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1 수요저녁예배 설교(약 5:1-6 / 부한 자들에게 주는 경고)(윤성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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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TRF34hNInlk?si=JDNldRrxLEa1f2FV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풍요로운 세상이다. 편리한 많은 것이 있어서 어떤 때에는 왕도 못먹어봤을 것을 자유롭게 먹는 복된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부를 많이 축적하면 성공했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성도들도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애를 많이 쓴다. 성경은 부자들에게 강력한 권고를 하는데 이 말씀을 통해 부자나 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1-3절 부자들에 대한 심판 경고
4-6절 부자들의 구체적인 죄악
1. 부자들에 대한 심판 경고
1) 부자들은 울고 통곡한다.
"들으라"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영적으로 깨어 경각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부한 자들아" 재물이 많은 자들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재물을 얻었는가? 어디에 이 재물을 썼는가? 일반 부자가 있고 사악한 부자들도 있다. 어떻게 벌거 어디에 썼는가에 따라 어떤 부자인지를 알 수 있다.
부자가 비난을 받는데, 그 이유가 부정하게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약한 자를 억압하고 탄압해서 모은 돈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고 착취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부자들에게 들으라고 하면서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는 사악한 부자들을 보면서 이렇게 하면 안되는구나 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울고 통곡한다는 것은 큰 소리로 울면서 대성통곡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너무 비통해서, 너무 안타까워서 통곡하듯이 우는 것이다. 우리가 재물에 대해서 바로 하지 못하면 마지막 때에는 통곡하는 때가 올 것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욕심으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남의 돈이라도 빼앗아서 더 많이 소유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경고한다. 왜 사람들이 울고 통곡하는가?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라고 했다. 고통은 신학적으로 비참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것을 가리킨다. 지금 돈으로 인해 높은 지위에 있을지 모르지만 부하려고 한 죄 때문에 비참하게 되고 대성통곡하게 될 것이다. 성도들에게 그런 부자가 되지 말라고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물질에 대해서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 되고 잘못된 길을 가게 되면 울고 통곡할 날이 있는지 알고 바른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물질 중심으로 산다든지 세상 것에 가장 큰 가치를 둔다든지 하는 것은 성도의 바른 삶이 아니다.
2) 재물은 쓸데 없다.
재물이 우리가 살아가는데에는 필요하다. 집과 의복과 식량과 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부자는 너무 많은 것을 쌓아두는 자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믿음을 떠나서 재산을 쌓아가는 자이다. 그래서 그 재물은 아무 쓸모 없는 것이고, 심판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비참한 결과를 갖게 될 것이다.
재물은 썩는다. 여기서 말하는 재물은 곡식을 가리킨다. 당시에는 곡식으로 물물교환하고 곡식을 돈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곡식을 너무 많이 쌓아서 썩어나간다는 것이다. 썩어나갈바에야 가난한 자에게 주면 좋은데, 창고에 쌓아서 썩을 정도가 되었다. 결국 모든 것은 다 부폐될 것이다. 영적으로 다 그렇게 될 것이니 재물을 쌓는 것에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한다.
옷은 좀 먹는다고 했다. 당시에 옷은 귀한 재산이었다. 지금은 너무 많아서 좋은 옷도 버리는 시대이다. 당시는 옷은 아주 비싸고 노동자들은 옷 한벌만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많았다. 여기서 말하는 옷은 장식을 할 수 있고 금은보석으로 꾸밀 수 있는 옷이다. 그러나 이 옷들이 좀먹는다고 했다. 영혼과 신앙면에 있어서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될 것이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눅 16:19)
금과 은은 녹이 슨다고 했다. 원래 금과 은은 녹이 슬지 않는다. 결국 쓸모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믿음을 떠나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게 돈을 모은다면,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모은다면 울고 통곡하고 아무 쓸모 없는 가치 없는 것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이다.
