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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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3 수요저녁예배 설교 (이사야 36:21-37:13 / 위기 가운데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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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5-12-04 09:48 조회91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링크 : https://youtu.be/wwUT5ArGQqM?si=FT5_D1XpdiYxGe20

 

(설교 요약)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나라와 열방의 소식, 가정과 직장, 건강과 자녀 문제까지 위기와 불안의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지냐, 하나님이 정말 계시냐”라는 조롱 섞인 말들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며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백성이 노골적인 조롱을 당하는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앗수르 장군 랍사게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지 말라, 여호와도 너희를 지켜주지 못할 것이다”라며 공개적으로 신앙을 흔듭니다.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마음이 격동되었을 것이고, 맞받아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하나님 백성은 뜻밖에도 침묵을 선택합니다. 이 본문은 위기 가운데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방향을 보여줍니다.


1. 침묵과 보고 (36:21-22)

랍사게가 성벽 아래에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백성을 조롱했을 때, 백성들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이는 히스기야 왕이 “대답하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사신들이 아람 방언으로 말해달라 요청했다가 오히려 조롱을 더 부추긴 경험을 통해, 불필요한 한마디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조롱당하거나, 억울한 말과 왜곡된 말들을 들을 때 즉시 말로 맞서고 싶은 욕구가 올라옵니다. 그러나 감정에 휩쓸려 말하면 상대는 더 흥분하고, 결국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말과 태도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말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입을 지키는 것”이 믿음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이 침묵은 체념이나 포기가 아닙니다. 22절을 보면, 신하들은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 랍사게의 말을 그대로 보고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한 것에 슬퍼했고, 백성을 미혹하는 말에 분노했고, 그래서 옷을 찢었습니다. 랍사게와 말싸움은 하지 않았지만, 그 말을 흘려보내지도 않고, 왕에게 가져갑니다. 왕이 이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믿음을 조롱하는 소리를 들을 때, 분노로 말로 대응하기보다 “주님,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주님의 이름이 모욕당했습니다” 하며 기도로 가져가야 합니다. 그때 내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랍사게의 입을 막으십니다.


Ⅱ. 히스기야의 겸비와 기도 요청 (37:1-5)

신하들의 보고를 들은 히스기야는 즉시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갑니다. 왕의 옷을 찢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모독당한 것을 애통해하는 표시이며, 베옷은 심판과 회개의 때 입는 옷입니다. 히스기야는 이 일을 단순한 정치‧군사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봐야 할 영적 문제”로 본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먼저 사람을 찾아가지 않고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위기를 대하는 믿음의 첫걸음은 “내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낮아지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왕궁 관리와 서기관, 제사장들까지 함께 베옷을 입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진짜 위기의 때, 지도자들이 먼저 무릎 꿇는 모습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입니다.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내 현재의 상황을 알리고 기도를 요청합니다. 그는 왕으로서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종에게 기도를 부탁함으로 하나님의 위로와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그는 그날을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고 표현하며, 마치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라고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합니다.

자신의 체면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당하는 것을 더 심각하게 여기고, “남아 있는 자”를 위해 기도해 달라 부탁하는 히스기야의 모습은, 위기 속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위기 자체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찾는지, 어떻게 기도하는지가 우리의 운명을 가릅니다.


Ⅲ.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응답 (37:6-7)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곧바로 응답을 주십니다.

“너희가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상황은 눈에 보기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지만, 하나님은 환경을 바꾸시기 전에 먼저 말씀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환경이 아니라 말씀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은 잘난 척하며 조롱하던 랍사게를 “앗수르 왕의 종들”, 곧 ‘풋내기들’이라 부르시며 낮추십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위풍당당하고 강해 보여도, 하나님의 눈 앞에서는 한낱 이방 왕의 종, 어린아이일 뿐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결국 “히스기야를 조롱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능욕한 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 싸움의 참된 당사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어서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소문을 듣고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그 땅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고 구체적으로 약속하십니다. 왕의 마음, 전쟁의 판도, 나라의 흥망성쇠까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선포하십니다. 산헤립은 자기 뜻대로 역사를 움직이는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움직이고 있음을 말씀은 드러냅니다.

우리도 눈앞의 뉴스와 정세만 보고 미래를 불안해하기 쉽지만,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들은 그 말, 내가 다 듣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 왕들의 마음도, 소문도, 마지막도 내가 결정한다.”


Ⅳ. 산헤립의 계속되는 조롱 (37:8-13)

한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구스 왕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들리고, 산헤립은 군대를 돌려야 하는 상황을 맞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역사 속에서 성취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산헤립은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편지를 보내 “너는 네가 신뢰하는 하나님이… 하는 말에 속지 말라”고 조롱합니다. 이는 사탄이 오늘도 성도에게 속삭이는 말과 같습니다. “예배 드려도 달라질 것 없다. 기도해도 소용없다. 하나님이 지키신다면서 왜 아직 이 모양이냐?” 산헤립은 과거 앗수르가 멸망시킨 여러 나라와 그 신들을 예로 들며, 여호와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부분적으로 사실인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잘못된 결론으로 믿음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전략도 이와 같습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 현실적인 말들을 사용해서 결국 “그래서 하나님을 너무 믿지 마라”는 결론으로 이끌어가려 합니다.

그러나 이 계속되는 조롱은,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히스기야가 편지를 들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 그 글을 펴놓고 기도하도록 이끄는 도구가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불신앙의 말과 조롱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위기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위기 속에서 우리가 어디로 달려가는지, 누구를 찾는지, 어떻게 기도하는지가 우리의 믿음을 결정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에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보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더 크게 듣고, 히스기야처럼 모든 염려와 조롱을 하나님 앞에 펴놓고 기도함으로,하나님의 응답과 구원을 실제로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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