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7 수요저녁예배 설교 (롬 2:1-16 / 하나님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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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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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의 원리에 대한 말씀이다.
1절
"남을 판단하는 사람" 일차적으로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특별히 바리새인들을 가리킨다. 1장에서 바울이 하나님 없이 범죄하는 인류, 이방인들이 죄를 지적하며 경고했다. 유대인들이 그 말을 듣고 동의하면서 이방인들은 정죄받고 심판받아 마땅하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바울이 유대인들을 향해서도 이방인과 똑같은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리새인들은 판단을 참 많이 했다. 자기 생각과 조금만 다르면 판단을 하고 자기가 아는 기준과 조금만 달라도 정죄했다. 심지어 예수님도 판단하고 성경도 판단했다. 하나님까지도 좌지우지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 무서운 일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성경을 많이 알고 교회생활에 익숙해진다. 열심히 봉사하고 믿음생활에 힘쓰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 마음에 의롭다는 의식이 들어온다. 나는 믿음생활을 잘하고 의롭고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을 자기에게 적용하지 않고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모습을 많이 하게 된다. 여기에 문제가 생긴다. 유대인, 바리새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죄에 빠진다. 판단하지 말고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가? 그런데도 우리의 말과 생각과 사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이 판단하는지 모른다. 말 전체가 판단이다. 이것이 죄라는 생각 조차도 하지 않는다. 무서운 죄인데 모르고, 그런 일들을 거침없이 한다.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해서 말씀했는데 그 말씀을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불신자들, 교회 밖 세상 사람들에게만 해당되지 자기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은 남과 다르다고 한다. 교회 밖에서 죄짓는 저 사람과 다르다. 나는 죄사함 받았고 말씀을 많이 알고 선을 행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착하게 산다고 생각하면서 의인 의식이 마음 속에 가득 찬다. 거침없이 판단하면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날마다 죄를 지으면서 죄라는 생각 조차 하지 않는다. 성경은 파단 자체를 죄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판단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약 4:11~12)
우리는 판단해서는 안된다. 판단할 자격이 없다. 오직 하나님만 판단하실 수 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 판단하실 수 있고 심판하실 수 있다. 사람은 그렇게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일수록 자기의 허물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럽다. 자기는 어쩔수 없었다고 하고 합리화 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판단한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다른 점이 있기는 하다. 우상숭배하지 않고 동성연애 하지 않고 이방인들처럼 방탕생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면, 근본을 보면 비슷하다. 성경은 우리의 겉모습만 가지고 말씀하지 않는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1)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8)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마음 속으로 누군가를 미워하면 살인과 같다고 했다. 실제로 간음하지 않아도 마음에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으면 간음이라고 했다. 행동 뿐 아니라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도 죄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다를까? 결국 똑같은 죄인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완전히 선하고 의로운가? 조금 나은 점이 있기도 하겠지만 본질적으로 비슷한 점이 참 많다. 우리도 넘어지고 죄짓고 욕심 부리고 믿음으로 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므로 판단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 7:3~5)
티가 큰가? 들보가 큰가? 티는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이고 들보는 아름드리 큰 나무통이다. 들보는 내 안에 있는 것이고 티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내 속의 들보는 발견하지 못하고 남의 티를 비방하고 있다. 들보는 내 안에 있는 부패성이다. 온갖 악한 것이 부패성에서 나온다. 티는 다른 사람의 드러난 행동이다. 티는 아주 사소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철저하고 냉정해야 한다. 티와 같은 것도 찾아내서 고치려고 하고 회개해야 한다. 반면에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너그러워야 된다. 실수하고 잘못하고 허물이 있어도 덮어주고 이해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줘야 한다.
2-3절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는가? 첫째, 진리대로 이루어진다. 진리는 말씀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준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기준대로 심판하신다. 내 기준대로 하면 나는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내 기준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다. 공평하고 의롭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이 말은 하나님은 유대인이라고 너그럽게 대하시고 이방인이라고 엄격하게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법대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판단하신다. 그러니까 남을 재는 기준이 나를 재는 기준도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3절에서 1절의 내용을 반복하여 말씀하신다. "너도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왜 이것을 잘 깨닫지 못할까? 나도 같은 죄인이고 악한 사람이고 심판받고 정죄받아야 될 사람인데 내 죄는 안보이고 다른사람의 죄와 허물만 자꾸 보일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다.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바리새인이었다. 그는 율법에 대해서 철저하게 배웠고 열심까지 있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 바울은 자신이 흠이 없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는 일에 앞장 섰다. 그러던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가 자기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면 내 죄가 보인다. 하나님 앞에 서면 내 허물이 드러난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남의 죄만 보인다. 그래서 끝없이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한다.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자에게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말씀한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다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늘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를 살피고 자기 죄를 찾아서 회개하고 자기를 만드는 일을 힘써 나가야 한다. 신앙생활은 죽을 때까지 자기를 만드는 것이다. 성경말씀을 자기 만드는데 사용하지 않으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에 이용하게 된다.
