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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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4 주일오전예배 설교 (고후 4:6 / 우리 마음에 비추어진 빛)(김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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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04-14 14:55 조회3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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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HxsPijH1QYY?si=5W1TTe9szZIkuDrA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입니다. 빛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빛이 없는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두움을 경험해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어디에서 살든지, 언제를 살아가든지 빛이 전혀 없는, 정말로 어두움 밖에 없는 상태를 살아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가장 먼저 창조하신 것은 바로 ""입니다. 창세기 13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빛을 왜 창조하셨는지 그 이유가 2절에 나옵니다.

창세기 1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시기 전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빛이 전혀 없는 완전한 암흑과 혼돈의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암흑과 혼돈을 정돈하시는 창조의 사역을 "빛이 있으라"는 말씀을 통해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신 동시에 빛이 생겨났습니다. 빛이 생겨남으로 흑암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광채가 모든 공간을 비추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신 최초의 사역입니다. 위대한 천지창조 사역의 위대한 서막이 열린 순간입니다.

 

1. 바울에게 비추어진 빛

그런데 본문에서 바울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빛을 비추어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바울은 이 일을 직접 경험한 사람입니다. 이 사건은 바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바울의 인생의 경주에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바울이 가말리엘에게서 율법을 배우고, 유대교에 심취해서 하나님을 위한 충성심으로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바울은 나사렛 예수라는 별 볼이 없는 사람을 메시야로 믿는 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벌레와 같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단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야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혹시 말을 듣지 않으면 붙잡아서 감옥에 가두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헌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특별한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다메섹에 사기꾼 예수를 추종하는 자들이 숨어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바울은 종교지도자들의 특별 파송을 받아 그들을 붙잡으러 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의기양양했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고 헌신하고 수고하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도행전 9: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다메섹에 거의 도착했을 때 쯤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그 순간 태양보다 강렬한 빛으로 인해 바울의 육신의 눈이 가리워지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영의 눈이 떠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영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죄악의 어두움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고 새로운 빛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빛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었습니다.

유대교에 있었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어렴풋하게 목격하고 있었습니다. 구약에 계시된, 율법의 의식과 제사법 속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그에게 비추어진 빛은 바울이 전에 알고 있었던 그 빛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영광을 환하게 밝혀주는 빛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큰 충격에 빠지게 한 것은 그 빛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미워하고 가증스럽게 여기고 그를 추종하는 자들을 능멸하려고 했었던 그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본 그는 큰 충격에 쓰러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빛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대교와 율법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한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비춰진 빛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었습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알게된 이 사건을 말하면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구원사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걸까요?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새로운 빛을 비춰주신 일을 천지창조와 동일한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에 바울의 이러한 생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견한 바울은 그 순간 하나님의 새 창조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이전 것이 완전히 지나가 버리고, 완전히 새 것으로 재 탄생되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2. 우리에게 비추어진 빛

그런데 이 사건은 바울 혼자만의 경험이 아닙니다. 바울만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을 다시 보면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에게 이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까? 바울에게만 비추어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 모두에게 이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바울만 새로운 피조물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첫 창조와 새 창조를 비교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는 오직 말씀만으로 온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새 창조를 이루시기 위해서 성자 하나님께서 성육신 하셨습니다. 33년 동안 죄악 세상에서 살아가셨습니다. 3년 간의 공생애 기간 동안 여러가지 일들을 하시는 가운데 핍박과 조롱과 멸시천대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어주시고, 무덤에까지 묻히셨습니다. 그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첫 창조와 비해서 새 창조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수고와 희생과 순종은 가히 첫 창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그런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빛나는 이 빛을 가리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라고 해도 문맥상 전혀 어색한 것이 없고 자연스러운데, "아는" 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안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고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더욱이 모든 성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하게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단순히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부터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교에 충실했던 바울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찾아오셔서 그를 만나주셨을 때 하나님을 더 가까이, 더 분명하게,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도 유일하신 하나님으로서의 "여호와의 영광"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브라함과 언약하시고, 모세를 통해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고, 만나를 내려주시고,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에 구름이 가득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모습으로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자연만물 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하늘이 선포하고 땅이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자연만물들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영광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구약 성경의 모든 기록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영광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그에게 비추어 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단지 하나님을 안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영광을 안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았습니다. 그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지식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묵상을 하고 사색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자연만물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고,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저절로 하나님의 영광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발견하고, 배울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스도에게 계시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그 순간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의 황제가 머릿 수당 세금을 빠짐 없이 걷기 위해서 제국의 인구조사를 명령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로마 황제의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마리아가 만삭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호적을 등록하러 가야만 했습니다. 제국 전체에서 베들레헴인 고향인 자들이 일순간에 한데 모이게 되니 역사상 최대의 인파가 베들레헴 안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방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마리아는 진통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거리고 있을 때 기적적으로 마굿간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마굿간에서 예수님이 태어나고, 말 구유에 누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떠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리석 궁전에서 태어나고, 황실의 자주빛 옷에 감싸여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비웃으셨습니다.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고 높게 평가하는 세상의 화려함과 영광을 멸시하셨습니다. 마굿간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사치스러움과 상관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기로 계시면서도 온 우주의 왕권을 드러내시고 온 세상을 통치하셨습니다. 목자들이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에게 문안하기 위해서 얼마나 서둘러서 달려갔습니까? 멀리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져다가 주님의 발 앞에 드리고 경배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자신이 온 우주의 왕이라는 것을 아기의 상태로도 분명하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12세의 어린 아이 였을때 율법 박사들 가운데 앉아서 어린 아이의 언어로 말씀하실 때에도 그들의 지혜와 사상을 좌절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고 미혹해서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려고 했지만 주님은 오직 말씀만으로 마귀를 쫓아내 버리셨습니다. 모든 죄악을 정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개를 가지고 장정만 5천명, 여인과 어린아이까지 하면 2만명이나 되면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온 우주의 모든 만물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살아가게 하시는 만유를 소유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무덤에 들어간지 4일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는 만물의 생명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주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시고 함께 식사하신 것을 통해 허물과 죄를 눈 감아주시는 자비롭고 은혜로운 하나님의 영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주님의 전 생애를 다 살펴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실 때든지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나오시는 한 사건만이라도 택해서 보게 된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기 양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바치셨을 때, 그때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뚜렷하게 계시됐던 적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택한 자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두손과 두발에 못이 박히셨을 때 그때만큼 하나님의 공의가 분명하게 빛났던 적은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켜보았던 백부장이 떨면서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그는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어 마땅한 죄인이고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예수님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지 3일만에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가장 찬란하게 빛이 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그늘을 떠나셨을 때 그의 권세와 불멸과 영원한 엄위가 밝게 빛났습니다.

