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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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1 수요저녁예배 설교(사 1:1-9 / 유다의 죄와 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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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5-01-01 21:18 조회1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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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FfHDevj91gw?si=1b-KMuYAlFdijfDY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고 했다. 저자가 이사야 자신인 것을 밝히고 있다. 이사야는 아모스의 아들이다.

계시는 감추어져 있던 것을 열어서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스스로 공부해서, 연구해서 깨달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계시로 알려주신 말씀이다.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는 그 말씀을 받아서 전한 것이다. 이것이 선지자의 사명이다. 하나님이 전하라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 마음대로 변경시켜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전하라하신 말씀을 전하는 것이 선지자가 할 일이다.

 

2

하늘이나 땅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천지를 증거 삼아서 말씀하신다는 의미이다. 이제부터 하시는 말씀이 너무나 애타게 간곡하게 전하는 말씀이다. 너무 슬픈 내용의 말씀이기에 하늘과 땅을 증인 삼아서 외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무지함을 깨우치는 것이다. 아무리 말해줘도 깨닫지 못하니까 하늘과 땅에 대고 말하면서 오히려 그들에게 들으라고 호소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이렇게 하셨을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보답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은혜를 받고 말씀을 순종하면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전해줘도 깨닫지 못하면 믿음생활을 하지 못한다. 죄를 회개해야 새롭게 성장할 수 있는데 아무리 외쳐도 죄를 깨닫지 못하니까 변화되는 것이 없다.

사람들은 변한다. 세월이 가면 있던 사람이 없어지고 새로운 사람이 나타난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변함이 없다. 백년, 천년이 가도 그대로 있다. 그 하늘과 땅을 증거로 해서 말씀을 전하면서 이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이라고 했다. 이런 여러가지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 자식을 양육하신 것이라고 하셨다. 애굽에서 건져 내셔서 광야 40년 인도하시고 가나안으로 이주하게 하시고 한 없는 은혜와 복을 주셨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처럼 사랑과 정성으로 잘 보살펴 주셨다. 그러면 자녀된 입장에서 감사해 하고 보답하면서 살아야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거역했다. 하나님께서 열가지 재앙을 내려서 애굽에서 건지시고 홍해를 갈라서 육지처럼 건너게 하시고 광야에서 매일 만나를 내리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가나안에서 수많은 전쟁 가운데 하나님이 친히 싸워주시고 대적들을 멸해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차지하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그러면 감사하며 하나님께 잘 순종하며 섬기는 길을 걸어가야 되는데,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반항한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거역해도 가슴이 아픈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할 때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생활을 잘하는 것이다.

 

3

소가 임자를 안다. 자기에게 여물을 먹이는 주인을 안다.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안다. 소나 나귀는 이성 없는 짐승이다. 짐승 가운데서도 미련한 짐승에 해당된다. 원숭이보다 지식이 떨어지는 짐승이다. 이런 미련한 소나 나귀도 주인을 아는데, 이스라엘은 자기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 자기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고 먹이시고 기르시는 분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짐승도 주인을 알고 누가 자기에게 밥을 주는지 아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믿음생활을 잘하려면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인줄 깨달았으면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이 말씀을 지키면 복 받는 줄 알았으면 반드시 지킬 것이다. 말씀을 어기면 벌 받고 망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절대로 어기지 않는다. 독약 든 물을 마시면 천만원을 준다고 하면 먹겠는가? 사람이 제대로 알면 지킬 것을 지킨다. 망하는 길인줄 알면 그 길로 가지 않는다. 복 받는 길인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그 길로 가려고 할 것이다. 불신자들은 새해가 되면 사주팔자, 토정비결을 본다. 그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복 받는 길로 가보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통해서 올바른 말씀을 듣고 제대로 복 받는 길과 망하는 길을 배워서 알고 있다. 그렇게 바로 알아서 순종하며 지키는 길로 가야 한다.

깨닫지 못하는 것을 너무 답답해 하신다. 어떻게 그렇게 못 깨닫느냐고 안타까워 하시고 있다.

 

4

하나님께서 슬프다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소와 나귀도 아는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려는 모습을 보시고 슬프다고 하셨다.

이스라엘을 가리켜 범죄한 나라, 허물진 백성, 행악의 종자,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라고 하셨다. 참 속상하다. 안타깝다. 그런데 우리도 이렇게 어리석게 행하고 우둔하게 살 때가 많이 있다. 우리가 이런 자라는 것을 깨닫고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한번 믿음을 가지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렸다. 자기들을 구원한 하나님, 창조하신 하나님, 은혜와 복을 주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버렸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다. 만홀히 여기고 멀리하고 물러갔다. 더러운 것을 버리듯이 내버렸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자들이 유대인들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가장 많이 받고 말씀을 가장 잘 배우고 기적과 능력을 많이 경험한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죄를 저질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를 버렸는지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죽이면서도 누구를 죽였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런 모습을 보면서 슬프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대대손손 악을 행하기 때문에 행악의 종자, 부패한 자식이라고 책망하셨다.

