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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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주일오전예배 설교(계 14:1-5 / 시온산에 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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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08-04 16:43 조회2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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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KdqZCUDjf48?si=j_QIHhxmWlVjaw0Q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사탄이 두 짐승을 앞세워 교회를 팝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14장에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5절은 두 짐승의 유혹과 핍박을 이기고 믿음을 지키고 승리한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시온산에 서서 새 노래를 부르는 내용이고 9-11절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나 손에 666표를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지옥에 떨어져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는 내용입니다. 

1절에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시온산”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상징하는데 하늘나라를 가리킵니다. 인간의 말로 감히 형용할 수 없는 그곳, 환희에 벅찬 영광스러운 장소입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 시온산에 구원받은 성도 십사만 사천 명이 주님과 함께 서 있습니다. “그와 함께” 서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모습입니까? 


1. 십사만 사천은 누구인가?

십사면 사천을 무엇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실제적인 숫자로 보는 견해.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한 사람들의 숫자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 세대주의자들은 십사만 사천은 다 유대인들로 대환란 동안에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단들도 실제적인 숫자로 봅니다. 특히 신천지 이단은 이 십사만 사천을 실제적인 숫자라고 하면서 자기들만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신천지에서는 십사만 사천을 특별한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영적인 새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고 합니다. 자기들 단체만 이 십사만 사천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십사만 사천에 들기 위해서 죽도록 헌신하고 충성하라고 강요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맞지 않는 잘못된 주장입니다.

만약 신천지 말대로 십사만 사천이 실제적인 숫자이고 신천지가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그러면 아브라함도, 다윗도, 바울도, 베드로도 구원받지 못했다는 말이 됩니다. 참으로 말이 되지 않는 황당한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한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는데 그 말씀도 거짓이 됩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세요. 신천지의 말은 다 거짓입니다.

그리고 구약부터 신약까지 구원받는 성도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밖에 안 되겠습니까? 


둘째. 상징적인 숫자로 보는 견해. 기독교에서는 이 십사만 사천을 상징적인 숫자로 봅니다. 십사만 사천은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사람들 전체를 가리키는데, 문자 그대로 십사만 사천이 아니고 구원받은 성도 전체를 가리키는 상징하는 숫자로 봅니다. 십사만 사천은 12x12x1000입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대표인 12지파와 신약시대 성도의 대표인 예수님의 12제자를 곱하면 144가 됩니다. 거기에다가 1,000을 곱하면 144,000이 됩니다. 이처럼 구원받은 성도 전체를 대표하는 숫자가 십사만 사천입니다. 구원받은 성도 전체가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7:9에 구원받은 성도의 실제적인 총수는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했습니다. 


2. 십사만 사천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습니다(1절).

인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십사만 사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인침을 받은 것입니다. 어린양 예수님이 구주로 믿어지고, 하나님 아버지를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 7:4절 5절 8절에도 인침을 받은 자라는 말씀이 나오고, 에베소서 1:13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3:16에 지옥에 갈 자들은 오른손과 이마에 666표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666표 받는 것은 인본주의 사상과 불신앙적인 사상을 가지는 것입니다. 불신앙적인 사상이 머리에 꽉 차 있어서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그러나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성도들의 이마에는 어린양 예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을 쓴 것이 있습니다. 또 이것은 소속과 소유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사신 자들입니다.


둘째. 새 노래를 부릅니다. 새 노래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국에 올라가 새 노래를 부릅니다. 2절에 보면 하늘에서 나는 소리가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거문고 타는 소리 같다고도 했습니다. 웅장하고 위엄이 있으며 두려워할 만한 큰 소리였습니다. 이 소리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찬송 소리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찬송할 때 얼마나 장엄하고 웅장하겠습니까?

3절에 보면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새 노래는 아무나 배울 수 없습니다.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자들만 배울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10에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요한계시록 5:9-10에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셋째,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들입니다(4절). 천주교에서는 ‘여자’를 문자적인 여성이라고 해석하면서 신부들의 독신주의를 주장합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의 상징성을 이해하지 못한 잘못된 해석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여자’를 죄악 세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계시록 17:1). 또 거짓 선지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소아시아 일곱교회 중에 두아디라 교회는 거짓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하므로 음행하는 것으로 취급되어 책망받았습니다. 십사만 사천의 구원받은 성도는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666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았습니다.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만 의지하는 신실한 자들입니다.

야고보서 4:4에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요한계시록 17:1-2에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죄악 세상을 사랑하고 따라가는 것이 음행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임금들은 음녀와 더불어 음행하고, 음행의 포도주에 취했다고 했습니다.

참 성도는 어느 시대나 하나님만 사랑하고 신앙의 정절을 지킵니다. 구약의 욥이 그런 사람입니다. 욥은 건강하고 평안하고 일이 잘될 때도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겼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고통스러울 때도 변함없이 신앙의 온전함을 지켰습니다. 욥기 27:5-6에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넷째,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입니다(4절).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 말씀을 순종합니다. 요한복음 10:4에 예수님을 선한 목자라고 하고 성도들을 양이라고 하면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이 앞서가면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고 따라간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의 특징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세상 따라가지 않고 사람을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만 따르는 자들입니다.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표현입니까? 편하고 좋은 곳으로 인도하든지, 힘들고 어려운 곳으로 인도하든지 주님을 믿고 따라갑니다.


다섯째, 속량함을 받은 처음 익은 열매입니다. 4절에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속량함을 받았다는 것은 값을 지불하고 샀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피흘려 주시고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여섯째,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입니다(5절).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정직하고 진실하다는 것이고, 흠이 없다는 것은 생활면에서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거짓말 중에서도 가장 나쁜 거짓말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거짓말입니다. 요한일서 2:22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참 메시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부인하는 것은 최고의 거짓말입니다. 요한복음 8:44에 보면 마귀는 진리에 서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성경이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거절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또 심각한 거짓말은 자기는 죄가 없다고 하는 거짓말입니다. 요한일서 1:8에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이 사람은 스스로 속이는 자이고 자기가 죄인인 것도 모르는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성경은 거짓말하는 자들은 지옥에 간다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1:8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시록 22:15에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 형벌을 받게 될 자들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십사만 사천은 구원받은 성도 전체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구원받은 십사만 사천에게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고, 새 노래를 부르고,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이며,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이고, 속량함을 받은 처음 익은 열매이고,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 말씀으로 나를 비춰보면서 구원받은 성도답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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