요한계시록 118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을 이 땅에 계시다가 원래 계셨던 곳으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때 그리스도의 신성이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주께서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그 영광을 다시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충만하게 나타날 그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게 언제인지 아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뚜렷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게 됩니다. 우주와 자연과 같은 피조세계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다소 볼 수 있습니다. 거대한 대자연의 장엄한 현상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보다 광대하신 분이십니다. 하늘들의 하늘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면 다른 차원의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 분이십니다(골로새서 29).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고 그 본체의 형상이십니다(히브리서 13). 우리는 눈에 보이는 창조계를 통해 하나님의 솜씨와 작품을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봅니다(마태복음 123).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태초에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춰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되었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계셨다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사람들 사이에 거하셨다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우리는 이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패한 죄인이고 연약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절대로 그리스도의 삶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 속에 계시된 주님의 삶을 통해 주님이 하나님이셨다는 풍성한 증거를 보게 됩니다.

 

4. 우리 마음에 빛이 비추어진 결과

이렇게 주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고 있는 동안 우리에게 일어나는 한가지 일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주님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우리의 눈이 밝아진다는 것입니다. 강렬한 태양 빛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합니다. 뜨거운 여름날 정오에 밝게 빛나는 태양 빛을 직접 마주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은 우리의 눈을 더 밝게 만듭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눈이 깨끗해 집니다. 그리고 주님을 찬송하면서 주님을 점점 닮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습니까? 그 사람들의 영적인 눈이 멀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영적인 소경이였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을 전혀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공중 권세 잡은 마귀가 빛이 사람들에게 이르지 못하도록 사람의 마음의 어두움을 더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고린도후서 44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지금도 마귀는 어떻게든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하려고 세상 사람들을 혼미하게 하는 일을 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종종 이단들의 열심을 보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단의 가르침은 악한 것이지만 그 사람들의 열심은 배워야 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들의 우두머리인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미쳐서 날뛰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는 이 세상의 신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마귀의 머리를 짓밟으셨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치명상을 입었고, 무저갱에 갇히게 될 운명에 처했습니다.

 

5. 하나님이 빛을 비추신 자인 우리가 해야 될 일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사람들의 마음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마귀보다 강력한 도구입니다. 우리의 능력만 가지고서는 마귀의 궤계와 술수를 이겨낼 수 없지만 복음이 있으면 마귀를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어떻게든 우리의 눈을 가리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없게 만들려고 합니다. 돈에 눈이 멀게 만들고,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게 만들려고 합니다. 여러가지 사건과 사고와 문제들과 시험으로 인해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그러나 복음이 있으면 오히려 마귀의 눈을 멀게 만들 수 있습니다. 복음이 있는 곳에 마귀가 발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 아닌 것에는 마귀가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고 방해할 수 있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앞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한발자국도 다가오지 못하고 도망쳐 버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두움은 빛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이 빛을 소유하고 계십니까? 이 빛을 여러분만 가지고 계시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빛을 비추신 것은 그 빛을 열방에 비추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가리게 만들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마귀에게서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사도행전 2617-18“[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신 이유도 똑같습니다. 죄로 인해 눈이 어두워져 있는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빛을 나만 소유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아침에 해가 떠올라서 집 안으로 햇빛이 비추는 것이 너무 아름답다고, "빨리 창문 닫어! 이 빛을 붙들어두자!" 라고 말한다면 그 방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금새 어둠 속에 묻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비춰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온 세상을 향해 반사해야 합니다. 이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늘 거룩하고 정결하고 깨끗하게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반사해내는 반사경입니다.

우리가 깨끗하면 깨끗할수록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더욱 밝게 빛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면 배울수록, 닮아가면 닮아갈수록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찬란하게 비쳐지게 될 것입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비춰주신 복음의 빛을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 밝게 비춰줘야 하겠습니다. 우리 복용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해서 복용동과 학하동과 계산동 지역을 밝게 비추는 복음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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