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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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8 수요저녁예배 설교(약 5:7-12 / 믿음으로 인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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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12-18 20:40 조회1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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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z0FaSWa6DpE?si=wxXUJ1cmv-zOXGoE


성도들이 신앙생활하면서 특별히 고난을 당하게 될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몇가지로 당부한다. 


7절

첫째, 참으라는 것이다. 길이 참으라는 말씀을 세번 반복했다(7절에 두번, 8절). 길이 참는 것은 계속 참는 것이다. 끝까지 참는 것이다. 언제까지냐면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이다. 

참는 것은 무엇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참고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참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참으라고 성경이 수없이 강조한다. 특별히 야고보서에는 우리에게 참고 인내할 것에 대해서 여러번 강조해서 말씀한다. 이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참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약한 자는 중도에 포기한다. 끝까지 참는 자는 믿음이 강한 자이다. 끝까지 참아야 승리하는 것이다. 중도에 포기하는 것은 실패하는 것이다. 참는 것이 믿음을 지키고 복을 받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참을 것을 교훈하신다.

특별히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했다. 주님의 재림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주님 재림하시면 성도들이 참은 것을 다 갚아주시고 위로해주실 것이다. 성도들을 괴롭히고 박해한 자는 심판하실 것이다. 그 날이 곧 올 것이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조금만 참으면 된다. 그런데 조금 참는 것을 못해서 실패하고 넘어진다면 주님 오셨을 때 얼마나 부끄럽고 원통하겠는가.

말세에 성도가 믿음을 지킬 때 가져야 될 가장 중요한 신앙의 태도는 참고 인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세가 되면 사탄 마귀는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줄 알고 할 수만 있으면 택한 백성이라도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한다. 세상에는 환난과 시험과 미움이 많아진다. 세상은 점점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아진다. 그러므로 참아야 한다. 참기 어려운 환경, 참기 힘든 상황이 많이지는 때 길이 참으라고 교훈하신다.

"보라" 관심을 집중시키는 표현이다. 집중하라는 것이다. 주의해서 보라는 것이다. 농부를 보라고 했다. 땅에서 씨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농부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고 했다. 농부들은 씨를 뿌려놓고 귀한 열매를 소망하며 길이 참는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린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를 기다리며 길이 참는다. 어떤 농부도 오늘 씨 뿌리고 내일 거두지 않는다. 하룻동안 자라서 하룻 밤에 열매 맺는 씨앗은 없다. 적어도 몇달, 어떤 것은 몇년 걸린다. 그렇게 참고 인내해야 열매를 맺고 복을 받는다.

우리는 농부가 열매 맺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한 하늘의 상급과 하나님의 칭찬을 기다리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길이 참아야 한다. 

이른 비는 이스라엘의 기후를 반영한 것이다. 씨 뿌리는 때 내리는 비이다. 이른 비가 내려야 씨가 잘 뿌리를 내린다. 늦은 비는 추수 전에 내리는 비인데 이 비가 내려야 곡식이 잘 자라고 추수할 때 풍성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건조한 토지이기 때문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도 하나님이 일해주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고난 가운데 참으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원수를 물리치고 건져주시기를 기다리면서 참아야 한다.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점점 못하는 것이 있는데, 참는 것을 못한다. 사람들이 조급해 하고 쉽게 낙심하고 너무 쉽게 분노하고 너무 쉽게 흔들리고 넘어진다. 원망 불평하는 일들을 많이 하고 있다. 옛날과 비교해서 참는 일들이 점점 약해진다. 말세로 갈수록 이런 일이 심해질텐데 성경은 우리에게 길이 참고 오래 참으라고 권면한다. 그러면 주께서 반드시 오셔서 건져주시고 구원해주신다. 