4절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시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죄가 없어서가 아니다. 죄인이라는 것을 몰라서도 아니고 죄가 없어서도 아니고 심판 받아 마땅한데 왜 하나님이 심판하시지 않고 기다리시는가? 인자를 베푸셔서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며 참아주시는 것이다. 길이 참으시면서 이제나 회개하고 돌이킬까? 깨닫고 바로설까? 기다리고 계신다.
만약에 하나님이 참아주시지 않았으면 벌써 심판 받아서 망했을 것이다. 그 하나님의 참아주심, 인자하심을 멸시하지 말라고 했다.
5절
고집을 부리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된다. 진노의 날이 되면 그 진노를 한번에 받게 된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빨래거리 모으듯이 죄를 자꾸 모은다. 이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일이다. 즉시 즉시 회개하고 버려야 한다. 죄를 저축하는 것은 진노를 쌓는 일이다.
6-8절
두번째 심판의 원리를 말씀하신다. "행한대로". 첫째 원리는 "진리대로"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대로 보응을 하신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하신다.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롬 2:7~8)
하나님의 행하심에는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 정확하다. 중요한 것은 행한대로 보응하신다는 말씀을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기 행위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나는 의롭다는 생각을 한다. 왜 의롭다는 생각을 했냐면 율법을 가지고 있기 떄문이다. 율법을 많이 듣고 배웠다. 율법에 대한 지식이 아주 많다. 율법을 많이 듣고 아는 것을 가지고 자신이 의롭다는 착각을 했다. 그런데 실제로 의로운 사람이 되지 못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 2:13)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고 듣고 많이 알고 입으로 율법을 늘 말하면서 자기는 의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행하지를 않았다.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보면 말씀대로 살지를 않았다. 도둑들도 자기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식들에게는 도둑질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자기는 도둑질을 한다. 아무리 알고 있고 말을 해도 실제로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 실제로 말씀대로 살아야 의로운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의롭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아주 많을 것이다. 성경을 껍데기로만 배우면 안된다. 말씀을 나에게 적용시켜서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안되면 회개하고 고치기를 늘 힘써나가야 한다.
9-10절
중요한 말은 "각 사람"이다. 개인개인에게 정확하게 하나님이 갚아주신다. 악을 행하면 한사람 한사람에게 경고하시고 벌주신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한사람 한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주신다. 개인적으로 각 사람이 구체적으로 말씀을 지키고 믿음생활을 바르게 해나가야 한다. 하나님은 덩어리로 취급하면 안된다. 심판 때에는 개인개인 한사람 한사람을 다 판단하신다.
11절
유대인이라고 관대하고 너그럽게 봐주시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헬라인이라고 해서, 이방인이라고 해서 작은 것도 엄격하고 무섭게 처벌하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각 사람에게 행한대로 갚으신다.
우리가 행한대로 우리가 받는 것이다. 속담에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고 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기들은 예외라고 생각했다. 잘못했어도 선민이니까 벌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예외 적용을 했다. 자기들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심판 때에는 그런 것이 없다. 각 사람에게 행한대로 갚으신다. 봐주시는 것이 없다. 그러니까 우리도 나는 예외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12절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고 이방인들은 율법이 없었다. 그러면 어떤 기준으로 심판할 수 있겠는가? 이방인들은 율법 없이 심판하여 벌주시고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심판하여 벌주신다고 했다.
13절
유대인들은 율법을 태어나서부터 엄청 들었다. 달달 외웠다. 입으로 늘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못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말씀을 듣는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내가 잘 지키는 것만 가지고 말씀대로 잘 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못하는 것을 고치고 회개해야 한다.
14-15절
예외적인 설명이다. 율법이 없는 시대, 모세 이전에 살던 사람들, 그리고 율법이 없이 살았던 이방인들은 범죄하면 양심이 율법 역할을 하게 된다. 양심이 가책을 주고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양심이 증언한다.
16절
심판의 기준 셋째는 은밀한 것이다. 첫째는 진리대로, 둘째는 행한대로, 셋째는 은밀한 것이다. 하나님은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는다. 신분, 인종을 심판의 기준으로 삼지 않으시고 진리대로 행한대로 심판하시고 마지막에는 은밀한 것이 다 드러나게 하셔서 심판하신다.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마 10:26)
하나님의 불꽃 가운데 은밀한 것이 다 드러나서 심판받게 될 것이다. 나를 돌아봐야 한다. 내 죄를 찾아 회개하고 나를 만들고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심판대 앞에서는 남의 죄를 말하지 못한다. 다 자기 죄를 붙들고 하나님 앞에 자복해야 한다. 지금 회개하면 은혜의 보좌 앞에서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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