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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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4 수요예배 설교 (마태복음 3:13-17 / 모든 의를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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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6-02-05 11:34 조회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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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CtCkTCSBNlg

 

(설교요약)  


예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창조주요 만왕의 왕이신 주님은 화려하고 안전한 자리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베들레헴의 마굿간과 말구유, 사람들에게 조롱받던 나사렛처럼 가장 낮고 냄새나는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죄인들이 받는 회개의 세례를 받기 위해 요단강으로 나오십니다. 죄 없으신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이 사건은, 우리 대신 “모든 의”를 이루시려는 구원 사역의 시작을 선포합니다.


1. 왜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셨는가? (13-15절)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요단강으로 오셔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셨습니다. 이는 말로 지시해서 구원을 이루시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죄인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구원을 성취하시는 주님의 구원 방식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요한은 놀라 만류합니다.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요한의 말은 신학적으로 옳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이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면서도 온유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여기서 “이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결정적 때가 도래했음을 뜻합니다. 주님은 즉흥적으로 일하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방식대로 순종하십니다. 또한 “허락하라”는 말씀은 주님이 위에서 군림해 명령하시는 방식이 아니라, 낮아져 죄인의 모습으로 서서 구원을 이루시는 길임을 보여줍니다.

“모든 의”는 인간적 도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 곧 하나님의 뜻과 율법이 요구하는 의입니다. 그러나 전적 타락한 인간은 그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둘째 아담, 택한 자들의 대표로 죄인의 줄에 서시고, 죄인들과 동일시하심으로 “대신” 의를 이루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요단강의 세례는 십자가로 향하는 첫 걸음이며, “내가 너희와 함께 서고, 너희를 대신하겠다”는 복음의 선언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와 같이”라는 표현은 요한에게 맡겨진 역할과 예수님의 순종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맞물려 진행됨을 보여줍니다. 교회도 각자 맡은 자리에서 겸손히 순종하며 동역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2. 성령의 임재와 하늘의 열림 (16절)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세 가지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며, 그 임하심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의 인준을 받은 구원 사역임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먼저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죄로 인해 막혔던 하나님과의 교제, 은혜의 길이 그리스도를 통해 열렸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늘 문을 열 수 없지만,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순종 위에 하나님이 길을 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의나 열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여신 은혜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신 것은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아, 곧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하는 기름부으심입니다. 특히 “비둘기”는 온유와 순결과 화평을 상징하여, 예수님의 사역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죄인을 품고 회복시키는 구원의 방식임을 보여줍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능력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주님의 성품을 닮게 하시는 분입니다.

마지막으로 “곧”이라는 흐름은 순종의 자리 위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지체 없이 임함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눈으로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지 못해도, 말씀에 순종할 때 성령의 은혜와 능력이 임한다는 원리는 동일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능력 부족보다 순종의 지체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허락하라”는 주님의 음성 앞에 즉시 순종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3. 아들의 선포와 복음의 토대 (17절)

17절에서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나님은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역을 공적으로 선포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은 예수님이 영원 전부터 성부와 함께 계신 성자 하나님이시며 참 왕이심을 드러냅니다(시 2편). “기뻐하는 자”는 예수님이 아버지 뜻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종의 길, 곧 고난의 길로 구원을 이루실 분임을 보여줍니다(사 42장).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군림이 아니라 낮아짐으로, 십자가의 종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또한 이 장면에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 함께 나타납니다. 성자가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임하시며, 성부가 말씀하십니다. 이는 복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일임을 보여줍니다. 성부께서 계획하시고, 성자께서 성취하시며, 성령께서 적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결심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신실하신 역사에 기초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도 정체성과 소명을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는 자”로 부름받았습니다. 이 사랑의 확신이 순종을 낳고, 사명을 지속하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 앞에 겸손히 낮아지고, 주님과 연합한 자로서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며, 맡겨진 자리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결론

예수님은 죄인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우리 대신 “모든 의”를 이루기 시작하셨고, 그 순종 위에 하나님은 하늘을 여시고 성령을 임하게 하시며 아들 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찾아오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에 순종함으로 오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드러내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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