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5 수요저녁예배 설교(롬 10:11-21 / 이방인이 구원을 받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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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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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IgJ8jKMRGu0?si=3Ydo6HSlEv8mU-az
11-13절
"누구든지" 유대인이든지, 헬라인이든지, 혈통이나 민족이나 차별이 없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
유대인이든, 헬라인과 같은 이방인이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차별 없이 구원을 받는다. 유대인이라고 봐주고 이방인은 봐주지 않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된다. 어제까지 우상숭배하고 점치고 죄인으로 살았어도 오늘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믿는 사람의 주가 되신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다. 믿는 자는 영적으로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 사람이 하늘로 가서 주님을 모시고 내려올 필요가 없다. 사람이 무저갱으로 가서 주님을 부활하게 할 필요가 없다. 주님이 이미 이땅에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시고 부활승리하셨다. 주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구원받는 길이 가까이 있고 쉽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해서 고행이나, 멀리 가서 힘써 수고를 한다거나,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이 복음이 우리에게 은혜 중에 은혜이고 복 중에 복이다. 과거에는 이방인을 개와 같이 여겼다. 그런 시대에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는 파격적이고 놀라운 은혜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진리를 너무 싫어했다.
14-15절
구원의 과정을 설명한다. 믿지 않는 자를 부를 수 없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부르려면 믿어야 한다. 믿지 않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없다. 먼저 믿음이 생기고 예수님을 구주로 알게 되는 믿음이 있어야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된다.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했는데, 믿어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예수님을 믿으려면 예수님에 대해서 들어야 한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들어야 한다.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다. 그래서 듣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마귀도 이것을 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믿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못듣게 하는 훼방을 한다. 말씀을 못듣게 하기 위해서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한다. 교회에 가더라도 졸음이 오게 하고 딴 생각이 나게 해서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한다. 교회를 오래 다녀도 말씀에 집중하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날 수 없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4)
세상 신은 마귀를 가리키는데, 마귀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한다. 말씀을 들리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복음이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게 방해한다. 이것을 이기고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구원받는 길로 갈 수 있다.
들으려면 누군가 전파해줘야 한다. 전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듣게 되고,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있어야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전파하리요" 전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도, 전도자는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모든 전도자는 하나님이 보낸 자들이다.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보내시고, 칠십인을 보내시면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전해주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고 듣지 않으면 믿음이 생겨나지 않는다.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복음을 전해야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보내셨다. 우리가 다 보냄을 받은 자들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전도자들은 파송받은 놀라운 책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한다. 교회의 최대 사명은 전도이다. 전도는 사명이요 의무이며 책임이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고 했다. 에스겔은 피 값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악인에게 복음을 전해서 회개하게 하고 구원을 받게 하면 복있는 일이지만, 전하지 않아서 그 사람이 깨닫지 못하고 듣지 못해서 회개하지 않는다면 악인은 죄값으로 죽겠지만 전하지 않는 자에게는 피값을 찾겠다고 했다.
복음을 전하는 발, 전도하러 다니는 발은 아름답다. 사람들 중에는 부지런히 다니면서 죄짓는 발도 있다. 악으로 빨리 달려가는 발이 있다. 그런데 복된 발은 복음을 전하는 발이다. 부지런히 다니면서 산을 넘어 다니고 들판을 넘어가고 골목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발이고 아름다운 복된 발이다.
바울이 신체를 이용해서 복음에 대해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고, 발로 다니면서 전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전도하지 않아도 구원받도록 예정되었으니까 전도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것이라고 하고, 불택자는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고 지옥에 갈 것이니 전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궤변이다.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구원하실 때 전도를 통해서 구원받도록 방법까지도 예정하셨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스스로 찾아서 교회에 나오고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택한 자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 구원받을 자를 예정하시고, 구원의 방법도 예정하셨다.
로마서 9장에서 선택과 예정을 가르친 것이 바울이다. 10장에서는 전도에 대해서 강조한다. 예정을 가르친 바울이 전도를 해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바울만큼 열심히 전도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예수님을 믿는 자 중에 최고로 열심히 전도한 자가 바울이다.
