장에게 보인 다음에 빨리 가족에게 돌아가고 자녀들도 만나고 싶고 할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됐건 주님께서 속상해 하셨다. 안타까워 하셨다. 주님은 감사하는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신다. 감사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아홉 사람의 마음에 감사한 마음이 있었을까?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주님을 섭섭하게 했는가?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지 않고 표현을 하지 않고 고백을 하지 않으니 전달이 안되는 것이다. 

감사는 표현해야 한다. 표현하지 않는 감사는 쓸데 없다. 마음 속에 아무리 감사가 넘쳐도, 아무리 고마운 마음이 목에 가득 차 있어도 감사하다고 표현하지 않으면 쓸데 없다. 감사는 표현해야 감사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10)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신다. 그런데도 입으로 시인하라고 하셨다. 그래야 구원에 이른다고 했다. 감사도 표현해야 한다. 표현하지 않는 것은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경은 늘 표현하라고 교훈한다.

이 한 사람은 주님께 부리나케 달려와서 큰 소리로 부르짖고 엎드려서 감사를 표현했다. 주님께서 이것을 얼마나 기뻐하셨겠나! 우리도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 감사 헌금도 드려야 한다. 표현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다. 


18절

아홉 사람과 한 사람을 비교하면 돌아와서 감사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했다(16절). 18절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자가 없느냐고 했다. 나머지 아홉 사람은 유대인이었던 것 같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멸시하는 사람들이다. 상종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마리아 지역에는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는다. 시원찮게 생각하고 이방인을 개처럼 취급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돌아와서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런데 나머지 사람들은, 유대인들은 감사하지 않았다. 이들은 성경을 많이 배웠다. 어려서부터 율법을 배웠다. 가장 먼저 배우는 율법이 레위기이다. 당시에는 제사 종류가 많았고, 제물도 다양했고, 방법도 다양했기에 제사에 대해서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 이 모든 제사의 핵심이 감사이다. 그리고 구약에 절기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만 지키지만 구약에는 절기가 아주 많았다. 절기의 핵심도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유월절은 애굽 해방 감사, 맥추절은 추수 감사, 초막절은 광야 40년 은혜 감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마다 감사를 배우고 또 배웠지만 실제로 감사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가? 성경을 배워서 너무너무 잘 알고 있고, 말씀은 배워서 익숙하고, 예배는 잘 드리고, 기도는 많이 하는데, 감사도 그렇게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감사는 잘 하지 않는다. 

은혜를 구할 때에는 같이 구했다. 도와달라고 할 때에는 같이 부르짖었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크게 외쳤는데 감사를 할 때에는 구분이 되었다. 아홉 사람은 집에 가고 한 사람만 주께 돌아와서 감사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기도제목이 하나이다. 애굽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서 구원하셨다. 자유함을 얻고 구원을 받았다. 이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영광 돌리면서 살아야 되는 자리에 섰다. 그런데 감사하지 못하고 끝없이 원망했다. 물이 없다고 원망하니 반석에 물을 내주고 먹을 것이 없다고 하니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고기가 없다고 하니 메추라기를 먹여주셨다. 그런데도 왜 자기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서 광야로 보냈냐고 불평한다. 애굽이 더 좋았겠다는 말을 한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조금만 힘들어도 괜히 예수 믿었다고 불평한다. 은혜를 다 발로 차버리는 어리석은 모습이다.

이 아홉 사람은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님께서 지금 아홉 사람을 찾고 계신다. 우리 교회 안에는 없겠는가?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세상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많다. 헐벗고 사는 사람이 많다. 노숙자들도 많다. 지금도 하루 세끼를 먹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병이 났는데 고칠 방법이 없어서 죽어가는 자들이 많고 전쟁으로 갑지가 죽는 자들도 많다.

그런데 우리는 평안하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지내고 있다. 이것이 감사해야 될 이유이다. 그렇게 감사하며 하나님께 찬송하며 영광 돌리며 살아가야 하겠는데 우리에게 감사가 다 사라졌다. 너무너무 은혜가 메마르고 감사가 사라지고 감사에 인색하다. 반면에 원망 불평은 늘었다. 감사할 일을 가지고 원망할 때도 참 많다. 


19절

돌아와서 감사한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감사하다가 더 큰 복을 받았다. 나병을 고침 받은 것도 크게 감사할 일이다. 놀라운 복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육신의 병을 고친 것 뿐이다.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복이 구원 받는 것이다. 구원은 영원한 것이다.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는 것이다. 주님은 감사하는 사마리아 사람을 칭찬하시면서 기뻐하시면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감사하는 믿음이다. 우리도 이와같이 감사를 늘 표현하고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다.

“[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시 69:30~31)

감사하는 것이 소를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를 더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를 드려야 될 때에는 소를 드려야 한다. 제사를 드릴 때에는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 믿음도 없이, 감사하는 마음 없이 소만 잡아 죽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영광을 올려드려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이다. 돈이 없어서 소를 못드려도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면 소를 드리는 것보다 더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23)

예배드릴 때에는 감사로 드려야 한다. 억지로 마지 못해 드리면 안된다.

우리가 날마다 감사해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감사의 절기를 주셨다. 이 날만은 잊어버리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라는 것이다. 추수감사절에도 감사를 하지 못하면 언제 감사하겠는가? 평소에도 감사해야 되겠지만 감사절에는 더 특별히 힘을 써서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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