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6 수요저녁예배 설교 (롬 5:12-21 / 아담과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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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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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uET7voV_qRc?si=d5S74o6xoBvgFlqx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조하고 있다. 아담이 인류에게 끼친 큰 죄의 영향과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에게 끼친 구원의 은혜를 대조하여 설명하고 있다.
12절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하나님이 처음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죄가 없었다. 그런데 인류의 조상 아담이 마귀의 미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가 시작되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고 죄인이 됨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그렇게 죽는 것은 죄 때문이다. 아담의 타락은 자신 한 사람의 타락으로 끝나지 않고 전 인류의 타락을 가져왔고, 전 인류가 사망에 이르도록 만들고 말았다. 이것을 원죄라고 한다. 아담의 죄로 인해서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된 것을 원죄라고 한다.
왜 아담 한 사람이 범죄했는데 인류 전체가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불합리 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중요한 두가지 원리가 있다. 하나는 대표성의 원리이다. 아담은 인류의 시조이면서 동시에 대표자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행위언약을 맺으셨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죽지 않는다는 행위언약을 맺으셨는데, 인류의 대표자로서 아담과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그런데 인류의 대표자 아담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다. 그래서 인류 전체가 죄인이 된 것이다. 아담은 범죄할 때 영혼이 즉시 죽고 육체는 960년을 살다가 죽었다. 죽음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고 죄 때문에 죽었다.
대표성의 원리는 우리 생활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적용된다. 우리나라의 축구 대표팀이 일본 팀을 이기면 한국이 이겼다고 말한다. 선수들이 이긴 것인데 한국이 이겼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선수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대표는 대통령이고 교회의 대표는 목사이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천황이 항복을 선언했다. 그래서 결국 일본 전체가 항복을 한 것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이러한 원리들이 작용한다. 그래서 이것은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다.
또 한가지는 죄의 전가 때문이다. 죄의 전가는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죄성, 부패성이 유전이 된다는 것이다. 아담이 범죄하여 죄인이 되었는데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아담에게서 죄성을 물려받는다. 그래서 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난다. 대표성에 의해서도 인류가 죄인이 되는 것이고 죄의 전가로 인해서도 인류가 죄인이 되는 것이다.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 5:3)
아담이 자기 모양,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했다. 얼굴을 닮았다는 것이 아니고 죄성을 물려 받은 후손이 태어났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죄의 전가, 죄의 유전이다. 그래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다 죄인으로 태어난다. 예수님 외에 모든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사람들은 날 때부터 죄인이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5)
어머니 뱃속에 잉태했을 때 부터 죄인이라고 했는데 원죄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시 58:3)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거짓말을 한다 욕심을 부린다. 성경은 죄 없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원죄는 모든 사람이 똑같다. 자범죄는 사람에 따라 양이 다를 수 있지만 원죄는 다 똑같다.
13절
율법을 언제 받았는가? 모세 때 받았다. 그러면 아담부터 모세 때까지는 율법이 없었다. 그런데 그 기간에도 사람들이 죄를 지었다. 그러다가 죄값으로 죽었다. 그들이 다 죄인인 것을 알 수 있는 증거가 다 죽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죽은 것을 보니까 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슨 죄를 지었나? 아담에게서 원죄를 물려 받아서 죄인으로 태어났고, 그 부패성을 가지고 살면서 평생 죄를 지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죽었다. 어떤 사람들은 말씀을 듣지 못한 시절에 태어난 자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질문한다.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되었냐고 묻는다. 말씀 듣지 못한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 말씀 듣지 못한 자도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필요도 없다. 예수님의 복음 외에 구원의 방법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율법을 듣지 못했다고 해서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듣지 못했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 받으려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14절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도 사망이 왕노릇을 했다. 다 죽었다는 말이다. 그들도 다 죄인이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만약에 죄가 없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사망은 굉장한 힘이 있다. 왕노릇을 하는데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왕노릇을 한다. 누구도 사망을 이길 수 없고 사망에서 제외되지 못하고 피할 수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다 한번씩 죽는다. 그만큼 사망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 했다. 예수님을 가리킨다. 예수님을 제 2의 아담이라고 부른다.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인류 전체가 죄인이 되어서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주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택한 백성들은 다 구원받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런 면에서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 말씀한다.
아담이 대표성을 가지고 원죄를 인류 가운데 불러들인 사람이라고 했는데, 마찬가지 원리로 예수님도 대표자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구원을 이루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구원받을 수 있도록 대표자가 되셨다. 예수님이 대표자가 되셔서 말씀을 완전히 순종하시고 구속을 완전히 이루셨다. 예수님을 믿으면 모두 구원받는다. 아담이 대표자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대표성도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본문은 한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2, 15, 16, 17, 19절에 계속해서 한 사람을 강조하고 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류 전체가 죄인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의를 이르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가 구원을 받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
신앙생활하면서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한다. 나 한 사람 쯤이야 교회 가지 않는다고 어떻게 되겠는가? 나 한 사람 쯤이야 예배 빠진다고, 봉사 안한다고, 죄 짓는다고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 아담이나 예수님 만큼은 아니겠지만 한 사람이 끼치는 영향이 크다. 아간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전쟁에서 패했다. 요나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배에 탄 모든 사람이 고난을 겪었다. 좋은 일도 마찬가지이다. 요셉 한 사람이 믿음 잘 지키고 하나님을 잘 섬겼더니 애굽 전체가 7년 흉년에서 건짐을 받고 야곱의 가족 전체가 살게 된다. 선한 일에 한 사람이 수고하고 희생하면 전체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반대로 한 사람이 죄짓는 일, 나쁜 일을 하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술먹고 주정하는 한 사람 때문에 가정 전체가 고통을 받는다. 한 사람이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수고한다면 가족 전체의 은인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 사람이 중요하다.
