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31 주일오전예배 설교 (열왕기하 20:1-7 / 15년 더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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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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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CnwL6ZgDgLI?si=i8lqhHp2krnCYR4A
2023년도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다가 기도로 병 고침을 받고 15년을 더 살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본문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그때 선지자 이사야가 찾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1절에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왕의 자리를 물려주고, 집안을 정돈하고, 죽을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100% 확실합니다. 39살의 젊은 나이에 사형선고를 받은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합니다. 2절에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이것은 다른 것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기도한 것입니다.
3절에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기도하면서 이런 말 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는 참으로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서 행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눈물을 보셨습니다(5절).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를 죽지 않게 하시고 15년을 더 살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이런 은혜와 복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히스기야에게만 주셨던 특별한 복입니다. 여기까지는 모든 성도들이 많이 듣고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은 약간 다른 각도에서 이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히스기야가 이렇게 기도하므로 생명을 연장받아 15년을 더 살게 되었는데 그렇게 더 산 그 15년의 삶이 어떠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원래 살게 되었던 39년의 삶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죽을병에서 고침받고 15년 더 살게 된 것도 하나님 은혜입니다. 더 산다는 것은 은혜이고 새로운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죽게 되었던 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수명을 연장받아 15년을 더 살게 되었으니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더 가치 있고, 더 의미 있고, 더 아름답고, 더 믿음을 잘 지키며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 같은데 히스기야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히스기야의 15년 세월은 군더더기 같은 세월이요, 차라리 없었으면 좋을 것 같은 삶이었습니다. 잘 그려놓은 그림에다가 붓을 떨어뜨려 그림을 망쳐버린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 교만하여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함
역대하 32:24-25에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15년을 더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병을 고침 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런 큰 은혜를 받은 히스기야는 마음이 교만해졌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참 섭섭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산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루하루가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2. 물질과 무기를 자랑함
12절에 보면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 왕이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통해 편지와 예물을 보냈습니다. 강대국인 바벨론 왕이 사자도 보내고 편지와 예물을 보내자 히스기야는 교만해져서 어리석은 일을 합니다.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사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13절). 이것은 너무나 어이없는 큰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는 바벨론 왕의 사자는 겉으로는 병문안 온 것처럼 했지만 실상은 유대 나라의 상황을 엿보기 위해서 찾아온 정탐꾼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병이 얼마나 중한지, 만약 히스기야 왕이 죽게 되면 유대 나라는 어떻게 되겠는지, 군대는 얼마나 되고 무기는 얼마나 갖추었는지, 군량미는 얼마나 비축했는지, 나라의 취약한 부분은 없는지, 이런 것들을 정탐하러 온 정탐꾼이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의 마음이 교만해지고 경각심이 풀어져서 원수들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나라의 모든 비밀을 다 보여주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또 하나는 그 당시에 저 북쪽에 있는 강대국 앗수르가 유대 나라를 침략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 나라가 앗수르 군대를 이기고 승리합니다. 바벨론 나라가 이 소식을 듣고, 나약한 유다 나라가 어떻게 저 강대한 앗수르 군대를 물리쳤는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사자를 보낸 것입니다(열왕기하 19장). 사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군대를 물리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큰 기적을 베풀어서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을 하룻밤에 죽였습니다(열왕기하 19:35).
그랬으니까 히스기야 왕이 어떻게 대답해야 옳습니까? “우리 유다 나라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 병도 고치고 강대국 앗수르 군대도 물리쳤다”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을 것이고, 바벨론 나라도 하나님이 두려워서 감히 침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렇게 믿음으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역대하 32:31에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그런데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은혜는 다 무시해 버리고 무기와 금은보석만 보여주면서 자랑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요 배은망덕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4-15절에 보면 바벨론의 사자가 돌아간 후 선지자 이사야가 찾아와서 히스기야 왕을 책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17-18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장차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모든 것을 빼앗길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경고는 훗날 그대로 성취되어 유다 나라가 멸망합니다. 유대 나라가 망한 것은 우상 숭배한 죄와 안식일을 범한 죄, 그리고 히스기야 왕의 이 죄가 멸망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3. 이기적인 생각을 함(?)
19절에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 왕을 책망하며 유다 나라의 멸망을 선포할 때 히스기야 왕이 한 말입니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히스기야가 책망을 기쁘게 잘 받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이 선하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하고 옳습니다. 그 내용이 저주의 말씀이든 축복의 말씀이든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선하고 옳은 말씀입니다. 그 내용이 어떻든 간에 그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니까 그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책망도 달게 받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히스기야가 이기적인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19절 끝에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어떤 주석가들은 히스기야가 이기적인 생각으로 이 말을 했다고 해석합니다. 만약에 히스기야가 이기적인 생각으로 한 말이라면 얼마나 큰 문제입니까? 유다 나라가 망한다고 했지만 자기 당대에 망하지 않고 자기가 죽은 다음에 망한다고 했으니까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백성이 망하고 나라가 망하고 후손들이 망하는데도 자기는 평안히 지내다가 죽는다고 하니까 괜찮다고 말한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씀을 전합니까? 우리는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서 ‘나라야 망하든 말든 나만 잘살다 죽으면 된다. 하나님의 교회야 잘되든 말든 나만 편하면 된다. 후대 사람들이야 죽든지 말든지 나만 잘살면 된다.’ 이것은 은혜받은 사람이 할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나보다 교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나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나보다 후손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4. 므낫세라는 아들을 낳았음.
히스기야 왕이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므낫세입니다(21절). 그런데 므낫세가 왕이 될 때 그의 나이가 12살이었습니다(열왕기하 21:1). 므낫세가 12살에 왕이 되었으니까 히스기야 왕이 생명 연장 받고 나서 난 아들이 분명합니다. 그 므낫세가 55년 동안 왕 노릇을 했는데 유다의 역대 왕 중에서 최고로 악한 왕이 되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에서는 아합 왕이 가장 악했고, 남쪽 유다에서는 므낫세 왕이 가장 악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아들 낳은 것은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 아들 므낫세의 죄가 전부 다 아버지 히스기야 왕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그렇게 되었습니다.
열왕기하 18:3-7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39살까지 사는 동안 그의 삶의 기록은 참으로 깨끗하고 아름답고 흠이 없습니다.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모든 우상을 척결하고,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고, 여호와와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믿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이 형통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에도 그런 왕이 없었고 후에도 그런 왕이 없었다고 할 만큼 모범적인 왕이었습니다. 그런 히스기야가 15년을 더 살면서는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깨끗하고 아름다웠던 이전의 삶까지 더럽히는 한스러운 삶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새로운 한 해를 더 사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실 우리는 앞으로 15년을 더 살는지, 30년을 더 살는지 모릅니다. 젊은 사람들은 50년도 더 살겠지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무작정 살면 안 됩니다. 그냥 오래만 사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몇 년을 더 살든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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