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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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8 주일오전예배 설교 말씀 (사 49:14-21 / 손바닥에 새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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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02-18 13:56 조회4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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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s4AAeRRJ140?si=ARdEigSFfnQ-6Cek


엄청난 고통을 당하거나 절망의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 버림을 당해도 무서운 일인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섭고 슬픈 일인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 하면서 자기들은 하나님께 버림받고 잊혀진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1.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14절에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시온”은 예루살렘, 즉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 버리고,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통 속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갈등과 고뇌가 찾아왔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버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잊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기간 수도 없이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고난당할 때 잠깐 하나님께 부르짖다가 조금만 편안하고 일이 잘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먹고 배부를수록 하나님을 거역하며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가셔서 돌아오라고 부르셨습니다. 선지자들을 보내 돌아오라고 부르시고 깨우치셨으나 그들은 외면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가게 한 것도 버린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29:11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게 한 것은 그들에게 재앙을 주려는 것이 아니고 평안을 주기 위한 것이요 미래와 희망을 주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포로 생활하면서 낮아지게 만들고, 회개하게 만들고, 연단을 받게 만들어서, 결국은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고 믿음에 바로 서게 만든 후 마침내 복을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 29:12-14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돌아올 시기까지 다 정해놓았습니다.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것이 문제이고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2.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여인이 젖 먹는 자식을 잊거나,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고, 여인은 젖 먹는 자식을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기 백성을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16절에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우리는 보통 급할 때,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을 손바닥에 쓰게 됩니다. 여기는 손바닥에 써 놓는 정도가 아니고 새겼다고 했습니다. 새겨 놓으면 절대 지워지지 않습니다. 마치 문신을 새기듯이 그렇게 새겼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처럼 손이 있는 것 아니고 문신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신 것입니다. 우리 이름을 손바닥에 새겨서 절대 지워지지 않도록 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손바닥에 새겼으니 언제나 보게 될 것이고, 언제나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환난이 심하고 고통이 길어질 때,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는가.” “나를 잊으셨는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실 하나님께서 포로 된 그 백성을 잊지 아니하셨습니다. 바벨론에 따라가셔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성소가 되어 주셨습니다. 에스겔 11:16에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하나님이 그곳까지 따라가서,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며, 잠깐 성소가 되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5에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절대 잊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2)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사실 그때 바벨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성벽은 다 무너지고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그 성벽이 사람의 눈앞에는 없어졌으나 하나님 앞에는 그냥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재건될 때가 온다는 뜻입니다.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다시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잊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17절에 보면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하고 황폐하게 하던 바벨론은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게 되며,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건축할 자들이 빨리 돌아올 것을 말씀합니다. 불가능하게 보이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꿈꾸는 것 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은 기적적으로 회복됩니다. 모든 사람이 포로로 잡혀가 적막하고 황폐하던 예루살렘 성읍에 사람들이 많아지고 회복됩니다.

18절에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는 것입니다. 흩어졌던 백성들,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다 모여 온다는 것입니다. 12절에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 사방으로 흩어졌던 백성들이 먼 것으로부터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부르실 때 세계만방에서 택한 백성들이 구원받아 교회로 돌아올 것을 가리킵니다.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사방에서 돌아온 사람들로 인하여 시온이 아름답게 되고 영광스럽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신부가 아름답게 장식하고 각종 보석을 몸에 차는 것처럼 예루살렘이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장차 주님의 교회가 구원받은 성도들로 인하여 장식이 되고 아름다운 띠가 되어 영광스럽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신약 시대에 많은 백성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의 교회는 그들로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19절에 “이는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오랫동안 버림받았던 땅, 황폐하고 적막한 예루살렘, 아무도 살려고 하지 않던 파멸의 땅이 이제는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고 주민이 많아 넘칠 것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어 돌아올 때 황폐하고 적막하던 예루살렘에 주민이 많아져 땅이 붐비게 되었습니다. 스가랴 8:4-5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이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가 많으므로 저마다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그 성읍 거리에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여 거기에서 뛰놀리라”

20절에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내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 전쟁과 기근으로 많은 자녀를 잃어버린 예루살렘이 이제는 각처에서 돌아온 백성들로 크게 붐비게 될 것을 예언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언적으로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므로 점점 창성할 것을 가리키며 성도를 헐며 핍박하던 자들은 멀리 떠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21절에 “그 때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누가 이들을 낳았는고” “누가 양육하였는고” 예루살렘을 어머니로 의인화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낳은 적이 없는데 자식들이 많이 생겼고, 자기가 양육하지 않았는데 자식들이 잘 자랐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입니다.

이것은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볼 때 놀라고 감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의 능력으로 된 것인 만큼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떠한 환난과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도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승리하게 되고 부흥하게 되고 하나님 나라는 확장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잊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이름을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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