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4 수요저녁예배 설교 (롬 2:17-29 / 유대인의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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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682Zly7-fe4?si=TuQe-ddkHusChHIV
유대인의 죄를 지적하면서 더 나아가 진정한 유대인이 누군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28절에 표면적 유대인이 나오는데, 껍데기만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이름만 유대인, 가짜 유대인이다. 이면적 유대인이 나오는데 겉과 속이 같은 참 유대인, 참 신자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유대인에 대한 구별이기도 하면서 우리에게 적용하면 누가 진짜 신자냐 라는 말이다. 교회를 다닌다고 다 신자라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참 중요한 말씀이다.
1. 유대인의 자랑(17-20)
17-18절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었다. 선민의식과 세상의 중심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그러면서 이방인들은 심하게 차별하고 심지어 개처럼 취급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가지고 있었다. 율법을 의지하면서 자랑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맡기셨고 율법을 잘 실천하고 이방인들에게 전해주면서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기대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과 율법을 자랑만 했지 그 말씀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율법의 교훈을 잘 받았다. 태어나서부터 율법을 배웠다.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율법 교육을 시켰다. 12세쯤 되면 율법에 능통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굉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극히 선한 하나님의 뜻과 거룩한 것과 영적인 것을 잘 구별한다고 생각했다. 모세오경을 거의 암기했다. 자신들에 대해서 감격했다. 이런 긍지와 특권의식 자체를 나쁘다고만 볼 수 는 없다. 정말 하나님을 잘 믿고 말씀 잘 지키고 믿음생활을 잘 했으면 이런 자부심과 긍지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껍데기로는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으면서 실제로 말씀대로 살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 2:13)
유대인들은 율법을 많이 배우고 많이 알았는데 말씀대로 살지 않았다. 영적으로 매우 교만해서 선민의식, 특권의식이 가득했다. 자기들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은 자기들만 복주신다고 생각했다. 자기들만큼 하나님을 잘 알고, 순종을 잘하는 사람이 없다고 착각했다.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은 유대인이고,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이다. 철저하게 율법을 배운 자이다. 유대인의 특징을 가장 잘 아는 자가 바울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었지만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참 말씀을 실천하는 믿음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마 23:3)
바리새인들의 핵심적 특징이다. 말만 하고 행하지 않았다. 이런 자는 표면적 유대인, 이름뿐인 신자이다.
19-20절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맹인의 길을 인도한다고 생각했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빛을 비춰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율법의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라고 생각했다. 표준적인 사람, 가장 바람직하게 믿음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어리석은 자들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생각했다.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믿으니"라고 했다. 하나님이 인정해주신 것이 아니고, 자기들 스스로 이런 자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교만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어두움을 밝히는 빛인가? 맹인을 인도하는 역할을 했는가? 진리의 표준적인 길을 걸어갔는가? 미련한 자들을 깨우치면서 살았는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뜻을 몰랐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구약 모든 율법과 의식이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으면서 자기들은 믿음이 엄청 좋다고 착각했다. 헛된 자랑을 품고 있었다.
우리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이런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이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삼가 조심해야 하고 자기를 가르치는 일에 힘써야 한다.
2. 유대인의 위선(21-24)
21-22절
다른 사람들에게 도둑질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도둑질을 한다. 유대인들이 무엇을 도둑질 했는가? 십일조와 헌물을 도둑질 했다.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을 많이 했다. 인류 역사상 고리대금을 많이 하는 민족이다. 성경은 고리대금 하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도 고리대금 업자의 우두머리들이 유대인들이다.
간음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간음한다. 성경에는 여러가지 간음이 나오는데, 육체적 간음, 마음의 간음,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영적인 간음이 있다.
우상을 가증하다고 말하면서 자기들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한다. 지금은 형상을 만들어서 섬기는 우상숭배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영적인 우상,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더 두려워하고 더 지배받고 따라가고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우상이다. 탐심도 우상이다.
앞에서 자기들은 굉장한 사람이고,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이고, 율법에 모본이 되고, 다른 사람의 빛이 되고, 맹인들의 길잡이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나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내가 믿고 내가 순종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아야 한다.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들은 말씀을 나 자신에게 적용시켜야 한다. 내가 그 말씀대로 살았느냐, 못살았느냐를 살피면서 말씀대로 못살았으면 회개하고 고쳐야 한다. 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것을 하지 않았다. 말씀으로 자기를 만들고, 고치고, 자신에게 적용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훌륭하게 보였지만, 속을 들여다보니까 다 가짜였다.
