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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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3 수요예배 설교(히브리서 4장 14-16절/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 김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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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8-23 21:05 조회4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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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R8xhZl6_qIo 


14절에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라고 했는데, 오늘 말씀의 제목이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입니다. 

당시 히브리서의 청중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 성도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유대교인들에 의해 심한 박해를 받았고, 개중에는 다시 유대교로 돌아간 자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고, 용기와 힘과 위로를 주기 위해 히브리서를 기록했습니다. 이들은 본래 유대교 신자들이기 때문에 구약의 율법과 의식이 너무나 익숙했습니다. 율법과 의식은 그들의 삶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에게 익숙한 율법의 개념으로 복음을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을 설명하고,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강조하므로써 유대인 성도들을 이해시키고 복음을 굳게 붙잡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우리에게 대제사장이 계신다! 너희들이 알고 있는 대제사장과는 차원이 다른 훨씬 더 크고 위대한 대제사장이시다! 

인간 대제사장은 말 그대로 큰제사장이고 위대한 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당대에 오직 한 사람만 대제사장으로 뽑혔습니다. 제사장의 직분만 해도 너무나 영광스러운데, 대제사장은 그 제사장들 중에서도 대표입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전체,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대표하는 위대한 자입니다. 오직 대제사장만 1년에 단 하루 대속죄일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여 양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언약궤를 덮고 있는 속죄소 네 뿔에 피를 바르므로 모든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거룩한 일을 행했습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은 그 누구보다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모든 백성들에게 본이 되는 경건한 성도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도 죄사함을 받아야 되는 죄인일 뿐입니다. 자신도 구주가 필요한 죄인이었습니다. 모든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거룩하고 존귀한 일에 쓰임을 받았지만 자기 죄에 대해서도 피의 속죄제사를 드리고 나서야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연약한 죄인 중에 한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인간 대제사장과 구별되는 더 크고 위대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씀합니다. 인간 대제사장이 사람 중에서는 가장 훌륭하고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대제사장과 구별되는 유일하시고 가장 거룩하시고 가장 위대하시고 가장 존귀하신 큰 대제사장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큰 대제사장이 되실 수 있습니까?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늘이 구체적으로 어디를 말하는 겁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우편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히 8:1) 

“큰 대제사장과 승천” 즉 예수님이 하늘나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은 것을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제사장 되시는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을 완성하신 것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대제사장은 일년에 딱 하루,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전체를 구속하는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지성소를 지극히 거룩한 장소로 특별히 구별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가 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은 일년에 딱 하루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는 짐승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러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큰 대제사장 예수님은 친히 속죄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그 피로 구속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이 계신 진정한 지성소인 하늘나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간 대제사장과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더 큰 대제사장이신 것입니다. 왜 주님이 큰 대제사장이신지 “승천하셨다”는 한가지만으로도 충분하게 설명되었습니다. 

그런데 위대하시고 크신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피로 모든 택한 백성들의 죄를 구속하시고 영원한 지성소로 들어가신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더욱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는 말씀 안에 임마누엘의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하나님의 율법적 요구를 완전히 순종하시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죄인들이 받아야 될 죄의 형벌과 저주의 죽음과 지옥의 고통을 대신 받아주셔서 속죄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성육신의 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이 내용을 5장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7~9) 

7절 맨 앞에 예수님께서 "육체에 계실 때"를 말하는데 주님의 성육신 생애 전체 기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 즉 하나님께 심한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올려드렸다고 했습니다. 

“심한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이라는 표현을 볼 때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십자가를 앞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육체에 계실 때"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이런 기도를 드리신 것이 한번 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일평생 심한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으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기도의 응답을 받으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기도응답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8절) 그는 아들이셨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고난 받으심으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9절에 "온전하게 되셨은즉"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불완전하신데 순종하시므로 온전하게 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죄가 전혀 없으신 완전히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한마디로 온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온전하게 되셨다"고 말한 것은 인간의 삶을 사시면서 평생에 걸쳐 완전한 순종을 이루시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자들이 온전하게 되는 근거를 마련해주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완전한 경건과 완전한 순종을 이루셨기 때문에, 주님의 순종과 대속의 죽음이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켜서 부활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기도하심으로 죽음에서 구원받아 부활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유대교의 박해가 심하다 할지라도, 유대교로 돌아가라는 유혹과 시험이 극심하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말고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힘주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기독교에 대한 박해와 조롱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는 일어나고 있지 않지만 백여년전에, 수십년 전에 이 땅에서 믿음 때문에 목숨을 잃고 온갖 핍박과 고난을 겪어야 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세계 여러 곳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죽임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고문 당하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행처럼 번지는 일이 영화나 드라마 안에서 기독교와 목사와 성도들이 범죄자로 사기꾼으로 미친사람들로 묘사되어 기독교를 비정상적이고 악한 집단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합니까?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우리의 큰 대제사장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늘 지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우리를 지켜 보호해주시고 계십니다. 주님이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성육신과 순종과 고난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하신 진리를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15절을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모르시지 않고, 사랑과 긍휼이 충만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33년간 우리의 똑같은 사람으로서 인생을 사셨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습니다. 