8절

"너희도 길이 참고" 농부가 참는 것처럼 참을 것을 다시 한번 권면한다. 성경에 보면 참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24:13)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데 믿음을 지키려면 끝까지 참아야 한다. 시험, 환난,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참고 견뎌야 한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눅 21:19)

인내로 영혼을 얻는다고 했다. 참고 인내해야 영혼이 살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인내하는 것이 구원과 관련된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하시고 있다.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딤후 2:12)

고난과 환난 중에 참으면 왕 노릇 할 수 있는 자격과 실력이 갖추게 된다. 참는 자가 영광을 누리는 자리에 서게 된다. 농부의 참는 것을 예를 들어 교훈하시고나서 너희도 참으라고 권면하신다.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참고 인내하다가 언제 넘어지냐면 마음이 약해질 때이다. 그때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흔들리게 된다. 굳건하게 하라는 것은 세우라는 것이다. 고정시키고 강하게 하라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낙심되지 않도록 붙들어야 한다. 마음을 놓아 버리면 바닥에 떨어져 죽는다. 그렇게 쓰러져 넘어지도록 하지 말고 일으켜 세우고 강하게 하고 굳건하게 고정시켜 나가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이 약해서 강대국에게 기웃거렸다. 이 나라, 저 나라 의지하고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고 탄식하셨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녀의 행위라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겔 16:30)

블레셋, 앗수르, 애굽을 의지하려고 하면서 영적으로 음행하는 것처럼 행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하냐고 안타까워 하셨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마음을 굳게 해야 한다. 우리 마음을 무엇으로 굳게 할 수 있나? 베드로가 스스로 장담하고 결심했는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무너졌다. 우리 마음은 은혜로서 굳게 해야 한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 13:9)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마음이 굳세지는 것이 아니다. 배부르게 먹는다고 마음이 굳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은혜를 받아야 힘이 생기고 담대해진다. 마음이 강건해진다. 그래야 굳센 마음이 되어 흔들리지 않는다. 성령충만해졌을 때 제자들이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했을 때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다. 그래서 은혜를 받아야 한다. 기도하고 말씀을 들어야 한다. 말씀으로 무장하고 기도 많이 해서 성령충만해지면 영혼이 강건해지고 굳세진다. 두려움 없이 담대한 모습으로 믿음생활을 할 수 있다.

인내하라고 하면서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하라고 했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고 하면서 주의 강림이 가까이 왔다고 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계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12)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 재림하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생활을 하는 것이다. 구약성도들은 초림의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믿음생활을 했다. 신약성도들은 재림의 예수님을 소망해야 한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는 자다가 깨어야 한다. 약해졌다가도 힘을 내서 일어서야 한다. 재림은 우리 신앙을 깨우고 기도하게 만들고 믿음생활을 힘쓰게 만든다. 재림신앙을 가진 자들은 항상 준비하고 있게 된다. 깨어서 준비하는 믿음이 귀한 믿음이다. 우리에게 그 믿음을 가질 것을 말씀하고 있다.

말세 징조가 눈 앞에 보인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말세가 다 되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세상이 말세라고 말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겠는가? 주님 오셔서 심판하실 날이 가까이 왔으니 우리가 할 일은 믿음 준비하는 것이다. 좋은 집, 좋은 차, 세상 권세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다 날아가고 없어질 것이다. 믿음 준비하고 말씀 순종해야 한다. 


9절

"서로 원망하지 말라" 말세에 박해와 시험와 미움이 많아진다. 그런 일 당할 때 원망하기 쉽다.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을 당했다고 하면서 서로 원망할 것이다. 그런 때가 오더라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원망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온 우주를 다스리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신다. 참새 두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 머리카락 한가닥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해야 이루어진다. 다윗이 시므이의 저주를 받을 때 하나님이 시므이에게 허락하셨기에 저주를 하는 것이라 하면서 참았다. 요셉은 형들이 팔아서 애굽에 가서 종살이, 옥살이 했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애굽에 보냈다고 했다. 이러한 하나님 주권 신앙을 가지면 무슨 일을 만나도 원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허락으로 된 줄 믿으니까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알고,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알고 믿음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이 시험하고 연단하신 후에는 반드시 복을 주실 것이다.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 8:16)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셨다. 고난 받고 위험한 일을 만나고 힘든 지역을 통과하게 하신 이유를 설명하신다. 낮추시며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우리도 광야 같은 세상을 살면서 고난과 어려움과 핍박을 당하고 대적을 만나게 하시는데, 이 모든 것을 이용하셔서 우리를 시험하고 연단하고 낮추시고 마침내 복을 주시려는 것이다. 이것을 알면 원망할 수 없다. 예수님 만큼 원망할 일이 많은 사람이 있는가? 그러나 주님은 한번도 원망하지 않으셨다. 성도의 입에서는 두가지만 나오면 된다. 내가 잘못한 것은 회개하고,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면 감사하면 된다. 회개와 감사 말고는 할 것이 없다.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주님이 문 밖에 계신다. 우리의 원망, 불평한 것을 다 심판하실 것이다. 원망하지 않아야 심판을 면할 수 있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는데도 원망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른다. 너무 원망을 많이 한다. 마음에 안드는 일이 있으면 전부 하나님의 탓이다. 조상, 부모, 세상 탓하고, 하나님 원망을 많이 한다. 이것은 합당하지 않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쓰러져 죽은 네가지 죄가 원망, 시험, 우상숭배, 음행이다. 원망하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쓰러졌다. 