예정과 선택을 제대로 믿었다면 전도해야 한다. 그래서 멀리 외국에까지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고 목숨을 바치기까지 하는 것이다.
16절
"그러나"가 중요하다. 복음을 전하면 듣게 되어 있고, 들으면 믿게 되어 있고, 믿으면 구원받게 되어 있는데,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않았다. 선지자와 사도들이 열심으로 복음을 전했지만 다 믿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일부는 구원받았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그래서 구원받지 못했다.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유대인들이 순종하지 않았다. 듣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인데, 믿지 않았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은 것이다. 순종하는데 까지 가야 진짜로 믿은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일부만 순종하고 대부분은 순종하지 않았다.
구약 4천년 동안 장차 오실 메시야를 증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순종하지 않았다. 왜 순종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고 강퍅했기 때문이다.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듣고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다.
17절
믿음은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자라나는가?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긴다. 말씀은 씨와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이 씨이다. 씨를 뿌리지 않았으면 햇빛을 쬐고 물을 뿌려줘도 자라날 수 없다.
아무것이나 들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말씀, 성경말씀, 복음을 들어야 믿음이 생겨날 수 있다. 말씀 듣는 것에 힘써야 한다.
계시록 2-3장에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을 주시면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다. 말씀을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는다. 들을 귀를 열어달라고 기도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들어야 한다. 그래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자라날 수 있다.
18절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들어서 안믿은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하게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도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 왜 들었는데도 예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는 말씀이다.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 온 땅에 퍼졌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에까지 복음 전파가 다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믿지 않았다.
불신앙이 불순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듣고도 순종하지 않았다. 듣고도 믿지 않았다. 누구보다 먼저, 많이, 정확하게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 이것이 불신앙이다. 강퍅하고 완고해서 그렇게 되었다.
19절
"그러나"가 또 나온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몰랐는가? 아니다. 알았다. 알았는데도 믿지 않았다. 분명하게 말씀을 들었는데, 알면서도 믿지 않았다. 정말 못들어서, 복음을 듣지 못해서, 몰라서 안믿었다면 이해가 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들었고 알았지만 믿지 않았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듣고 하나님의 뜻도 알았는데 순종하지 않고 도망쳤다. 우리도 몰라서 못지키는 것도 있지만 알면서도 못지키는 것이 있다.
신앙은 순종으로 이어진다. 순종해야 참 믿음이다. 들어도 순종하지 않으면 불신앙이고, 알아도 순종하지 않으면 불신앙이다. 순종으로 이어지는 것만 참 신앙이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롬 1:5)
복음 전도의 궁극적 목적은 믿어 순종하게 하는 것이다. 믿으면 순종하게 된다. 궁극적인 신앙의 목표가 이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왜 타락하고 멸망하는 길로 갔는가?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왜 불순종했는가?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은 십자가까지 순종하시고 순종의 본을 보여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음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았고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믿지 않고 거역하고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기가 나게 하겠다고 하셨다.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파하게 하셔서 이방인이 믿고 구원받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신다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들었다. 그렇지만 마음이 완고하고 교만했기 때문에 믿지 않았다.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히 3:15)
가나안이 없어서 못들어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안들여보내주셔서 못들어간 것이 아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애굽에서 건져주시고 광야에서 인도해주셨지만 불신앙 때문에 못들어갔다. 마음이 완고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순종하지 않았다.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는 것이 참 믿음이다.
20절
"찾지 아니하는 자들, 묻지 아니한 자들"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만 선민인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구원받을줄 알았는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구원받게 하는 것을 보고 시기가 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21절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 아무리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을 전해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주 버리겠다고 하시지 않았다.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 종일 팔을 벌리고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방인의 때가 다 차고 나면 이스라엘도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정리]
11-13절 누구든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14-15절 믿으려면 복음을 전해줘야 한다. 부지런히 전도해야 한다.
16-21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해줘도 믿지 않았다. 들었고 알면서도 믿지 않았다. 순종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완고함과 불순종을 낯낯이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시고 종일 팔을 벌려 기다리신다. 얼마나 사랑과 은혜가 크신지 알 수 없다. 우리도 은혜로 구원받았다. 이 은혜에 늘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며 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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