개역성경에서는 "동정"을 "체휼"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체휼이라는 단어를 평상시에 잘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단어이기 때문에 개역개정에서는 "동정"이라는 단어로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동정"의 원어인 "쉼파데오"라는 말이 "동정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의미적으로 "동정"이라는 번역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목사님들은 "체휼"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합니다. "체휼"의 사전적 의미는 "처지를 이해하여 가엾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체휼"의 한자를 보면 체는 몸 체 자이고, 휼은 마음 심 변에 피 혈자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한자의 의미를 담아서 표현하자면 몸과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되 피흘리듯이 아파하신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되 피흘리기까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이처럼 잘 표현하는 단어가 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체휼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십니다. 우리가 연약함으로 인해 당하는 모든 아픔, 병으로 인한 아픔, 경제적 아픔, 가정적 아픔, 우리가 지혜가 부족해서, 능력이 부족해서 당하는 모든 아픔을 체휼하십니다.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라”고 했는데, 이중부정은 강한 긍정입니다. 주님은 절대적으로 너무나 확실하고 분명하게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가장 동정하시는, 우리의 아픔과 슬픔과 괴로움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의 대제사장이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닌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연약함을 가장 깊게 체휼하실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5절 끝에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이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으로 성육신 하셨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죄인들과 똑같은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받는 모든 종류의 시험, 우리가 인생 동안 당하는 모든 범주의 시험을 모두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시험이 없으셨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셨기 때문에 모든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육체는 시험 받으실 수 있고, 시험에 넘어질 수 도 있는 육체였습니다. 예수님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시험이 통과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음식을 드시지 않으면 배고프시고, 물을 마시지 않으면 목마르시고, 잠을 주무시지 않으면 졸리시고, 많이 걸으시면 다리가 아프셨습니다. 예수님도 무시와 조롱을 받으면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체만 사람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과 생각도 사람이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시험당하실 수 있는, 배가 고프시고, 명예 영광을 바라실 수 있는 몸과 마음을 가진 완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당하신 시험의 종류에 대해서 다 기록하고 있지 않아서 그렇지 오늘 말씀대로 예수님은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다고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온갖 시험을 다 당하셨지만 시험에 넘어지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연단의 시험도 잘 통과하셨고, 마귀가 주는 유혹의 시험도 잘 통과하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이 죄가 없으셨기 때문에 죄인들을 위한 대속 제물이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죄하심에 대해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동안 전혀 죄를 짓지 않으시므로 흠없는 속죄제물이 되실 수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될 사실은 주님은 죄를 짓지 않으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완전히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14문 "죄가 무엇입니까?"

답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 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짓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불완전한 자들을 위한 완전한 분, 죄인들을 위해 죄 없는 분으로 죽으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에 요구되는 완전한 순종의 삶을 살아내셨습니다. 이를 가리켜 대형대행이라고 부릅니다. 

이 예수님이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복음 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부분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다 아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는지, 얼마나 슬퍼하고 아파하고 있는지 다 아십니다. 부모도 자녀도 가족도 친구들도 믿음의 동역자들은 모를 수 있지만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십니다. 우리를 피 흘리기까지 체휼하십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전능하신 창조주이시고, 사랑과 은혜가 무한하신 구원주이십니다. 이 진리를 믿는 자,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사랑과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절대주권을 믿는 자는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 중에 당하는 모든 사건들은 전능하시고 사랑이 무한하신 주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시는 과정입니다. 우리 중에 아직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을 경험해본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끝났다! 이제 소망이 없다! 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이 모든 것이 과정이다! 나를 연단하시는 과정이다! 주께서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올 것이다! 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는 자! 예수님이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는 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우리는 연약해서 주님의 긍휼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큰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우리를 대신해서 지성소에 들어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죽으실 때 지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았던 죄와 죽음의 장막이 완전히 찢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데 가로막는 것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왔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주님의 긍휼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이 시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 말씀과 찬양과 기도를 통해 은혜의 보좌에 앉아계신 주님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십자가 보혈을 가지고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을 굳게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큰 대제사장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체휼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을 의지해서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배시간 말씀과 찬송과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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