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2 주일오전예배(막 10:46-52 믿음과 소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탄방교회1관련링크
본문
[마가복음 10:46-52] “믿음과 소원”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의 소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가치는 자신의 소유, 지식, 지혜에 있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믿음과 소원에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여리고에 들어갔다가 나가는 중이었는데,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 만날 기회를 놓치지 않음(46)
46中에 “여리고에 나가실 때에”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앞으로 여리고에 오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 길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데, 잡혀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바디매오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주위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라고 알려줬습니다(눅 18:36-37). 그러자 바디매오는 즉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일생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인데, 바디매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기회를 놓칠 때가 많습니다. 일생 중 가장 좋은 만남의 기회가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인데, 이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알아야 할 때가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입니다(사 56:6).
이런 기회는 바른 소원과 바른 믿음이 있어야 옵니다. 주님을 만날 기회가 있고, 회개할 기회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기회가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고후 6:2).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됩니다.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2. 바디매오는 예수를 메시야로 믿음(47)
바디매오가 예수님이 지나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외쳤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나사렛은 갈릴리의 조그만 마을로서 무시받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나사렛 예수는 촌뜨기 예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은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메시야를 일컫는 고유명사입니다. 성경대로 메시야가 오셨고, 수많은 이적과 표적을 보여주시고 증거하셨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바디매오는 어려서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배웠을 것이고, 길에서 구걸하는 중에 오고가는 사람들을 통해 메시야에 대한 복음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가 어떤 병자도 고치시고, 귀신도 쫓아내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다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소경이었기 때문에 들은 것에 대해서 잘 기억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를 생각하면서 묵상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믿은 것입니다. 장차 메시야가 오시면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노래한다고 예언되었는데 예수님이 이 일을 성취하셨습니다(사 35:3-6).
그래서 바디매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디매오의 믿음은 성경에 근거한 바른 믿음입니다. 소문을 듣고 믿었지만 성경에 맞기 때문에 옳은 믿음인 것입니다(기생 라합의 믿음).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확실히 믿었지만 소경이기에 예수님에게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가 자기 옆을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르는 외마디 비명처럼 목숨 걸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얼마나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는지 주변 사람들이 나무랄 만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사람들의 비판에 굴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긍휼만을 구했습니다.
3. 바디매오는 방해를 극복했다(48-49)
바디매오가 주님께 나아가는데 방해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었습니다. 먼저 믿는 사람이 이제 막 믿는 형제들에게 방해와 걸림이 될 수 있습니다. 냉정함, 불친절함, 선입관, 덕이 되지 않는 행동, 형제의 열심을 무시하는 일 등으로 성도가 시험에 듭니다. 사람들이 교회 나오기 꺼리는 이유 중에 하나가 신자가 신자답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곳입니다. 따라서 사람 때문에 교회 나오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지상교회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사람 때문에 교회 나오지 못하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주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바디매오는 사람들의 방해에도 시험에 들지 않고, 말릴수록 더 크게 소리질렀습니다. 이는 낙심할만한 일에 굴복하지 않는 역동적인 믿음으로 우리가 본받을만한 믿음입니다.
예수님만이 눈을 뜨게 하실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주님께 나아가는데 어려움과 장애가 있어도 바디매오처럼 더 주님을 의지하고 더 소리 지르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4. 겉옷을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옴(50)
바디매오는 주님이 부르실 때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갔습니다(50). 겉옷은 낮에는 코트로, 밤에는 이불로 쓰이는 바디매오의 전재산입니다.
주님을 따르는데 방해되는 것을 던져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채워주십니다. 취미, 돈, 일 때문에 교회 못 나온다고 하는 것은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겉옷은 생활에 필요한 것이었지만 없어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소한 것 때문에 예수께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가복음 14장에 한 임금님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초청합니다. 그런데 청함 받은 사람이 한결같이 사양합니다. 물질 문제, 세상 여러 가지 일들, 인정에 매여서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결국 이것들 때문에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이 겉옷입니다. 분명 필요한 것들이지만 구원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바디매오는 주님께 나아가는데 걸리는 것 다 던져 버리고 예수님께 달려갔습니다. 주님이 이것을 보시고 얼마나 기쁘셨겠습니까?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듣기만 하고도 적극적으로 믿고 뛰어나왔습니다.
5.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51-52)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어보나마나한 질문을 하셨는데, 그가 어떻게 예수를 믿고 있는지 보시기 위해서 물으신 것입니다.
만약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선생님 정도로 알았다면 눈 뜨게 해달라고 하지 못했겠지만, 메시야로 믿었기 때문에 눈 뜨기를 원한다고 한 것입니다. 주님은 전능자이시기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바디매오에게 있어 눈 뜨는 것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고, 경제 문제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구하는 기도내용이 중요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가지만 구하라고 하신다면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이것이 없는 사람은 소원이 없는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 욕심으로 구하지 말고 한가지만 택하십시요. 예수 믿는 사람이 소원이 없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버지신데 왜 소원이 없습니까?
52上에 “예수게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졌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를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한 말씀으로 영혼과 육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깨끗한 믿음의 그릇만 준비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와 선물들을 부어주시고 우리의 모든 소원들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소경 거지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눈 뜬 소경이 많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주님을 알지 못하면 영적 소경입니다. 바디매오가 소경이었을 때 어쩔 수 없이 거지가 되었습니다. 영적 소경이 되면 영적 궁핍이 찾아옵니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요.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할 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