바울은 자신이 믿음생활 하면서 이렇게 했다고 고백한 말이 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 9:27)
남에게 아무리 잘 가르치고 훌륭하다고 인정을 받아도 자신이 버림 받으면 무슨 소용인가? 하나님이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하시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래서 자기를 쳐서 복종시킨다고 했다. 자기가 말씀대로 살려고 힘쓰면서 노력한다고 고백했다. 우리에게도 이것이 있어야 한다. 말씀을 듣고 고치고 내게 적용시켜서 자신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 봉사와 섬김과 외부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내적으로 자기를 만들고 고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23-24절
유대인들이 율법을 굉장히 자랑했다. 율법을 많이 배우고 율법에 대해서 실제로 잘 알았다. 그런데 핵심적인 문제는 지키지 않고, 그대로 살지 않은 것이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하고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고 말씀한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이런 실수를 범하고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너희 때문에" 이 말씀이 무슨 의미냐면, 하나님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 때문에, 율법을 맡아 가지고 있는 유대인 때문에, 선민이라고 자랑하면서 특권의식을 갖는 유대인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다. 한국 사람을 욕 먹이는 일은 한국 사람만 한다. 예수 안 믿는 사람 때문에 예수님이 욕 먹는 일은 별로 없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때문에 예수님이 욕을 먹으신다. 교인들 때문에 교회가 욕 먹는 것이지 믿지 않는 사람 때문에 교회가 욕 먹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가 바로 살아야 한다. 복용교회를 욕 먹게 하는 것은 우리가 잘못하면 우리 때문에 욕 먹는다.
유대인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먹었다. 유대인이라고 선전하면서 믿음으로 살지 않았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말씀 많이 배우고, 믿음으로 살게 된 것이 감사한 일인데, 우리가 잘 살지 않으면, 우리가 믿음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이 욕을 먹는다. 내가 손해볼지언정 하나님이 욕먹으면 안된다. 내가 고난을 당할지언정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하면 안된다. 하나님의 이름이 나 때문에 모독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성경을 오래 배웠는가, 직분이 뭔가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얼마나 말씀대로 사는가? 이것이 중요하다.
3.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25-29)
25-29절
유대인들은 할례를 자랑했다. 할례는 선민의 표시였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표였다. 낳은 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욕할 때 "할례 받지 못한 자"라고 했다. 다윗도 골리앗과 싸울 때 할례 받지 못한 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했다고 화를 냈다. 할례는 굉장한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할례를 받았지만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 율법을 행하지 않았다. 말씀을 잘 지키고 살면 할례 받은 것이 자랑할만한 일이 된다. 그런데 할례를 받았으면서 말씀을 행하지 않으면 무할례자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몸의 할례 자체보다 말씀을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신 10:16)
구약에서도 육체적 할례보다 마음의 할례를 강조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렘 4:4)
몸의 가죽을 베어내는 것보다 마음 가죽을 베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욕심과 정욕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면서 사는 것이 진정한 할례의 의미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할례의 핵심 내용은 생각하지 않고, 몸에 할례를 받은 것만 가지고 자랑했다.
할례를 받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 할례 받은 것처럼 여겨야 한다. 진정한 언약 백성, 구원받은 자녀의 모습이다.
할례 받지 않았다 할지라도 말씀을 잘 지키는 자라면 할례 받고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를 정죄할 수 있다고 했다.
표면적 유대인, 유대인이라는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육신적인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참 의미가 중요하고 참된 믿음을 가져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유대인은 아니지만 우리 자신이 참 신자, 참 성도로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고후 13:5)
내가 믿음 안에 있는가?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참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시험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가? 나를 다스리고 계신가? 점검해봐야 한다. 주님이 내 속에 계시지 않으면 믿는 사람이 아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되지 말고 이면적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신자, 겉과 속이 같은 참 믿음의 사람, 하나님께 인정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울이 이방인의 죄를 지적하고, 유대인의 죄를 지적하고, 3장에서는 모든 인류의 죄를 지적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죄 가운데 살고 있는가를 말한다. 믿지 않는 자도 죄인이고, 믿는다 하는 사람도 죄인이다. 모든 인류가 죄 아래 있다고 선언하고, 그 다음에 이 죄에서 우리를 건져내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고 말씀을 전하면서 복음의 길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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