10절

"선지자들을 본으로 삼으라" 고 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했다. 그런데 배척을 많이 당했다. 환영 받고 존귀하게 대접 받은 선지자는 거의 없다. 많은 선지자들이 돌에 맞고,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선지자들을 본으로 삼으라고 했다. 그들이 고난을 많이 당하면서 오래 참았다. 그것을 본 삼으라는 것이다. 어려움 당하지 않은 선지자가 없다. 그렇게 고난 중에 오래 참은 선지자를 본으로 삼아야 한다.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 5:11~12)

구약시대 전에 있던 선지자들이 욕먹고 박해받고 거짓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복 받을 일이다. 


11절

성경에 인내하는 자를 복있다고 말씀한다. 인내하지 않는 자가 복있다고 말씀하는 구절은 한구절도 없다.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 참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한 것은 한구절도 없다. 복을 받으려면 복 받을 길로 가야 한다.

"욥의 인내를 들었고" 욥의 인내를 배웠다. 욥은 무슨 죄를 지어서 벌 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칭찬과 자랑거리가 될 정도로 믿음생활을 잘한 욥이 전 재산을 잃고 모든 자녀가 다 죽고 몸은 병들어서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로 몸을 긁었다. 아내는 비난하며 욕했다. 친구들까지 와서 위로는 하지 않고 공격을 잔뜩 했다. 욥은 육체적, 환경적, 가정의 고통, 정신적, 신앙적 고통을 한꺼번에 당했다. 그러나 잘 참았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욥의 결말을 다 안다. 마지막에 갑절의 복을 받은 것을 다 안다. 그러나 욥은 자기의 결말을 몰랐다. 욥의 결말을 하나님이 미리 말씀해주지 않으셨다. 욥은 모르고도 참았다. 알고 참는 것은 누가 못하나? 조금만 참으면 갑절의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 못참을 사람이 없다. 그러나 말씀하시지 않았다. 고난만 당하게 하셨다. 그러나 욥이 잘 참음으로 아름다운 결말을 만났다. 우리는 욥의 결말을 봤다. 그러니까 더 잘 참아야 한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주님은 우리가 고난 받다가 실패하도록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안타까워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인내하면 반드시 도와주신다. 


12절

하늘, 땅, 다른 어떤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했다. 구약에 보면 필요한 맹세는 하라고 했다.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께 맹세할 것이요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 (출 22:11)

재판장에서 증인으로 나갔을 때는 진실하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했다. 그러나 거짓 맹세는 하면 안된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 19:12)

우리가 양심적으로 항상 진실하게 말하면 맹세하지 않아도 진실한 말이 다 통한다. 맹세를 다 하고 다녀도 진실하지 못한 자는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만 욕 먹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 받게 만드는 것이다. 꼭 필요할 때에는 맹세할 수 있다. 그러나 필요하지 않은 때 맹세하고 맹세한대로 지키지도 않으면 맹세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오히려 죄만 짓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받게 하는 것이다.

양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해야 한다. 이것이 맹세보다 더 귀하다. 양심적으로 진실되고 참되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 이 쉬운 것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런데 양심을 쓰지 않고 거짓을 말하고 잘못된 재판을 한다. 성도들은 양심을 잘 써야 믿음을 잘 지킬 수 있다.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딤전 1:18~19)

양심을 버렸더니 믿음이 파선되었다. 침몰해서 다 없어지고 죽어버리고 만다. 믿음생활을 잘하려면 양심을 잘 지켜야 한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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