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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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5 주일오전예배 설교 (전도서 7:13-14 / 형통한 날 곤고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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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11-05 16:56 조회4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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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0XTJuySLnTQ?si=xFI49qVb2XBa6BNU


전도서는 삶의 지혜를 교훈합니다.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형통한 날도 만나고 곤고한 날도 만납니다.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오르막길이 있고 내리막길이 있습니다. 건강할 때가 있는가 하면 병들어 고통당할 때가 있고, 성공할 때가 있는가 하면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한 부분, 한순간만 잘라서 보면 안 됩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봐야 ‘이때가 형통한 때였고, 이때가 곤고한 때였구나’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이렇게 인도하셨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형통한 날을 사는 지혜도 필요하고 곤고한 날을 사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1.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라

1)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13절).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주권으로 인생의 모든 것을 주장하십니다. 하나님은 최고 권위자이시며, 세상 모든 일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십니다. 지구상에 80억 인구가 있는데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다스립니다. 예레미야 10:23에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잠언 16:9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2)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13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이 다 알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합니다. 욥기 23:13-14에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전도서 3:14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습니다. 하나님이 해놓으신 일은 사람이 하나도 변경시킬 수 없고 하나님이 하신 일에 더할 수도 없고 덜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절대 주권을 가지고 행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을 깨닫고 경외할 뿐입니다.


2.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심

14절에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무슨 뜻입니까? 형통할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평생 동안 형통함만을 누리며 사는 자도 없으며, 일평생 동안 곤고한 일만 당하며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형통과 곤고함을 골고루 겪으면서 살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두 번 착각한다고 합니다. 형통할 때 계속 형통할 것으로 착각하고, 반대로 곤고할 때 계속 곤고할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왜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셨을까요? 곤고한 날은 없고 형통한 날만 계속되면 더 좋지 않을까요? 만약 낮만 계속되고 뜨거운 태양만 비취면 이 땅은 사막이 됩니다.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반대로 밤만 계속되면 어둡고 추워서 살 수 없습니다. 또한 형통한 날만 계속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교만해집니다. 무슨 짓을 해도 잘되기만 한다면 그 사람은 절대 방탕하고 타락합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믿음으로 살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곤고한 날만 계속된다면 대부분은 다 낙심하고 절망할 것입니다. 이사야 45:7에 “나는 빛도 짖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1) 곤고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곤고할 때 범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역대하 28:22에 보면 아하스 왕은 곤고할 때 더욱 범죄하다가 아주 망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고 내 생각과 고집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모르면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곤고한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셨음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형통하다고 늘 형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오늘 곤고하다고 앞으로 계속 곤고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것을 안다면 아무리 곤고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형통한 날에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곤고한 날과 형통한 날을 병행하게 하신다고 했으니 아무리 형통한 중에도 교만할 수 없습니다. 형통한 날이 끝나고 곤고한 날이 올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은 겸손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곤고한 날과 형통한 날을 병행하게 하실까요?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통한 날에 방탕에 빠지지 말고 앞날에 올 환난을 준비해야 되고, 곤고한 날에 낙담하지 말고 하나님을 소망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을 바꿀 수 있습니다. 

13절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구부러지게 만든 것을 사람이 곧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는 사람이 바꿀 수 없습니다. 굽은 것은 굽은 대로 사용하고, 곧은 것은 곧은 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곧은 것도 필요하지만 구부러진 것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활을 만들려면 구부러진 나무가 좋습니다. 소 멍에는 구부러진 나무로 만들어야 합니다. 구부러진 것 때문에 속상하지 마시고 맞는 곳에 사용하면 됩니다. 

3)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미래를 모릅니다. 누구도 자기의 앞날을 모릅니다. 연구한다고 노력한다고 앞날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게 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우리 손에 맡기지 아니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합시다. 장래 일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래를 모르기 때문에 하루하루 노력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르게 해놓으신 것을 억지로 알려고 하다가 죄짓는 일이 많습니다. 또 죽는 날을 모르게 해놓으셨습니다. 남의 마음도 모르게 해놓으셨습니다. 몰라야 좋기 때문에 모르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르게 한 것을 억지로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알 수도 없고 공연히 죄만 짓게 됩니다.


3.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

1)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여기 “기뻐하라”는 말의 의미는 ‘좋게 되라’ ‘유익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형통한 날에는 선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주시고 복 주신 것을 기억하여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뻐하라”는 말의 다른 의미는 감사하고 찬송하라는 뜻입니다. 야고보서 5:13에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신명기 8:12-18에 하나님이 염려하신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배부르게 먹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살고, 소와 양이 번성하며, 은금이 증식되며, 소유가 풍부하게 될 때 하나님을 잊을까 염려하셨습니다. 하나님 염려하신 일이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호세아 4:7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성할수록 범죄하고, 호세아 13:6에 배부를수록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의 형통과 성공과 행복은 하나님의 돌보심과 은혜로 말미암음입니다.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형통한 날에는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2)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우선 자신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곤고함의 원인을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또 인생의 연약함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곤고할 때 낙심하거나 원망하거나 말고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에게 왜 곤고한 날을 주실까요? 죄를 회개 시키려는 것인지, 낮추셔서 겸손하게 만들려는 것인지, 연단시켜서 큰 믿음을 주시려는 것인지, 시험하시는 것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바울은 교만하지 않게 하려고 가시를 주셨고, 욥은 큰 믿음을 드러내 복을 주시려고 고난을 주셨고, 다윗은 연단시켜서 귀하게 쓰시려는 고난을 주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돌아봐야 합니다. 곤고한 날에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탕자는 자기 몫의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다가 굶어 죽게 되었을 때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도 곤고한 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습니까? 곤고한 자리에서 우리를 건져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욥기 36:15-16에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절대 주권을 가지고 인생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앞날을 모릅니다. 따라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지금 형통하십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며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지금 곤고한 일을 당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형통한 날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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