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목사님설교

20200304 수요예배 설교(사무엘상 3장 15-21절/사무엘을 세우심)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0-03-04 21:12 조회2,093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 https://youtu.be/q5KexTim-lU

에브라임 산지에 엘가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두 아내를 두고 있었다. 아내를 둘을 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옳지 못한 일이었다. 두 아내를 두었기에 두배나 행복했을까? 엘가나는 두 아내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민하며 괴로움을 많이 겪는다.
엘가나의 두 아내중 한나는 자식이 없고 브닌나만 자식이 있었다. 한나는 경건하고 착하고 믿음 좋은 여인인데 자식이 없었고 브닌나는 믿음이 없는 악한 여자였는데 자녀가 있었다. 세상에도 이런 일이 많다. 악한 자가 잘되고 형통하고 복받는 것 같은 일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악한 자가 선한 사람을 핍박하며 괴롭히는 일도 많이 있다.
엘가나의 온 가족은 매년 실로에 가서 제사를 드린다. 엘가나는 제사를 마치고 나면 자녀들에게 제물을 나눠주는데 브닌나와 자녀들에도 제물을 주었지만 한나에게 갑절을 주었다. 한나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한나는 자식이 없었지만 남편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브닌나는 시기가 나서 한나를 괴롭혔다. 이 가족은 제사를 드리고 오면 싸우고 다투고 분위기가 좋지 않게 되었다.
교회가서 예배 드리고 오면 평안하고 은혜받았으니 기쁨이 넘치고 화목해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 현상만 일어났다.
한나가 아이를 못낳은 것은 하나님께서 임신되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이다(1:6). 결혼해서 자녀를 낳는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낳게 해주셔야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브닌나는 자녀를 잘 낳았는데 자녀 없는 한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움 주는 마음을 가져야하는데 오히려 반대로 격동시키고 화를 돋구고 싸움하는 일을 했다. 한나는 더 속상해서 울면서 밥도 못먹는 고통스러운 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한나가 드디어 기도한다(1:9). 마음이 격동되어 슬플때 같이 싸우려고 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울면서 기도했다(1:10). 마음의 고통을 하나님께 다 털어놓고 통곡하면서 기도했다. 억울하고 원통하고 속상한 것을 다 내어놓고 기도했다.
특별히 한나는 서원기도를 했다(1:11).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자신이 어떻게 갚겠다고 약속하는 기도이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평생토록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다. 아들을 낳아서 브닌나를 이기겠다는 것이 아니고, 한을 풀고 자랑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아들을 낳아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했다.
한나는 오래 기도했다(1:12). 잠깐 기도하고 만 것이 아니라 간절히 오래 기도했다. 처음에는 울면서 큰 소리로 기도했는데 나중에는 음성은 들리지 않고 입술만 움직이는 기도를 했다. 엘리 제사장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술취한 것으로 오해했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1:19). 한나의 기도는 자기를 기억해 달라는 것이었다(1:11). 기도한대로 하나님께서 한나를 돌아보시고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가 간구한 모든 것을 이뤄주신다. 자녀를 허락하신 것이다.
드디어 한나가 임신해서 일년후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짓는다(1:20). 사무엘의 뜻은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이다. 사무엘이라고 이름을 부를때마다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으로 주신 아들이라고 감사하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이렇게해서 사무엘이 세상에 태어난다.
사무엘이 젖을 뗀 후에 사무엘을 성전으로 데려간다. 아직 어린 것이 분명하다. 그 어린 아이를 하나님께 드렸다. 한나는 약속을 이행하는 일에 미루지 않았다. 즉시 서원을 갚았다. 사무엘을 드리면서 큰 감사와 기쁨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과 약속해놓은 것을 지키지 못할때 늘 불안하고 답답하다. 약속을 지키면 후련하고 자유스럽게 된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말할수 없이 괴롭고 답답할 것이다. 그런데 한나는 서원한 것을 이행했다. 약속을 다지켰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고 은혜가 충만했겠는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더니 아들 셋과 딸 둘을 더 낳게 해주셨다.

