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4 주일오전예배 설교 (사 55:1-9 / 하나님의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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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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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eUVTee-VwtE?si=2z_bTPih5dzIGxC_
성경에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의 말씀이 나옵니다. 신약에는 마태복음 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의 초청입니다. 구약에는 이사야 55장에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1. 초대하신 하나님은
첫째. 오라 하심.
1절에 “모든” 모든 자들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자들을 초청하십니다. “목마른 자들아” 인생들은 목마른 자들입니다. 밥을 먹어서 배가 불러도 목마름이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목마른 자는 구원에 참여하려고 사모하는 자들, 심령이 가난하여 구원을 사모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5:3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6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하나님께서는 목마른 자들, 사모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반면에 배가 불러서 은혜를 사모하지 않는 자들, 목마르지 않은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6:24-25에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하나님이 없이 살면서도 ‘배부르다. 부요하다. 만족하다.’ 하는 사람들은 화가 있습니다. 그들은 애통하며 울 날이 옵니다.
“물로 나아오라” “물”은 생명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를 가리킵니다.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로 오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37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한복음 4:14에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우리 목마름을 해결해 줄 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오면 누구나 마실 수 있습니다.
둘째. 사라 하심.
“포도주”는 하나님의 은혜 즉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구속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영혼을 살리는 복음을 포도주로 비유한 것입니다. “젖”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벧전 2:2). “사라” 은혜는 아무 대가 없이 거져주는 것이 은혜인데 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어주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받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값으로 친다면 천하를 주어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라고 한 것은 받기 위해 노력하고 수고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 믿어야 합니다. 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양식을 사는 방법이 이상합니다. “돈 없이 값 없이” 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그냥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장사는 이익을 보려고 하는데 하나님은 돈 없는 자들에게 그냥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장사하면 팔수록 손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냥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쫓아가고 있습니까? 아무리 먹고 마셔도 만족이 없는 세상의 욕망을 쫓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것에 매달려 인생을 낭비한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2절에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어리석은 사람들은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합니다. “양식이 아닌 것,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 부귀나 영화나 육체의 쾌락을 가리킵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고, 배부르게 하지도 못합니다. 사람들이 이런 헛되고 무익한 것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허비하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위해 바치는 열정을 보십시오.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한평생 수고합니다. 영의 양식이 되지 못하면 다 헛된 것입니다.
셋째. 들으라 하심.
2-3절에 “귀를 기울이고” “들으라” 하십니다. 포도주와 젖을 먹는 법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듣는 것이 우리 운명을 결정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들어야 믿음이 자랍니다. 말씀을 들으면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는 것 같아도 실상은 듣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성으로 듣고, 자기와 상관없는 말씀으로 듣고, 딴생각하면서 듣습니다. 듣고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영이 살고 배부르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심령이 만족함을 얻고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기름진 것을 먹은 것 같이 영적인 만족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하나님께 나와서 말씀을 들으면 영혼이 산다는 것입니다. 또한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언약이 무엇입니까?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입니다. 사무엘하 7장에 다윗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의 후손 가운데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 구원한다는 언약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에게 대한 언약이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속의 은혜를 영원한 언약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2. 초대받은 사람은
첫째. 만날만한 때에 찾아야 함.
6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초대에 응해야 합니다.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 “가까이 계실 때”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지금입니다. 오늘입니다. 신약 시대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같이 계시는 때입니다. 즉 임마누엘의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누구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2에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문제는 이때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시편 32:6에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하나님이 은혜와 복을 주시려고 역사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독생자를 보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역사하시는 때입니다.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감동을 주시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라 말씀하시면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이때가 은혜받을 때이고 복 받을 때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때 말씀을 순종하므로 복을 받았습니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이 찾아온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탐꾼을 숨겨주고 도와주었다가 온 가족이 구원받았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지나가실 때 삭개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뽕나무에 올라가서 주님을 바라보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둘째. 자기 생각을 버려야 함.
7절에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여기에 “악인”과 “불의한 자”가 나옵니다. 이들은 자기의 길을 고집하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말씀이 없고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이나 불의한 자와는 함께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결코 형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길과 그 생각만 바꾸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십니다. 악인과 불의한 자들에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문제는 돌이키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우리 생각을 버려야 할까요? 예레미야 17:9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인간은 타락했고 부패했습니다. 죄로 오염된 인간은 생각까지 병들었습니다. 그 생각이 의롭지 못하고 선하지 못합니다. 불의하고 악합니다. 로마서 8: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인간은 자기 생각대로 살다가 망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따르다가 죄를 짓고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살면 다 실패합니다. 생각이 악하면 행동도 악합니다. 실패하는 사람은 실패할 생각을 가지고 살다가 실패합니다. 내 생각대로 살면 반드시 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순종해야 함
8-9절에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생각이 어떻게 같을 수 있습니까? 거룩하고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과 불의한 인간의 생각이 어떻게 같을 수 있습니까?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큽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행하시는 길과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보다 높습니다. “높다”는 말은 고상하고 뛰어나고 훌륭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하나님의 생각은 항상 선하고 옳습니다.
따라서 이해가 되든지 안 되든지 자기 생각을 보라고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시편 103:11에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하나님은 돌아오는 자들에게 무한한 자비와 긍휼로 용서하시고 회개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용납해 주십니다(7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모든 목마른 자에게 오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께 나오면 포도주와 젖을 먹고 만족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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