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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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6 주일오전예배(빌레몬서 1:8-14 / 오네시모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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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19-05-28 00:41 조회3,7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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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상 : https://youtu.be/c1gIlNye-1I

음성 파일 : https://files.mycloud.com/home.php?brand=webfiles&seuuid=d1178cbd305f678efc332db5699720e0&name=190526_1112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쓴 이유는 오네시모라는 사람 때문입니다. 오네시모는 원래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그 주인 빌레몬을 배반하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냥 도망만 친 것이 아니라 주인 빌레몬의 돈을 훔쳐가지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런 오네시모가 사도 바울을 만나서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 오네시모를 옛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오네시모가 옛 주인 빌레몬에게 돌아가면 오네시모는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당시 법으로는 종이 도망치다 붙잡히면 재판없이 즉결처형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주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씁니다. 그 편지가 바로 우리가 지금 살피고 있는 빌레몬서입니다. 오늘은 오네시모가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고, 그렇게 변화된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오네시모는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오네시모라는 이름의 뜻은 ‘유익한 자, 유용한 자, 쓸모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름대로 살지 못하였고, 자기 주인에게 무익하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인의 돈을 몰래 훔쳐 가지고 멀리 도망쳤습니다(18절). 그런 오네시모가 변화되었습니다.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첫째, 오네시모는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11절에 보면 “그가 전에는 너에게 무익한 자였으나, 이제는 너와 나에게 유익한 자가 되었으므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에는”이라는 표현과 “이제는”이라는 표현입니다. 오네시모는 전에 무익한 자였습니다. 자기 주인에게 아무런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주인의 속만 상하게 하고 주인에게 큰 해를 끼치고 도망쳤던 사람이었습니다. 종 구실도 제대로 못하던 쓸모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오네시모가 이제는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에게도 유익한 자가 되었고, 빌레몬에게도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유익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디에 가든지 유익한 자가 되고, 누구에게나 유익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과거와 다른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고 난 이후에 변한 것이 전혀 없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둘째, 오네시모는 바울의 심복이 되었습니다. 12절에 “그는 내 심복이라.” 오네시모가 바울의 심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심복’이라는 단어는 ‘내장, 중심, 심장, 핵심’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전적으로 믿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을 위해 생사고락을 같이 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10절에서는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라고 했습니다. ‘아들’이라고 표현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오네시모를 아들처럼 믿고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전에는 무익하던 오네시모가 유익한 사람이 되었을 뿐 아니라 사도 바울의 심복이라고 할 만큼 소중하고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항상 곁에 두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여호수아가, 엘리야에게는 사렙다 과부가, 엘리사에게는 수넴 여인이 배후에서 도왔습니다. 우리도 이런 말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셋째, 오네시모는 사랑받는 형제가 되었습니다. 16절에 보면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바울은 오네시모를 소개하면서 이제부터는 그냥 종으로만 대할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앞으로는 사랑을 받는 형제로 대해야할 자라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종의 역할도 제대로 못한 오네시모였지만 이제는 형제의 대접을 받을만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오네시모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골로새서 4:9에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모가 전에는 거짓되고 신실하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신실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진실하고 충성되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종처럼 대해서는 안 될 것이고 형제처럼 대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우리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진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진실하고, 우리가 믿는 말씀도 진리의 말씀입니다. 우리 이름도 신자입니다. 신자라는 말은 하나님을 믿는 자라는 의미도 있지만 믿음을 수 있는 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진실해야 합니다. 눈앞의 이익이나 욕심 때문에 사람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의리를 잘 지키고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오네시모가 변했음을 설명하면서 그를 영접해달라고 말합니다.

2. 오네시모가 변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오네시모의 변화는 교육 때문도 아니고, 징벌 때문도 아닙니다. 공부 많이 한다고 사람이 변하는 것 아닙니다. 야단치고 때린다고 변하는 것 아닙니다. 잔소리 많이 한다고 변하는 것 아닙니다. 오네시모가 변한 것은 바로 복음 때문입니다. 그가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10절에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바울이 오네시모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낳았다는 말은 복음을 전해서 영적으로 거듭나게 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감옥 안에서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를 거듭나게 했습니다.
사울을 변화시켜 바울이 되게 한 것도 복음이었습니다. 시몬을 변화시켜 베드로 되게 한 것도 복음이었습니다. 방탕자 어거스틴을 성자로 변화시킨 것도 복음입니다. 도망자, 무익한 자, 오네시모를 유익한 자로 변화시킨 것도 복음입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야 변합니다.
오네시모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누굽니까?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난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그가 바울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쩔 뻔 했습니까? 우리도 바울처럼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시다.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칩시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복음에 있습니다(롬 1:16).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들이 여러분들 때문에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오네시모가 변화된 것처럼 우리도 날마다 변하여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이 “요즘 많이 달라졌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네시모가 유익한 사람이 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일에 유익하고, 이 세상에 유익한 사람이 됩시다. 다른 사람에게 본보기가 되고, 다른 사람이 닮고 싶은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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