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6일 주일 오전예배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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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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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4:46-53]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성도들의 생활을 믿음생활이라고 할 정도로 “믿음”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끼리도 서로 의심하면 관계가 막히게 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본문은 한 왕의 신하의 믿음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에 오실 때 많은 사람들이 환영했습니다(45).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행하신 이적을 봤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각처에서 많은 신자들이 모였는데, 그 때 예수님께서 큰 이적을 행하시고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갈릴리 가나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다가 주님을 발견하고 말씀과 이적을 보고 듣고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공적 예배에 참여할 때 영적 은혜를 얻습니다. 우리는 “주일을 지킨다”고 하는데 사실 “주일이 우리들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셔서 복음과 이적을 행했는데 대상자인 예루살렘 사람들보다 갈릴리 사람들이 더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배를 사모함으로 자주 드려서 말씀을 먹음으로 믿음이 자라나고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1) “강한 소원으로 인해 예수님을 찾아 나옴”(46-47)
46절에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고 했는데 왜 이적을 언급하는 것일까요? 전에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은혜를 입었으면 그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가나안에 못 들어갔습니까? 한마디로 건망증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많이 체험했는데 잊어버리고, 무슨 일만 생기면 원망불평을 했습니다. 과거에 입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고 어려운 일 당할 때 용기를 얻는 일입니다.
본문에 한 왕의 신하가 가버나움에서 갈릴리에 계신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아들이 죽을 병에 걸렸는데 어떤 방법을 써도 치료가 안되니까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달려와서 주님께 엎드려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결국 이 신하는 예수님을 찾아 나옴으로 아들이 치료받고 자기와 온 가족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축복을 받습니다. 만일 신하의 아들이 죽을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결코 30대인 예수 앞에 나와서 무릎 꿇고 간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건, 고난을 통해 예수께 나오는 것이 큰 믿음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믿음에 속한 행동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힘이 진해졌을 때 비로소 예수님을 찾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고통스러울 때가 영적으로는 주님을 찾을 때요, 그러므로 주님을 찾는 것이 믿음이고 은혜인 것입니다. 왕의 신하가 고난을 통해 겸손해졌습니다. 단순한 마음, 겸손은 고난이 주는 선물입니다.
(2) “그는 예수님의 인격보다 이적을 더 믿음”(48-49)
왕의 신하가 엎드려 “내 아들의 병을 고치소서”라고 간구할 때 예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한다”고 말씀했습니다(48). 주님을 믿는 동기가 옳지 못함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보다 그 능력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이것은 이적을 행하는 분을 바라봐야 하는데 예수님보다 표적과 기사를 봐야 믿겠다는 것으로 이것은 자기 판단을 믿는 것이요, 자기의 이성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이적보다 예수님을 인격(말씀)을 더 사랑하고 믿어야 합니다(요 20:29). 예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믿는 사람은 언제나 믿음의 길을 바르게 가게 되어 있습니다(고전 1:22-23). 이적을 보고 병이 낫고 방언을 하고 계시를 받고 믿겠다는 것은 어린아이의 신앙이요 마귀도 이적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적을 하나도 체험 못했어도 말씀을 사랑하고 믿는 것은 훨씬 더 좋은 믿음입니다.
책망을 들은 왕의 신하는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 오소서”라고 간청합니다(49). 아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조급함과 염려가 가득 찬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이 가면 고쳐주실 것을 믿었지만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 믿지 않은 것입니다.
조급함, 걱정, 근심, 두려움은 믿음이 약한 자의 특징입니다. 어려움 당할 때 “망했다”, “끝났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끝은 하나님이 내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걱정, 근심 하지 말고 평안한 마음으로 감사하며 주님께 기도할 것입니다(빌 4:6-7).
(3) “말씀을 믿고 순종함”(50)
신하의 간청에 예수님은 “네 아들이 살았다”고 말씀 하셨는데 이 신하는 그 말씀을 믿고 내려갔습니다. 그의 믿음은 순종하는 믿음이요, 안심하는 믿음입니다. 왕의 신하는 주님이 책망하실 때 그 책망을 받아들였고, 이적과 표적을 보지 못했지만 주님이 말씀하실 때 이적이 일어났다고 믿고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믿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믿기 어려워도 믿어야 합니다. 믿으라고 말씀 배우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문제가 생겨서 기도할 때 말씀이 떠올라야 합니다. 말씀을 많이 듣고 배웠어도 말씀이 떠오르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주님의 인격의 표현입니다. 말씀을 대할 때 주님의 인격의 무게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처럼 소홀히 여기면 망령된 행실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의 권위가 얼마나 큽니까! 예수님은 낫기를 기도해주신 것이 아니라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항상 말씀으로만 쉽게 낫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맹인을 고치실 때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주기도 했고(요 9:6), 죽을 병이 든 히스기야 왕은 무화과 반죽을 종처에 붙이므로 낫게 하셨고(왕하 20:7), 문둥병자에게는 손을 얹어서 치료하셨습니다(마 8:3). 그 사람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믿음을 일으켜주시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과 사정과 마음을 다 아시는 분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4) “더 큰 믿음을 가지게 됨”(51-54)
왕의 신하가 돌아가는 길에 아들이 나았다는 소식을 알리려고 올라오는 종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시간에 아들이 나은 것을 알고 감격했습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딱 두 말씀 들었습니다(48, 50). 두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달았습니다. 자기와 온 집이 믿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믿음은 병 고치는 믿음이 아니고 구원의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으면 문제가 해결되고 잘된다는 현세적인 믿음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기도도 믿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실 때 믿음을 보시는데, 믿음이 없으면 믿음을 길러주신 다음에 응답해 주십니다. 왕의 신하는 주님이 멀리서도 말씀 한마디에 아들이 나은 것을 보고 전능자, 구원자, 메시야, 그리스도로 믿고 모든 식구를 전도하고 주님께 인도했습니다. 그의 믿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으로 변한 것입니다.
한 아이의 질병이 가족 전체의 구원을 가져오고 큰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찾고 기도로 구하고 믿으니까 다 살았습니다. 한 사람의 기도가 얼마나 위대하고 큽니까!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요! 하나님은 우리 믿음과 시련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고 믿음을 온전케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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