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2 주일오전예배 설교 (골로새서 1:24-29 / 괴로움을 기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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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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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OIT3VMiw0ck?si=9g8OHTsJOAD81EUC
골로새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기록한 것으로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일평생 동안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다가 결국은 순교를 당했습니다. 바울은 괴로움을 기뻐하고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우겠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어떻게 괴로움이 기쁠 수 있는가?’ 생각이 들 것입니다. 괴로움을 참는 것도 쉽지 않은데 바울은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남을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더 많은 고난을 당하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왜 괴로움을 기뻐했을까요? 왜 더 많은 고난을 당하겠다고 했을까요? 오늘은 그 내용을 살피겠습니다.
1. 몸된 교회를 위하여
바울이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한 것은 그 괴로움이 ‘너희를 위한 괴로움’ 즉 골로새 교회를 위한 괴로움이기 때문입니다(24절). 교회를 위한 고난이라면 적극적으로 당하겠다는 것입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우리를 구원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받으실 때 완전히(100%) 죄값을 다 치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어떤 고난을 더 당해야 한다든지, 인간이 무슨 공로를 세워야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성도가 주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 당하는 고난입니다. 주님 말씀을 순종하면서 당하는 고난이고, 복음을 전하면서 당하는 고난이고, 다른 성도를 섬기면서 당하는 고난입니다.
바울은 이런 고난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고난을 자신이 적극적으로 당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삶의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바울이 전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고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교회를 위하여 일하지 않았으면, 핍박도 당하지 않고 감옥에도 갇히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 복음을 전하며 고난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고난을 기뻐했습니다. 바울은 주님이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가 주님의 몸임을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골 1:18, 엡 1:22-23). 즉 주님과 교회는 하나이며 생명적 연합관계에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사는 것이 곧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임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을 위해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바울은 일생 동안 교회를 위하여 살았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위하여 말씀을 가르치고,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하다가 결국은 교회를 위하여 죽었습니다. 그것이 주님을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위한 삶이 주님을 위한 삶이고 주님을 위하여 살려면 교회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고난 당하는 것이 복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일하면 예수님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고난받으면 주님을 위해 고난받는 것입니다.
2. 복음의 비밀을 위하여
23절에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바울은 자기가 복음의 일군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복음의 일군이라는 소명 의식이 충만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고 죽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그의 전부였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바울은 자기가 교회의 일군이라고 말합니다(25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바울이 한평생 복음 전도자로 살았던 것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만 복음의 일꾼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복음의 일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이며 동시에 복음의 일꾼으로 삼기 위함입니다. 우리도 내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26절에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께서 감추셨던 비밀이 있는데 그 비밀이 성도들에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밀이 우리 성도들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이 비밀을 성도에게 알리신 이유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은 우리는 그 비밀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27절). 예수님이 비밀이고 복음이 비밀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입니다. 하나님이 감추어 두셨다가 신약에 보여주신 비밀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메시아로, 구원자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우리 성도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굉장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죽을 사람 살리는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지옥 갈 사람 구원하는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체 말고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의 소망이라고 말합니다(27절). 예수님을 통해서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하 인간에게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주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세상을 향해 예수님을 전파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오직 교회밖에 없습니다. 만약 교회가 예수님을 전하지 않는다면 세상에는 구원이 사라질 것입니다. 주님은 영혼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지금은 교회를 통해서 이 일을 계속하기를 원하십니다.
3.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8절에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바울은 사역의 목표를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것에 두었습니다. 각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할 뿐 아니라, 이렇게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서 주님의 인격과 형상을 닮아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각 사람’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각 사람을 가르치고” “각 사람을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권면해서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구원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구원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와 성장도 개인적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성장하고 변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변하고 성장하는데 나만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그것은 안 될 일입니다. 여기 ‘완전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숙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냥 착한 사람이 아니고 전보다 좀 나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골로새서 1:22에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우리는 완전한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더 성장해야 하고 더 변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완전한 자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나의 인격과 속 사람이 변해서 예수님 닮은 거룩한 사람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변화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변화되면 내가 이제까지 누리고 있는 것을 다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합니다. 자기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을 들으면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말씀을 들어야 변화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합니다.
갈라디아서 4:19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는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일은 한순간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것은 순간적입니다. 그러나 자라나는 것은 평생을 거쳐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닮아서 온전하고 성숙한 인격자가 되는 것은 평생을 통해서 이루어야 할 숙제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은 교인들을 양육하는 수고를 해산의 수고에 비유했습니다. 여인들에게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 해산의 수고입니다. 지금은 의학이 발달해서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힘들고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죽을 것 같이 힘들고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수고의 과정을 거쳐서 새 생명이 태어납니다.
29절에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힘을 다한다는 말은 모든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수고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힘만으로 일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서 힘을 다해 수고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복음을 전하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교회 일을 하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고난도 이겨내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사람을 변화시켰습니다.
바울은 괴로움을 기뻐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기쁨을 아십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일하는 기쁨을 아십니까? 복음을 전하여 한 영혼 한 영혼이 구원받게 될 때의 그 기쁨을 아십니까? 말씀을 가르쳐 변화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바울은 이 기쁨 때문에 교회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을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겠다’고 했습니다. 해산의 수고를 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런 기쁨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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