3) 불같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불이 있고 살이 있다.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고 했는데, 태워버린다는 것이다. 불이 혀처럼 움직인다. 불이 우리의 육체를 다 살라버릴 것이다. 여기 표현대로 하면 먹어버린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물질을 추구하며 옳지 못한 방법으로 오용하고 남용하는 삶을 산다면 인간의 삶, 건강, 존재가 마지막에 처절하게 타버리는 처지가 될 것이다.
재물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져서는 안되고 신앙이 퇴보해서는 안된다.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재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썩고 좀 먹고 녹이 슬어버린다고 했다. 그런데 말세에 재물을 쌓았다고 했다. 왜 하나님의 경고가 무엇 때문에 오는가? 이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재물을 쌓게 있지 않냐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나누고 선행을 하고 후원을 한다든지 해봤는가? 오직 자기만을 위해서 모아둔다면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은 것이다. 세속적인 가치에만 관심을 갖고 그것으로만 만족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영혼에 어떤 가치가 있으면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한번이라고 실천해봤냐는 말씀을 주고 있다.
2. 부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죄
1) 추수한 품꾼에게 삯을 주지 않는다.
품꾼은 다 가난한 사람들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자들이다. 요즘도 대부분 한달 벌어 한달 산다. 그런데 월급을 못받으면 얼마나 난처하겠는가? 과거에는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자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으면 굶을 수 밖에 없다. 그 사람들에게 잘 주면 좋은데 떼 먹는 사람도 있다. 품꾼에게 삯을 주지 않아서 그것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면 심판을 받을 것이다.
품꾼들은 세상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아무 힘이 없는 자들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법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발달되지 않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4]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15]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신 24:14~15)
마땅히 줘야 될 것은 줘야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일을 시켰다면 정당하게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직원들에게 월급을 적게 주고 그것으로 교회에 바치는 사람도 있다. 그 직원들은 어떤가? 차라리 그들에게 월급을 더 주는 것이 더 낫다. 사람에게 인색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다.
2) 사치하고 방종한다.
하늘나라 가서 살 것을 준비하지 않고 이 땅에서 남보다 더 잘 살고 싶어한다. 이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만 촛점을 두고 가치를 두고 산다면 하늘에는 아무것도 쌓을 수 없다. 하늘에는 관심이 없고 땅에만 관심이 있다. 사치하고 방종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사치라는 것은 기본적인 필수를 넘어서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자기 쾌락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다. 방종은 자기 절제 없이 욕망과 쾌락을 위해 다 쓰는 것이다.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다 소진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탕자와 같다.
우리에게도 사치하거나 방종하는 것을 습관, 문화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치 방종은 그 자체로 죄이다. 뭔가를 넘어서거나 지나쳐버리면 안된다.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4)
5절에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재물을 쌓기만 하면 마지막 심판날 도살당하는 것처럼 될 것이다. 우리가 돈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합법적으로 열심히 버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물질적 풍요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에서 멀어지게 하면 안된다. 도살당할 날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가 되면 안된다.
3)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다.
부자들이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다. 개역한글은 "옳은 사람"이라고 번역했다. 부자는 돈만 추구하는 사람이다. 교회를 다녀도 진짜 구원받은 사람은 아니다. 교회라는 건물 안에 있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다 성도라고 부름을 받지만 참된 성도가 아닐 수 있다.
부자들이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가난하지만 정직한 자를 억압하고 착취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인은 부자들에게 대항하지 않았다.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할 때 오직 하나님께만 메달려서 부르짖었다. 왜 그렇게 했는가? 지금은 법과 사법기관들이 있지만 당시에 부자들이 권력자들이기 때문에 어디 가서 호소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만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중에 어려움 당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힘 없고 호소할 수 없는 심정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를 착취하고 어렵게 하고 고통 준 자를 심판하신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최고의 법을 실천하려면 나의 것을 적은 양이라도 베푸는 것이다. 이런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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