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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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8 수요저녁예배 설교 (히브리서 11:1-7 / 믿음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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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11-08 21:40 조회4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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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rxPkYAjcyLk?si=Pe4eIQ1fY6XMM23g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부른다. 믿음이 무엇인지,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믿음에는 대상이 있다. 아무 것이나 믿는다고 믿음이 되지 않는다. 대상을 바르게 정해서 바르게 믿어야 참 믿음이다. 우상을 숭배하든지 헛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것을 바른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한마디로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 이것이 기초요 출발이다. 하나님을 믿어야 참 믿음이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하는가? 하나님이 살아계신 참 신이시기 때문이다. 우상들은 참 신이 아니다. 예배 드리면 받아주고, 기도하면 받아주는 참 신이 아니다. 그래서 우상 숭배는 헛것이고 무익한 것이다.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렘 10:10)

하나님은 한분 밖에 계시지 않는 참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생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다스리고 주관하시며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혼자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 것은 맹신이고 자기의 신념, 의지는 될 수 있지만 참 신앙은 아니다. 참 신앙에는 대상이 있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참 신앙이다.

“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신 4:39)

온 우주 공간 전체, 온 세상에 오직 여호와만 하나님이시고 다른 신은 없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만 믿어야 한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씀한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구속하셔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구원자의 역할을 하신다. 

또  하나는 믿음의 근거이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믿는가? 근거는 성경 말씀이다. 성경에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말씀을 근거로 믿는 것이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히 11:3)

온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어떻게 아는가? 말씀을 믿음으로 아는 것이다. 신앙은 말씀을 근거로 믿는 것이다. 불신앙은 보아야 믿겠다고 한다.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세상 지식은 그렇게 얻는 것이다. 성경은 언제나 말씀을 근거로 해서 믿음을 가진다고 말씀한다. 믿음과 말씀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말씀 없이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믿음은 언제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믿음 생활을 잘 하기 원하면 말씀을 잘 배우고 말씀을 잘 순종하면 믿음이 자라나고 건강해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천국과 지옥,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근거로 믿는다. 말씀이 없이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믿음은 기분, 생각, 신념이 아니다. 말씀을 믿을 때 말씀이 믿음을 주는 것이다.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바라는 것이 뭘까?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고 잘 되는 것이 아니다. 내 개인적 소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바라는 것이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 속에 있는 내용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믿고 소망하면 그 말씀이 실상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헛된 것을 바라고 소망하며 산다. 전혀 믿을 수 없고 믿어서도 안되는 헛된 것을 바라본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소망하며 살면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고 말씀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은혜 충만한 가운데 살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바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구약시대 모든 선진들, 구약 모든 성도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를 바라보며 소망했다. 짐승제사를 드릴 때 그리스도의 구속을 바라보며 제사를 드렸다. 

이처럼 바라보고 바라보았는데 예수님이 실제로 오셔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셨다. 실상이 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되었다.

1-10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수없이 배웠다. 천사보다, 모세보다 위대하시고 십자가에서 영원한 단번 속죄를 드려주신 예수님을 배웠다. 그렇게 믿고 바라던 예수님이 오셔서 실상이 되셨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주셨다. 아브라함은 성경에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었는데 그 그리스도가 오셔서 실상이 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약속해주셨는데, 그 가나안 땅을 소망하며 바라보았더니 실제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것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된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을 바라보았다. 노아는 홍수가 있기 전에 홍수가 있을 것을 바라보았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려주실 것을 믿음으로 여리고성 주위를 돌았다. 


2절

구약시대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다가 증거를 받은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히 11:39)

신앙의 선진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다.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소망하며 산 사람들은 믿음의 증거를 받았다. 그 증거가 히브리서 11장에 가득 나타나있다. 우리도 말씀을 믿고 따라가야 한다. 그러면 증거가 나타날 것이다. 


3절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믿음으로 안다. 하나님이 엿새동안 천지를 지으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말씀으로 아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장조를 성경에 기록해주셨기 때문에 말씀을 믿음으로 아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내가 봐야 믿겠다. 실험해보고 증명해보고 믿겠다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말씀으로 아는 것이다.

보이는 현실세계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온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 말씀의 능력을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강하고 힘있고 능력이 있는지 말씀만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굉장한 권세와 능력이 말씀 속에 있다. 우리도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4절

아벨의 믿음에 대해서 설명한다. 두가지를 강조한다. 첫째는 "믿음으로 아벨은"이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도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의 제사를 받아주시지 않았다. 가인과 아벨은 믿음의 차이였다.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다. 아벨은 하나님을 믿었다. 아벨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제사를 드렸다. 믿음 없이 제사를 드렸다. 그 제사는 헛된 것이다.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으셨다.