2장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내 마음에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라고 기도를 시작한다. 성숙한 믿음에 도달한 것이다. 자녀가 있든 없든 속상하거나 고통당하거나 슬픔을 당하거나 하는 차원을 뛰어넘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여호와 한분으로 만족하는 믿음이 된 것이다.
한나가 하나님에 대해서 깊이 깨달은 진리가 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한나는 고난중에 기도하며 응답받은 후에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깨달았다.
인간의 생사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뜻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올은 지옥같은 곳이다. 아주 낮아져서 지옥에 내려가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구원받아 천국가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이 노력하고 힘써야 하지만 노력만 가지고 안되고 하나님이 복주셔야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겸손한 자는 높이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브닌나가 교만하다가 낮아졌고 한나가 겸손히 낮아져 기도했더니 높여주셨다.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을 모시고 감사하는 자리에 들어갔다. 우리도 하나님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에 대해서 깨달으면 죽고 사는 것을 초월할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높아지고 낮아지고 부해지고 가난해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 이것을 잘 깨달으면 염려 걱정하지 않고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순종하면서 살수 있을 것이다.
12절부터는 엘리제사장의 아들들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이고 제사장들이었지만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용하시지 않았다. 이들 대신에 믿음의 사람 사무엘을 사용하신다.
엘리의 아들의 잘못된 모습과 사무엘의 모습을 비교해서 보여주고 있다.
12절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제사장의 아들이다.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어려서부터 율법을 배웠고 성전생활을 했다. 그런데 이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 열심히 다니고 예배에 잘 참여하는데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면 얼마나 안타깝고 불쌍한 일인가.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다.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결국 멸망할수 밖에 없다. 세상에서 공부 많이 하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돈많이 벌어도 하나님을 모르면 결국 실패한 인생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복이다. 하나님을 알아야 영생을 얻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들은 행실이 나빴다고 했다. 한마디로 불량자들이다. 거침없이 악을 행하고 방탕하게 사는 못된 자라는 의미이다. 왜 그렇게 불량한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았다면 그럴수 없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일시적으로 죄에 빠졌다가도 금방 돌아온다.
17절에 이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크다고 했다. 제사를 멸시하고 제물을 약탈했다. 다른 사람이 제사를 드리려고 제물을 가지고 오면 자기들이 강탈해갔다. 그런 일들을 관습이라고 표현한다(2:13). 습관적으로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제물을 멸시하고 제사를 멸시했기 때문에 그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크다고 했다. 다른 죄도 짓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제사를 멸시하는 죄는 아주 큰 죄이다.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해놓았다. 오늘날로 하면 예배이다. 예배는 사람들의 행사가 아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성을 다해야 하고 마음과 뜻을 다해서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예배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되고 예배를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구원받은 성도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 예배이다. 그런데 엘리제사장의 두 아들은 예배를 멸시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을 받게 된다.

3장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3:1) 당시 이미 기록된 모세오경이 있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잘 가르치는 일을 제사장이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받아서 전해주는 일을 해야 한다. 구약시대에는 성경이 완성되기 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시는 말씀이 있었는데 엘리가 죄악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시지 않아 말씀이 희귀한 때였다.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희망이 사라지고 내일에 대한 기대와 꿈이 다 없어져버렸다. 절망적인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엘리가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지고 영적인 판단력이 흐려진 신앙적으로 잠자는 상태였다.
엘리의 두아들은 젊었지만 탐욕의 죄악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는 영적 암흑과 같은 시대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불러 일꾼으로 세우시는 것이다(3: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택하시고 부르시는 것이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부르시는줄 모르고 엘리에게 달려가서  불렀냐고 물었는데 엘리는 아니라고 한다. 6절에 다시 한번 자신을 부르는 음성을 듣고 엘리에게로 가는데 엘리가 아니라고 한다. 8절에 여호와께서 세번째 사무엘을 부르셨다. 또 엘리에게 갔더니 엘리가 이상하게 여기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으로 알고 사무엘에게 또 다시 부르면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답변하라고 한다.
