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5 수요저녁예배 설교(사 1:21-31 / 시온의 타락과 회복)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본문
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rA11GKVTbYQ?si=rPM5tWZwyknbWQfu
21절
"신실하던 성읍"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예루살렘 성이 예전에는 신실한 성읍이었다. 하나님을 향해 신실했다. 즉 하나님만 사랑하고 의지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생활을 잘 하는 신실한 성읍이었다. 하나님이 참 사랑하고 은혜 주시던 성읍이었다. 그곳에 성전이 세워졌고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셔서 은혜 주시던 귀한 성읍이었다. 그런데 그 신실한 성읍이 창기가 되었다. 창기는 한 사람만 사랑하지 않는다. 이 사람, 저 사람과 문란한 관계를 맺는 자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창기와 같이 변질되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우상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세상도 의지했다. 완전히 타락하고 변질되어서 창기처럼 되었다. 육체적으로도 우상숭배하며 음행죄를 짓고 영적으로도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는 영적 간음죄를 지었다.
구약에 하나님을 남편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아내로 소개하면서 신실한 관계임을 자주 말씀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이 한 남편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하는 죄에 빠졌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약 4:4)
영적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이 영적 간음이다. 성도가 타락해서 변질된 것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간음한 여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길로 간다고 했다.
누구든지 예외가 없다. 누구든지 세상을 더 사랑하고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고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 과거 예루살렘 성읍에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다.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다.
예루살렘 성에는 원래 정의가 충만했다. 흘러 넘쳤다. 공의가 그 가운데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말씀을 순종하면서 믿음으로 살 때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과 사람과의 관계가 바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변질되고 타락되어서 살인자들 뿐이라고 했다. 성 안에 살인자만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정의를 행하는 모습, 공의롭게 사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점점 이렇게 되가고 있다. 법대로 하자고 하는데 정의를 행하는 사람이 사라진 것 같다. 법을 지키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한 사람도 그런 사람이 없는 것 같다.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탄식할 일이고 안타까운 일인가! 이 나라에 살인자만 가득하다고 하실 것 같다.
살인은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말하고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일 3:15)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다. 한번 미워하면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1~22)
실제 살인자도 가득하고 영적 살인자들도 가득했다. 정의와 공의가 넘치는 예루살렘 성이 왜 이렇게 변질되고 타락되었는가? 세상은 갈수록 점점 타락하고 악해지고 변질된다.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 예루살렘이 이러다가 망했는데, 말세에는 온 세상, 세상 전체가 이런 상태가 되어서 마지막 때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22절
은은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은만 모아서 순은을 만들어 값지게 판다. 만약에 은에 찌꺼기가 생기면 가치가 떨어진다. 찌꺼기 있는 은은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은은 신앙적으로 성도의 아름다운 행실, 덕행을 의미한다. 순수해야 할 신앙의 삶이 찌꺼기가 섞여서 변질되고 타락되어서 아름다운 모습을 다 잃어버렸다. 다 더러워져서 값이 나가지 않는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다고 했다. 순수한 포도주 자체고 먹어야 맛이 있지 물을 섞으면 맛이 떨어지고 아무도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타락되고 변질되었다. 참되게 믿음생활 하면서 선과 의를 행하고 정직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 올리던 사람들이 타락하고 변질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없다. 귀하게 아름답게 볼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전에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던 고관과 백성들이 은처럼 아름답고 고귀했는데, 이제는 찌꺼기만 가득한 은과 같이 변질되고 타락되었다.
포도주는 은혜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다. 순전한 말씀, 진리의 말씀을 배워야 그 말씀이 달고 은혜가 되는 것인데 은이 잔뜩 섞여서 맛을 잃어버린 포도주가 되어 버렸다. 선지자가 진리를 옳게 순수하게 가르치지 않아서 다 변질되고 타락되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고후 2:17)
바울이 이렇게 전도하고 말씀을 전하려고 애썼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혼잡케 했다. 포도주에 물을 탄 것처럼 변질된 것을 전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것을 순전하게 전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전했다. 그래서 바울이 전한 말씀이 생명과 능력이 있고 사람들을 살리는 은혜의 말씀이 되었다.
23절
고관들이 패역하게 되었다. 패역은 거스리고 거역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고 자꾸 반대한다. 그것이 패역이다. 거기에다 도둑과 짝을 한다. 도둑을 방지하고 벌을 해야 될 고관들이 도둑과 짝이 되어서 뇌물을 받았다. 그러면 도둑들이 더욱 극성을 부릴 것이다. 도둑질을 해도 벌받지 않고 뇌물만 바치면 놓아주니까 얼마나 날뛰겠는가! 예루살렘이 그런 죄악 세상이 되어 버렸다.
뇌물을 사랑하고 예물을 구했다. 돈에만 관심이 있고 탐심으로 기울어져서 약탈하고 빼앗으려는 것에만 혈안이 되었다.
