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4 주일오전예배 설교 (에스겔 16:4-6 /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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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6-01-11 13:06
조회6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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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j9vhbp-_LAc
(설교요약)
새벽에 호세아서를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고멜의 음란을 통해 이스라엘의 영적 간음을 폭로하시되, 단지 책망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돌아오라” 부르시는 사랑을 배우고 있습니다. 에스겔 16장도 같은 구조를 가집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가증한 일”(2절)을 알게 하시며 죄를 직면하게 하신 뒤, 버림받아 죽어가던 자를 찾아오셔서 살리시고, 덮으시고, 씻기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복음은 죄의 자각에서 시작되며, 죄를 드러내시는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회개와 회복, 그리고 자녀로 품으시기 위함입니다.
1. 가증한 일을 알게 하라(죄의 자각)(1-3절)
하나님은 에스겔을 “인자야”(2절)라고 부르시며, 사람의 연약함과 부패성을 먼저 자각하게 하십니다. 이 호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가리켜 사용하신 이름으로, 주님께서 참 사람으로 오셔서 죄인의 현실을 직면하게 하시고 “회개하라” 선포하신 것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자신의 “가증한 일”을 알게 하라고 하십니다. 죄를 모르면 은혜를 구하지 않고, 죄를 시인하지 않으면 십자가의 필요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3절의 “근본과 난 땅”은 혈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떠나 가나안 족속처럼 죄악된 본성을 따라 살았다는 책망입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기 전에 반드시 죄를 진단하시고, 진단 뒤에 치료하십니다.
2.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구원의 부르심)(4-7절)
4-5절은 예루살렘을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아기로 묘사합니다. 씻김도, 보호도, 긍휼도 없이 들에 버려진 모습은 곧 모든 인간의 영적 실상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며, 죄 가운데 태어나 죄만 짓다가 결국 죄로 인해 멸망받을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6절에서 복음의 반전이 시작됩니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피투성이로 발짓하는 모습은 죄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의 처지를 보여줍니다. 살려고 움직일수록 더 깊이 빠지는 늪처럼, 죄인은 자기 힘으로 벗어날수록 더 절망에 빠집니다.
그때 하나님은 두 번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첫 번째 음성은 죽었던 영을 살리시는 새창조의 음성입니다. 두 번째 음성은 상처가 남아 있는 현실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라는 부르심입니다.
7절은 하나님이 살리실 뿐 아니라 자라게 하시는 일반은총의 손길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라는 한계도 드러냅니다. 인간의 성장과 성취는 구원을 만들지 못합니다.
3. 덮고, 씻고, 입히시는 은혜(성화와 영화의 은혜)(8-14절)
8절에서 하나님은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고 하시며, 정하신 구원의 때에 언약으로 우리를 당신께 속하게 하십니다. “내 옷으로 너를 덮어”라는 말씀은 룻을 덮는 보아스처럼 소속과 보호, 수치의 가리움을 뜻하며,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성취됩니다.
9절의 물과 기름은 말씀과 성령, 그리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씻기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를 보여줍니다.
10-13절의 수놓은 옷과 패물, 왕관은 구원이 전인격적이고 풍성한 변화임을 상징하며, 마침내 “왕후의 지위”는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존귀한 신분을 말합니다.
14절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라 선포하며, 구원이 하나님의 손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짐을 확증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끝까지 붙드시고 마침내 영화롭게 하십니다.
결론
혹시 지금 마음이 피투성이처럼 상하고 무너져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죄를 알게 하시되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라 살리시려 하시고, 상처가 남아 있어도 “살아 있으라” 말씀하시며, 덮고 씻고 입혀 마침내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세우십니다.
오늘도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주님, 저를 덮어 주시고 씻어 주시고 주님의 의의 옷으로 입혀 주옵소서”라고 고백할 때,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시는 주님의 위로와 새 힘이 우리 가운데 임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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