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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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6 수요저녁예배 설교 (이사야 36:1-20 / 세상의 조롱과 하나님의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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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5-11-26 22:09 조회1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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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링크 : https://youtu.be/CfBIxbeAcpc?si=jmBcH9SSnU4haqw6

 

(설교 요약)


우리는 이 땅을 살면서 환난과 문제를 겪지만, 그 자체보다 더 아픈 것은 “하나님 믿는 것”이 조롱당할 때입니다. “기도해봐야 뭐가 달라지냐”, “예수 믿어봤자 현실이 뭐가 좋으냐”는 말, 비웃는 눈빛, 형편이 어려워질수록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는 말이 우리의 믿음을 흔듭니다. 오늘 본문에서 앗수르 왕 산헤립은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거의 다 점령하고, 사신 랍사게를 보내 예루살렘 성 앞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여호와께서 건지신다 해도 속지 말라!” 이는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하나님과 믿음을 향한 정면 도전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조롱하는 자요,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눈에 보이는 세력을 넘어 살아계신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입니다.


Ⅰ. 유다를 침공한 앗수르 (1-3절)

히스기야 14년에 앗수르가 올라와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했습니다. 예루살렘만 남은, 사방이 뚫린 고립 상태입니다. 히스기야는 악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우상을 제거하고 산당을 헐며, 예루살렘 예배를 회복한 신앙개혁의 왕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좋은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앗수르의 침공을 허락하십니다.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결단할 때 오히려 더 큰 시험과 공격이 올 수 있습니다. 신앙개혁 이후에 더 거센 환난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 위에 바로 서려는 자를 더 단단한 믿음으로 세우시고, 자신만 의지하도록 연단하십니다.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시고 피할 길을 내시는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맞는 훈련으로 믿음을 자라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제 좀 평안하다”고 생각할 때에도, 이 땅의 평안은 잠시 맡기신 것일 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환난을 미리 두려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환난이 와도 실족하지 않도록 마음의 방향을 항상 하나님께 두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도 교회와 가정과 다음 세대를 지키는 영적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조롱과 미혹의 말이 밀려올 때, 그 앞에 서서 분별하고 막아 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Ⅱ. 랍사게의 교만한 도전 (4-10절)

랍사게는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에게 묻습니다.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4-9절에 ‘믿다’라는 동사가 반복됩니다. 대적은 우리가 무엇을, 누구를, 어떤 힘을 의지하고 있는지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기도한다, 믿는다 말은 잘하지만 현실에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조롱이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옵니다.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을 들춰 보여 스스로 초라하게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는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랍사게는 또 유다가 애굽을 의지한다고 꼬집습니다.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다.” 하나님은 때로 믿지 않는 자의 입술을 통해서도 우리가 몰래 붙잡고 있던 ‘애굽’을 드러내십니다. 돈, 사람, 자리, 경력…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들이 상한 갈대임을 깨우쳐 주십니다.

또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을 왜곡합니다. 산당과 제단을 없앤 것을 여호와를 화나게 한 일처럼 비틀어 말합니다. 말씀대로 예배를 바로 세운 일을 세상은 미련한 선택, 인생 망치는 길로 조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라와 인생의 흥망성쇠는 주께 달려 있고, 예배가 가장 큰 능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8-9절에서 그는 현실의 격차를 들이대며 “말 이천 필을 줘도 탈 자가 없다, 너희는 상대가 안 된다”고 조롱합니다. 오늘 교회의 숫자와 세력의 약함을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되,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는 눈입니다.

10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올라가 이 땅을 멸하라 하셨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이름까지 이용합니다. 오늘도 “이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다”라며 사람을 낙심시키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드는 말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을 다 믿지 말고 분별하라”(요일 4:1)는 말씀대로, 어떤 말이든 성경 전체와 하나님의 성품, 복음의 중심에 비추어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널 버리셨다”는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Ⅲ. 유다 백성을 향한 심리전 (11-12절)

랍사게의 공격은 지도자에서 일반 백성에게로 향합니다. 히스기야의 사신들은 “유다 방언으로 말하지 말고 아람 방언으로 말하라”고 요청합니다. 백성들이 그 말을 직접 들으면 두려움과 의심에 빠질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교회에서는 목사와 장로와 교사들이 이런 ‘영적 필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과 성도들의 귀로 들어가는 말과 콘텐츠를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랍사게는 오히려 더 크게, 더 적나라하게 “대변을 먹고 소변을 마시게 될 것”이라는 극단적 그림을 그리며 공포를 심습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최악의 미래를 상상하게 하여, 지금의 믿음을 포기하게 만드는 사탄의 심리전입니다. 이때 우리는 두려운 말을 마음속에서 계속 되뇌지 말고, 곧장 기도의 자리로 가져가야 합니다. 들려오는 소문과 상상 속 재앙보다 크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Ⅳ. 하나님을 향한 모독 (13-20절)

마지막으로 랍사게는 하나님을 직접 모독합니다. “히스기야에게 미혹되지 말라, 여호와께서 건지신다 해도 믿지 말라”고 하며 지도자와 백성을 이간하고, 하나님과 성도 사이를 떼어놓으려 합니다.

16-17절에서는 항복만 하면 포도와 무화과, 우물물을 마음껏 누리게 하고, 더 좋은 땅으로 옮겨 주겠다고 달콤하게 약속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포로와 강제이주의 땅, 자유를 빼앗기는 자리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타협과 양심 포기, 죄와의 거래 위에 세워진 거짓 평안일 뿐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환난 속에서도 “내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확신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18-20절에서 랍사게는 여호와를 다른 나라 신들과 같은 수준으로 취급합니다. “다른 신들도 못 지켰는데 여호와라고 다르겠느냐?” 그러나 우상의 신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고, 여호와는 창조주요 만유의 주권자이십니다. 세상은 오늘도 “종교는 다 비슷하다, 예수 믿어도 별 수 없다”고 말하지만,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조롱을 뒤집으셨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해 보이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결론

랍사게는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며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요,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눈에 보이는 형편을 넘어 살아계신 주를 신뢰하는 자입니다. 우리 귀에 믿음을 비웃는 말, 두려움을 부추기는 말, 타협을 요구하는 말이 들려올 때마다, 그 소리에 끌려가지 않고 그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 모두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나의 반석이요, 구원이요, 방패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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