믿지 않는 사람이 찬송가를 연습해서 아주 멋드러지게 찬송을 하면 하나님이 그 찬송을 받아주실까? 그 찬송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찬송이 될 수 없다. 믿음이 없는 자가 예배당에 앉아 있다고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기도할 때에도 믿음으로 드려야 한다. 믿음 없이 말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다. 가인은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다. 시키니까 억지로 드린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믿음이 중요하다. 믿음 없이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

둘째는 예물이 달랐다. 둘 다 아담의 후손이다. 가인과 아벨 모두 죄인이다.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인의 성품을 갖고 살았다. 행위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다른 점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예물이 달랐다.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창 4:3~4)

가인은 곡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아벨은 양의 첫새끼와 기름으로 예물을 드렸다. 예물이 분명히 달랐다. 가인은 땅에 소산으로 드리면서도 첫것을 드리지도 않았다. 그냥 형식을 갖추어서 곡식으로 제사를 했다. 아벨의 제사는 양의 첫새끼와 기름을 드렸다. 양을 잡아 피를 뿌리고 불로 태워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알려주신 제사법과 일치한다. 이것을 아벨이 고안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알려주신 것을 들었을 것이다.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이 편리하게 자기 하고 싶은대로 제사를 드렸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죄가 가려지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아벨이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한 것이다.

하나님이 아벨도 받으시고 그 제물도 받아주셨다. 그리고 그를 의로운 자라고 인정해주셨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것이다. 구약의 모든 자들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가인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임의대로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가인도 받지 않으시고 그의 제물도 받지 않으셨다.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 4:5)

하나님이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 제물을 받으시면서 아벨 자체를 받으셨다.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 제사를 거부하시면서 가인이라는 사람 자체를 거부하셨다. 제사, 예배가 거부되면 그 사람 자체고 거절당한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한 것이다. 얘배를 드리면 하나님이 받아주시는데 사람을 같이 받아주신다.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예배의 중요성을 모른다. 아무튼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했고 바른 제물을 드려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예물에 대해서 증언하시고 아벨을 의로운 자라고 인정해주셨다. 


5-6절

에녹의 믿음이다. "믿음으로 에녹은" 에녹은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의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이다. 그는 이세상을 살다가 죽지 않고 산채로 하나님께로 옮겨졌다. 놀라운 일이다. 세상에 살던 사람이 하늘나라로 죽지 않고 들어갔다.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 5:24)

하나님과 에녹이 뜻과 마음이 맞아서 300년간 함께 동행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였기 때문에 그와 동행해주신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만 자꾸 하는데 동행하고 싶겠나? 하나님께서 늘 죄만 짓는 사람과 어떻게 동행하겠는가? 죄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고 원수되게 만든다. 에녹이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늘 함께 해주셨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요 8:29)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혼자 두지 않고 늘 함께 해주셨다. 왜 함께 해주셨는가? 예수님이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기 때문이다.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니까 떠나지 않으시고 늘 함께 해주셨다. 창세기를 보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결혼하여 자녀를 양육한 상태였다. 300년간 일도 했을 것이다. 일상생활을 다 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했다. 참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아무튼 에녹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했기 때문이다. 

에녹이 죽지 않고 산 채로 천국에 들어간 것은 성도가 천국에 갈 것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도의 육체가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갈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7절

노아의 믿음이다. "믿음으로 노아는" 장차 홍수로 온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아직 보이지 않는 일이다. 지금 비가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때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했다. 이것이 믿음이다. 먼 훗날 물로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믿고 방주를 예비했다.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말세에 불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다. 우리가 이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심판에 대비해야 한다. 

노아는 온 세상을 뒤 엎을 전세계적인 홍수가 임할 것을 믿었다. 어떤 사람들은 홍수가 지엽적, 부분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홍수는 지구 전체를 덮은 홍수이다. 그래서 온 세상 사람, 코로 숨쉬는 모든 생물이 다 죽었다. 오직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가족들만 살았다.

방주는 노아가 연구해서 생각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고 알려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방주를 만들었다. 노아의 방주는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온 세상이 멸망당하는 최후 심판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그리스도만 구원자이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실 분이시다. 노아가 방주를 짓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섬기고 말씀 순종하며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

구원에 있어서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는다. 방주를 짓고 방주에 들어간 자만 살았다. 돈, 권세, 선행 여부가 중요하지 않는다. 방주에 들어갔는가! 이것이 중요하다. 마지막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믿지 않는가? 이것이 구원을 결정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 밖에 있으면 멸망 당한다.

노아가 방주를 열심히 짓고 있는 것이 세상을 정죄하는 것이다. 노아가 말로 너희를 정죄한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것이 불순종하는 자들을 정죄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정죄가 된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불신자들을 정죄하는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본이 된다. 노아는 그렇게 살았다.

11장에 언급된 모든 사람들은 믿음으로 산 사람들이고 믿음으로 살아서 증거를 얻었다. 우리도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살면 말씀이 이루어질 때 우리 앞에 증거로 나타나고 실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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