우리는 나 한 사람 쯤이야 라는 생각을 하면 안된다. 믿음의 생각이 아니다.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믿음을 지켜서 전체를 이루고 선한 영향을 받는 사람이 많이 생긴다. 죄를 지으면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나쁜 영향을 받는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믿는 성도들이 모여서 이룬 연합체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흩어져 있으면 신자이다. 모여있으면 연합체가 교회이다. 우리가 모이지 않으면, 연합체가 되지 않고 흩어져 있으면 교회가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연합체, 교회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몸에 붙어 있는 지체이다. 다른 지체가 아무리 건강해도 다른 한 부분이 고장 나면 몸 전체가 아프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우리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믿음으로 살고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 우리는 인류 전체의 대표자는 아니지만 아담처럼 잘못된 일을 하면 내 영향권 안에 있는 자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 많은 사람을 힘들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사람이 되면 안된다.
반면에 예수님이 순종하시고 의를 이루셔서 많은 사람을 살리셨는데 그런 한 사람이 되어서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길을 걸어갈 수 있어야 하겠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택한 백성들이 다 의롭게 되는 내용을 설명한다.
15-16절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범죄가 왔고 사망이 인류 전체에 이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큰 은혜의 효과, 구원의 효과가 나타났다. 이것이 아담을 능가한다. 아담의 죄의 역사도 어마어마하게 컸다. 그런데 예수님의 순종으로 이루어진 은혜의 역사, 구원의 효과는 아담보다 더 능력이 있다.
대조하고 있는 단어가 있는데, 심판과 은사, 정죄와 의를 대조한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우리가 죄인이 되었고 심판 받아 죽게 되었다. 아담의 범죄 하나로 인해서 영향력이 퍼진 것이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사는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더 강력하고 크다. 예를 들어서 깨끗한 물이 한통이 있다. 어떤 사람이 잉크를 한방울 떨어뜨려서 더럽혔다. 물 한통을 더럽히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런데 이 더럽혀진 물을 원래처럼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아담이 한 일은 물을 더럽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더러워진 물 한통을 예수님은 다시 원상회복되도록 하셨다. 이것이 더 큰 능력이다. 더 놀라운 일이다. 더 어려운 일을 예수님이 하신 것이다.
한 사람이 코로나에 걸려서 한국에 들어왔다. 이 사람이 코로나 균을 퍼뜨려서 한국 사람들에게 전염시켰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일은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을 다 고치고 치료하고 건강하게 회복시키신 일이다. 누구의 능력이 더 큰 것인가? 예수님의 능력이 훨씬 크고 강한 것이다. 아담도 대표자이고 예수님도 대표자인데 아담은 죄를 지어 인류를 타락시켰고 예수님은 죄인을 깨끗하게 만들어서 구원하셨는데, 아담보다 예수님의 은혜의 영향력이 더 크고 강하고 놀라운 것이다.
특별히 예수님의 구원사역은 믿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상대로 죄를 사하고 의롭다 하시고 구원하셔서 깨끗하게 하신 것이다. 전체를 한꺼번에 하신 것이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적으로 사죄하고 믿게 하고 생명을 주셔서 의롭게 하시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 이 사역이 엄청 크고 어려운 일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다 죄인이 되었고 다 사망에 이르렀다. 그런데 예수님 안에서 죄사함받고 의인이 되고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을 제 2의 아담, 대표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17절(21절)
왕노릇이라는 말이 두번 나온다. 죄의 결과로 사망이 왕노릇을 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생명이 왕노릇하는 은혜 가운데로 옮겨졌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죄 아래 있었을 때 사망이 왕노릇했는데, 전 세계 모든 인류를 지배할 정도로 강력했다. 한 사람도 사망을 피해가지 못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죄는 모든 사람을 다 죽게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사망의 세력을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사망에서 해방시키시고 죄에서 구원하셨다.
이제는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생명과 은혜가 왕노릇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만 이 은혜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가운데 거해야 한다. 주님을 떠나서는 이 은혜를 누릴 수 없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롬 5:21)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의요 생명이요 영생이다. 죄 대신에 의를 사망 대신에 생명을 심판 대신에 영생을 주셨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구속을 완성하신 것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감사할 수 밖에 없다.
18-20절
한 사람이 참 중요하다고 했다. 두번 째 중요한 것은 한 범죄, 한 순종이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는 한 범죄로 인류 전체가 죄인되게 만들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시는 한번의 순종으로 택한 백성을 구원받게 하셨다. 사람들은 한번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번이 중요하다. 아담은 한 번의 죄로 인류를 망하게 했고 예수님은 한 번의 순종으로 인류를 구원하셨다. 한 번을 불순종으로 하면 안된다. 한 번 불순종하면 계속 불순종하게 된다. 한 발자국 순종의 길로 가면 계속 순종의 길로 갈 수 있다. 한 번을 바로 해야 한다.
아담이 여러가지 범죄로 인류를 죄에 빠뜨린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의로운 행위는 십자가를 지시는 행위였다.
핵심은 순종했느냐 불순종했느냐 이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을 불순종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까지 순종하셨다. 그 순종으로 죄인들을 구원하는 놀라운 일을 하셨다. 결론은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 이다.
인류의 대표자 아담은 순종하지 않았다. 둘째 아담 예수님은 순종하셨다. 아담은 불순종하므로 인류 전체를 죄인이 되게 했고 예수님은 순종하므로 택한 백성이 의롭게 되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롬 1:5)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믿어 순종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롬 16:26)
믿음의 궁극적 목적은 순종하게 하려는 것이다. 순종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생명을 얻고 복받는 길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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