 

5

패역은 거스리는 것이다. 불순종하고 반항하는 것이다. 그런데 패역을 거듭한다고 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패역을 행한다는 것이다. 거스르는 일을 반복하고 계속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일만 자꾸 골라서 한다. 그렇게 우상숭배 하지 말라고 하는데 끝없이 우상숭배를 한다. 동산에 올라가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무수히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겼다.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그렇게 권고하고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다. 많은 선지자를 보내 반복적으로 책망하셨지만 돌아오는 자가 없었다.

전에도 맞았다. 반역하고 거스리다가 매를 맞았는데, 그래도 돌아오지 않고 패역한 일을 반복하고 있다.

머리는 생각하는 곳이다. 머리가 병들었다는 것은 생각이 삐뚫어졌다는 것이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5:20)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했다. 정반대로 깨달았다. 악을 선하다고 하고 선을 악하다고 했다. 흑암을 광명으로 삼고 광명을 흑암으로 살았다. 죽을 길을 살 길이라고 생각하고 살 길을 죽을 길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도 머리가 병든 자들이 많다. 세상이 그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이상하다.

온 마음은 피곤하다고 했다. 죄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이 은혜에서 떨어지고 하나님과 멀어지고 고통이 심해진다. 그래서 마음이 피곤해진다. 지금은 만물, 피조물까지 다 피곤한 시대이다. 온통 고통하며 탄식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게 온 머리가 병들고 온 마음이 피곤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돌아오지 않고 있다.

꿈도 없고 소망도 없고 의욕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것도 없고 말씀을 지키려는 것도 없고 만사가 귀찮은 상태에 떨어졌다.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몸 전체가 성한 곳이 없고 상하고 터지고 상처 뿐이다. 국가로 하면 왕으로부터 백성까지 다 징계받아서 무너지게 생겼다.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 뿐 아니라 부귀영화를 누리는 높은 자들까지 매를 맞아서 망하게 되었다. 나무로 하면 뿌리부터 잎사귀까지 다 망한 것이다.

전에도 많이 맞았는데, 상처가 아물기 전에 새로 맞은 상처 자국이 또 있다.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으니까 계속 맞는 것이다.

앗수르에게 맞고 블레셋에게 맞고 아람에게 맞고 바벨론에게 맞고 이스라엘이 사방 민족들을 통해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 그런데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매를 많이 맞아서 상처가 생기면 곪고 터지면 치료를 받아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회개하지 않으니 맞기만 하지 위로와 회복되는 일이 없다.

 

7

, 성읍, 토지가 언급되어 있다. 삶의 근본이다. 이것을 다 잃어버리고 파괴되고 무너졌다. 땅이 황폐해져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성읍은 불탔다. 토지는 이방인들에게 삼켰다. 그래서 파괴됨 같이 황폐해지고 무너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가 사라지니까 모든 것이 다 무너진다. 사람들이 버림 받고 환경도 나빠진다. 삶의 근원이 파괴되었다.

 

8

딸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딸이라고 한 것은 사랑의 대상자라는 의미이다. 포도원의 망대, 참외밭의 원두막이 덜렁 남았다. 다 황폐되었는데, 예루살렘 성이 겨우 남았다. 하나님께서 아주 멸하시지 않고, 망대처럼 겨우 남겨 놓으셨다. 회개하도록, 돌아오도록 마지막 경고하시는 모습이다.

이때라도 하나님께 돌아왔으면 얼마나 다행스럽고 좋아겠는가? 그런데 이런 상황이 되도 돌아오지 않다가 유다가 완전히 망한다. 바벨론에 의해 망하고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고 무너지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간다.

믿음을 잘 지킬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생명과 모든 소유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다. 그런데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이 떠나시고 진노하셔서 원수를 불러오고 대적들을 불러온다. 그러면 원수와 대적들이 와서 다 무너뜨린다. 사람도 성읍도 땅도 건물도 집도 다 무너뜨린다. 남은 것이 없게 된다.

한마디로 하면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하나님을 떠나면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

"겨우 남았도다" 하나님께서 겨우 남겨두셨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조금 남겨두셨다. 다 사라지고 황폐하고 무너졌지만 조금 남겨두셨다. 긍휼과 자비를 베푸셔서 아주 멸망시키지 않고 조금 남겨두신 것이다. 만약에 이렇게 은혜 주시지 않았다면 소돔과 고모라처럼 완전히 멸망당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금 남겨두셨을 때 얼른 정신 차리고 회개하고 돌아서서 믿음으로 바로 서야 한다.

이사야서는 구약시대 주님 나시기 전 700년 전에 유다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이 말씀이 얼마나 간절하고 심각하고 구구절절히 옳은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기만 했더라면 유다가 망하지 않았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말씀이 강력하다.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할 정도로 직설적이고 강한 말씀이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안타깝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인줄 알고 꺠닫고 고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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