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목사님설교

20251221 주일오전예배 설교 (갈라디아서 4:4-7 / 때가 차매 그 아들을 보내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5-12-21 15:06 조회80회 댓글0건

본문


작성자 복용교회 (183.107.55.117)
작성일25-12-14 15:04 조회15회 댓글0건

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ZURLCuVn07Y?si=I6Mdd6OHR_GoFmg7

 

(설교요약)  


본문은 성탄의 의미를 가장 복음적으로,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성탄 주간이 되면 전 세계 사람들이 기뻐하고 모임을 가지며 성탄의 분위기를 즐깁니다. 심지어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아무 생각 없이 성탄의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왕이시며 세상 만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더 확실히 느끼게 됩니다. 온 세상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한 연도와 달력을 사용하고, 주님의 날을 한 주의 시작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의 성탄과 구속이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 줍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믿음을 묵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 눈여겨볼 것은, 여인이 주님을 붙잡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여인이 있는 곳으로 찾아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손을 내밀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독생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옷자락을 붙잡는 믿음”의 출발은 우리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오신 은혜에 있습니다.


1. “때가 차매”-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임한 구원의 사건

본문은 성탄을 “때가 차매”라는 선언 위에 올려놓습니다. 성탄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약속하셨던 구원 계획이 정확히 집행된 순간입니다. 세상은 우연과 욕심과 권력의 계산으로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섭리로 다스리시는 큰 시간 안에서 모든 일이 진행됩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말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의 거짓과 착취와 폭력이 “하나님이 기뻐하신 일”이라고 오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불의에 대해 “하나님이 허락하셨다”고 고백하며, 그 허락하신 일들조차 마침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고 예배와 기도와 순종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또한 “때가 차매”는 과거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바울은 율법 아래 있던 상태를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는 어린아이”에 비유합니다. 구약의 시간은 답답한 기간처럼 보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그 시간 동안 약속을 쌓아가시고 백성을 훈련하시며 죄의 실상을 드러내어, 구주를 기다리는 마음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우리도 조급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은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정확한 때에 일하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신뢰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아들이 “여자에게서”, “율법 아래” 나심

정한 때에 하나님이 하신 결정적 행동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성탄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오신 분은 단지 훌륭한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아들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심”은 예수님께서 실제 역사 속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참 사람이심을 강조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눈물을 멀리서 보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현실을 짊어지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가 말하듯,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율법 아래” 나셨습니다. 이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기 위해 그 자리로 들어오신 것이며, 더 나아가 죄인이 율법 아래서 받는 정죄와 저주의 현실까지 대신 담당하셨음을 뜻합니다. 죄 없으신 주님이 죄인의 판결을 받으셨기에, 성탄은 십자가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구유는 골고다로 이어지는 대속의 출발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단지 따뜻한 분위기의 절기로만 보내지 말고, 오신 분을 향한 경배와, 우리가 하나님께 올라갈 수 없어 주님이 내려오신 것에 대한 겸손과 감사로 준비해야 합니다.


3. 속량의 은혜,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주심

5-7절은 성탄이 우리에게 이루어 주신 열매를 보여 줍니다. 주님의 오심은 “오셨다”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신분을 바꾸었습니다. “속량”은 값을 치르고 되사서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율법을 순종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치르셔서, 율법의 정죄와 두려움 아래 있던 우리를 건져내셨습니다. 더 이상 율법의 정죄가 우리를 붙잡을 수 없는 이유는, 그 정죄를 주님이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단지 종에서 해방된 사람으로 두지 않으시고, “아들의 명분” 곧 양자 됨을 주셨습니다. 복음은 단순한 무죄 선언을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며,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 주신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확증이 6절의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 경외심은 중요하지만, 하나님은 동시에 우리의 아버지이시므로 자녀로서 신뢰와 사랑으로 기도하며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7절은 결론을 선포합니다.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유업을 받을 자니라.” 성탄은 오늘을 견디게 하는 위로를 넘어, 하늘의 유업을 소망하게 하는 복음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성탄을 앞두고 점검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종처럼 두려움과 공로의식으로 서 있습니까, 아니면 자녀처럼 감사와 담대함으로 서 있습니까?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라는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기도와 삶을 새롭게 하여, 참된 성탄의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