거기에다가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않고,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않았다. 이들은 약자들이다. 뇌물을 바칠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냥 무시해버렸다. 도둑이 큰 죄를 지었다. 약탈을 하고 빼앗고 억울하게 만들어서 탈취하는 자들을 벌해야 하는데 그들과 합심해서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괴롭혔다. 이것이 이방 나라 사람들이 한 일이 아니고 예루살렘 성 지도자들이 이렇게 행했다.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미 3:11)
우두머리들, 제사장들, 선지자들이 다 똑같다. 뇌물과 삯을 위해서 악행을 저질렀다. 한 두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두가 다 그렇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하신다고 말했다.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염려하는 것도 없었다. 다 마비되어 버렸다. 양심과 믿음이 다 마비되었다. 모든 것이 변질되고 타락된 형편이다. 이 시대도 점점 이렇게 변해가고 있다.
24절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하나님이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슬프다고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이 변질되고 타락한 것을 슬퍼하신다. 신앙이 다 없어지고 세상을 따라서 악해져가는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슬프다고 하셨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이 점점 변질된다면, 세상 닮아서 죄악에 물들어 간다면, 신실성을 잃어버리고 공의와 정의를 잃어버리고 세상과 같이 악하게 변질된다면,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시고 슬퍼하실 것이다.
변질되고 타락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다. 예루살렘을 가리켜 대적, 원수라고 지칭하시면서 보응하고 보복하겠다고 하셨다. 왜 대적, 원수라고 말씀하시는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타락했기 때문이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누구라도 그렇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벌하실 수 밖에 없다. 벌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견디실 수 없다. 죄인을 벌해야 마음이 시원해진다고 하신 것이다.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죄인이 예루살렘 거민들이다.
회개하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편이 되고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대적이 되고 원수가 되어서 진노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25절
하나님께서 손을 네게 돌리겠다고 하셨다. 직접 개입하셔서 손을 들어 치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심판의 선언이다.
은에 찌꺼기가 섞이고 포도주에 물이 섞였다고 했는데 그것들을 다 제하셔서 원래대로 순수하고 깨끗하게 회복시키겠다고 하셨다.
잿물로 씻듯이 한다고 하셨다. 물로 안되고 비누로도 안된다. 독한 잿물을 써야 씻길 수 있을 정도로 타락한 예루살렘 거민들이다. 타락하면 이와 같이 더러워지고, 더러워지면 하나님이 손을 대서 씻어내야 한다. 죄가 다 씻어져야 원상회복이 되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다.
26절
재판관들이 재판을 잘못하니까 성이 타락하고 변질되고 악해졌다. 그래서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의로운 재판관으로 만드신다고 하셨다. 모사들도 본래와 같이 회복시킨다고 하셨다. 다 변질되어서 제대로 역할을 못하니까 그런 후에야 의의 성읍,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울 것이다.
"처음과 같이, 본래와 같이" 하나님이 처음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셔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실 때 순수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변질되고 타락되어서 찌꺼기가 섞여서 못쓰게 되었다. 이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시킨다고 하셨다. 바벨론 70년 포로 후에 돌아오게 해서 스룹바벨 성전을 짓고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장차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순수한 교회를 세워나가시겠다는 예언이 담겨 있는 것이다.
27절
시온은 예루살렘이다.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정의로 구속함을 받는다고 했다. 정의를 행해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고 구속함을 받게 된다. 의를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있는 것이다.
28절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할 것이다. 망하는 자가 있다. 결국 심판 받는 자가 있다. 하나님이 회복시키려고 하는데, 깨끗하게 하려고 하는데, 정결하게 만들어서 본래와 같이 회복시키려고 하는데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죄짓는 길로 계속 가는 자는 결국 망하게 된다.
우리는 패역한 길로 가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거스리면 안된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 하나님을 떠났더라도 탕자처럼 돌아와야 한다.
두 길이 있다. 하나님이 돌아오라고 할 때 순종하고 돌아와서 회개한 자들은 원상회복이 되어서 은혜 받고 살 수 있다. 그러나 끝까지 패역한 길로 가는 자는 망한다.
29-30절
상수리 나무 밑에 가서 우상 만들어놓고 우상숭배했다. 그것 때문에 망하고 부끄러움을 당한다. 자기들이 죄짓고 악을 행하다가 그것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좋음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은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은 간음을 행하는도다” (호 4:13)
나무 아래에서 우상숭배하다가 망했다.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결국 심판을 당했다. 끝까지 돌아오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우상숭배하며 악의 길로 가는 자는 결국 실패한다.
31절
"삼오라기" 삼을 물에 적시면 질겨져서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마른 뒤에 불에 넣으면 그방 타버린다. 강한 자는 강함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그 행위가 불티와 같이 타버릴 것이다. 아무리 강한 자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이길 수 없다. 다 불살라질 것이다. 결국 대적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끝까지 죄짓는 길로 가면 실패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과 고난을 통해 돌아오라고 하실 때 즉시 회개하고 돌아와서 회복의 은혜를 입어야 되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