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1 수요저녁예배 설교 (마태복음 2:13-23 / 예수님의 애굽 피난과 돌아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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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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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i3H1jngc6U4?si=jGccR9rxSXdSziaZ
(설교요약)
본문은 동방 박사들의 경배 직후, 은혜로운 순간이 지나가자마자 곧바로 죽음의 위협이 닥치는 긴박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도 함께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실 때 사탄의 방해가 따라오는 것은 흔한 일이며, 그래서 “은혜 뒤에 시험이 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핵심은 “마귀의 위협이 얼마나 큰가”가 아니라, 그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지키시고 한 치의 오차 없이 말씀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이 연속되지만,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말씀대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상황이 말씀이 아니라, 말씀이 상황을 해석하고 인도해야 합니다.
1.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13-15, 22-23)
본문에는 “이루려 하심이라”가 두 번 반복됩니다. 15절의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는 말씀과, 23절의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의 모든 과정이 예언의 성취임을 강조합니다. 13절에서 천사는 요셉에게 “일어나… 데리고… 피하여… 거기 있으라”고 긴급히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위기가 터진 뒤에 수습하시는 분이 아니라, 위기 전에 먼저 말씀으로 경고하시고 피할 길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요셉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며 미루지 않고, 밤중에 즉시 순종하여 애굽으로 떠납니다(14절).
15절은 이 피난이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호세아 11장 1절의 성취임을 밝힙니다. 출애굽의 역사가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응축되어 재현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이스라엘로서 택한 백성을 대표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22-23절에서 요셉은 아켈라오를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은 다시 세밀하게 인도하시며 갈릴리 나사렛으로 이끄십니다. 나사렛은 멸시받는 곳이었으나, 하나님은 그 낮은 자리에서 메시아의 길을 시작하게 하심으로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십니다(사 11:1, 사 49:7, 사 53:2-3, 시 22:6 등). 결국 믿음은 즉각적 순종과 인내의 순종을 함께 요구받으며, 하나님은 피할 때·기다릴 때·돌아올 때를 정하시고 말씀대로 이루십니다.
2. 헤롯이 악을 행하다 (16-18)
16절의 유아 학살은 죄로 무너진 세상의 잔혹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헤롯은 왕위를 잃을 두려움에 사로잡혀, 분노로 무고한 생명들을 짓밟습니다. 이는 헤롯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안에도 욕심과 체면과 안전을 지키려는 “작은 헤롯”이 존재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두려움과 집착이 죄로 변질될 때 관계를 파괴하고 사랑을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한 세상 방식에 동조하지 말고, 악이 강해질수록 더 사랑을 선택해야 합니다(고전 13:4-5).
또한 17-18절의 “라마의 통곡”은 예레미야 31장 15절을 인용하여, 포로기의 눈물이 베들레헴의 눈물로 반복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어서 “장래에 소망이 있다”(렘 31:16-17)고 선포합니다. 성도에게 눈물과 슬픔이 있으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통곡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구원과 위로의 말씀을 성취하십니다.
3. 예수님의 돌아오심과 나사렛 정착 (19-23)
19-21절에서 헤롯이 죽은 후,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셔서 “일어나…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고 인도하십니다. 요셉은 떠날 때도, 돌아올 때도 지체하지 않고 반복하여 순종합니다. 순종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결단이 아니라, 말씀을 받을 때마다 새롭게 응답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22절의 “그러나”처럼, 한 위기가 지나도 또 다른 불안이 찾아오지만, 하나님은 큰 방향뿐 아니라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구체적 길까지 세밀히 열어 주십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꿈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과 기도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한 걸음씩 순종해야 합니다.
결론
본문은 마귀가 날뛰는 것 같은 현실, 눈물이 흐르는 자리, 낮고 보잘것없는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말씀대로 구원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상황을 기준 삼지 말고 말씀을 기준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피난처로 붙들고, 내 안의 작은 헤롯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드러나지 않는 낮은 자리에서도 신실하게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에 쓰임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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