10절에 여호와께서 네번째 사무엘을 부르시고 사무엘은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답변한다,
사무엘은 아직 나이가 어리다. 자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사무엘은 엘리가 부르는줄 알고 달려갔다. 세번씩이나 그렇게 했다. 네번째에는 엘리가 가르쳐줘서 하나님의 음성인줄 알게 된다. 사무엘은 사람이 부르는 것인줄로 알고서도 세번씩이나 자다가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보통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고 짜증을 냈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세번씩이나 순종의 마음으로 달려간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런 사람이기에 하나님께도 잘 순종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이정도 하는 사람이기에 하나님께는 더 잘 순종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이렇게 하는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겠는가. 사무엘이 참 믿음의 사람이고, 순종의 사람인 것을 알수 있다.
10절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의 이름을 부르신다.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를 다 아신다는 것이다. 이름뿐 아니라 그의 마음과 인품과 상태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네번 부르셨다. 세번째 부를때까지 사무엘은 하나님을 부르시는 줄 몰랐다. 그를 하나님은 네번째 부르셨다. 하나님은 희미하게 일하시지 않는다. 확실하게 부르신다. 모르면 깨닫게 만드신다. 하나님이 나를 일꾼으로 세웠는지 모르겠으면 기다려봐라.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알려주실 때가 있다. 이런 확신 없이 나서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나님이 부르셨는지 안부르셨는지 헷갈려서 갈등하는 사람들이 있다. 확신이 없는 것이다. 모세도 처음에는 자신 없어서 못하겠다고 할때 하나님께서 여러번 부르신다. 한번 부르시고 마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확실하고 명확하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분명하게 들어야 한다. 이 확신이 있으면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고난이 오고 반대가 있어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런 은혜를 주셨다. 부름을 받았을때 사무엘은 '말씀하옵소서' 라고 했다.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된 것이다. 말씀 들을 준비가 있어야 말씀을 제대로 듣고 은혜를 받을수 있는 것이다. 말씀 들을 준비가 되지 않으면 귀한 말씀을 들어도 받아 들이지 않게 된다. 우리가 준비하고 말씀을 들어야 겠다. 일찍 와서 기도하고 준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큰 은혜를 받을수 있는 것이다.
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은혜 받기 어렵다. 사무엘은 이런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했지만 믿음의 자격이 있었다.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자신을 종이라고 고백하고 평생 하나님의 종으로 귀하게 쓰임받는다. 종이 할수 있는 자세는 주인의 말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다. 종은 자기 생각대로 하려고 하면 안된다. 자기 주장 내세우려고하면 안된다. 주인을 이겨먹으려고 하지 말고 주인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다 종의 자리에 서야 한다. 종노릇 잘하면 하나님께 귀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종노릇을 잘 못해서 문제이다. 종노릇을 잘하면 훌륭한 일꾼,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엘리 제사장 집에 대한 저주를 말씀하신다. 왜 엘리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나? 엘리와 두 아들을 버리신 것이다. 사무엘을 일꾼으로 택하시고 그를 쓰시려고 그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13-14절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의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가 아는 죄악때문이니' 다 아는 죄이다. 모르고 지은 죄가 아니다. 그런데 그 죄를 회개하지 않고 금하지 않고 계속 짓고 나아갔다. 특별히 그 내용이 뭔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않은 것이다. 아들들이 잘못할때 강하게 징계하고 더이상 죄짓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들리는 소문이 좋지 못하다고 말한것 뿐이었다.
'엘리 집의 죄악은..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고 엄청난 심판의 내용을 말씀하셨다.
사무엘이 이 내용을 엘리제사장에게 전한다.
19-20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하나님께서 사무엘과 늘 함께 계셨다.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한마디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해주셨다는 것이다. 사무엘이 믿음으로 허튼 소리 하지 않은 것도 있었겠지만 하나님께서 사무엘이 하는 말이 다 이루어지게 해주셨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로 알았더라' 하나님께서 권위를 세우시고 존경받도록 해주셨다.
이렇게 사무엘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져서 귀하게 쓰임받았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받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복된 길 걸어가야 하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