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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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4 수요저녁예배 설교(롬 14:1-12 /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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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07-24 21:29 조회3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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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63llhpbXULg?feature=shared


교회 안에는 믿음이 강한 사람도 있고, 믿음이 약한 사람도 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도 있고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사람도 있다. 성경의 지식이 많은 사람이 있고 성경을 모르는 자도 있다. 교회 안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본문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어떻게 대해줘야 되는지 교훈해주고 있다. 


1절

연약한 자를 품어줘야 한다. 이단에 대해서는 인사도 하지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라고 했다. 믿음이 연약한 성도는 받아줘야 한다. 예수님을 포용하는 일을 잘하셨다. 죄인과 어울리시고 식사도 종종 하셨다. 이런 예수님을 바리새인들이 비난헀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셨고, 병든 자에게 의인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받아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죄와 허물이 많아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주님이 받아주시지 않았으면 다 정죄받아 멸망당해야 한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셨다.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고 세리와 창기까지도 받아주셨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받아주라고 하셨다. 믿음이 약하고 허물이 있어도 받아주라는 것이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 4:5)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라는 것이다. 한 두사람에게 관용을 베풀기는 쉽지만 모든 사람에게 베풀려면 마음을 넓혀야 한다.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 마음을 넓혀서 여러 사람을 용납하고 받아줘야 한다.

그리고 비판하지 말라고 했다. 믿음이 약한 사람, 넘어지는 사람을 비판만 하면 아무도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서로 받아주라고 했다. 로마 교회에 문제가 되었던 두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음식 먹는 문제와 또 다른 하나는 날짜 문제였다. 


2-3절

먹는 문제로 갈등이 있었다. 무슨 음식에 관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 음식을 우상제물로 여기는데 그것은 아니다. 성경은 신구약 공히 단호하게 먹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계 2:14)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계 2:20)

우상제물에 대해서는 먹지 말도록 확실하게 금했다.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고전 10:18)

본문에서 말하는 음식은 레위기 11장에 언급된 음식을 말하는 것이다. 로마 교회 성도들 중에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들이 함께 있었다. 유대인 신자들은 레위기에서 금한 음식들을 당연히 안먹는 습관이 있었다. 새김질 하는 것, 쪽발 갈라진 것은 정결한 것이니까 먹어도 되고, 새김질 하지 않고, 쪽발 갈라지지 않은 것은 부정한 것이니까 먹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골로새서에서 율법의 의식과 제도를 폐하셨다고 했다. 사도행전을 보면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구약에 금한 짐승들을 잡아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구약에 금한 음식들을 신약에 와서는 먹어도 된다고 허용하셨다. 그런데 오랫동안 먹지 않은 유대인들이 꺼림찍하고 양심에 걸려서 먹지 않았다. 이방인들은 다 먹었다. 구약시대 유대의 규례를 따르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서 양심에 가책이 없었다. 

그런데 이 일로 인해서 교회 안에 갈등이 생겼다. 먹는 자는 먹지 않은 자를 업신여겼다. 율법이 폐지되어서 다 먹어도 된다고 하면서 당당하게 먹었다. 이렇게 먹는 사람들이 안먹는 사람들을 업신여겼다. 반댇로 먹지 않는 자들은 먹는 자들을 비판했다. 부정한 음식을 왜 먹느냐고 비판하니 서로 갈등이 되는 문제가 일어났다.

이것에 대해서 바울은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고 결론을 맺는다. 먹는 사람도 하나님이 받아주셨다는 것이다. 안먹는 사람도 하나님이 받아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먹는다고, 먹지 않는다고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가 깨달은대로 각자가 생각하는대로 해도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받아주셨으면 우리도 받아줘야 한다. 하나님이 받아주셨는데 우리는 안받아준다면 우리가 하나님 보다 높은가? 의로운가? 지혜로운가?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겸손해야 하고 늘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4절

"남의 하인" 다른 성도들,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너는 누구냐고 묻는다. 모든 성도는 주님의 종이고 주님의 소유이다. 주인되시는 주님이 잘하면 칭찬하고 잘못하면 책망하실 것이다. 그런데 네가 누구이기에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느냐고 묻는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내 하인, 내 종이 아니다. 주님의 종이다.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바로 서있든지, 넘어졌든지 다시 세우는 권한은 주님에게 있다. 주님이 필요하면 세워주시고, 잘못하면 책망하실 것이다. 그런데 너는 누구이기에 남의 종에 대해서 비판하고 판단하느냐는 것이다. 성도를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월권이다. 그것은 주인되시는 주님이 하실 일이다. 모든 성도는 주님을 섬기는 주님의 종들이다. 이것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하겠다.

음식 문제에 대해서 구약에 금한 것을 신약에 와서는 다 먹도록 허용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는 거리끼니까 안먹고 싶다고 한다면 안먹어도 된다. 그 문제에 대해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을 가지고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교는 지금도 이것을 따지고 있다. 초대교회 때는 방금 전까지 먹었는데, 안먹어도 된다고 하니까 갈등이 심해져서 권면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려고 한 것이다. 


5절

안식일 날짜 문제에 대한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구약에는 토요일에 지키라고 하셨고, 신약에는 주일로 바꿔주셨다.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호 2:11)

안식일을 폐한다고 하셨다. 구약시대 토요일에 지키던 안식일을 폐지하신다는 것이다.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골 2:14~16)

법조문으로 쓴 문서를 제하시고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구약의 증서들을 제하셨다고 했다. 폐지하고 없앴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 문제로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날을 정해서 안식일로 삼도록 말씀하셨다.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 4:7~9)

구약시대에는 6일간 천지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시므로 토요일 안식일을 지켰지만 신약시대에는 주일을 안식일로 정해주셨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고, 성령께서 임재하신 날이고, 성부께서 말씀을 주신 날이다. 그래서 안식일은 성경에 명확하게 바꿔주신 것을 기록해 놓았다.

초대교회 때부터 안식일을 지킬 때 주일날에 모였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행 20:7)

주간의 첫날에 모였다고 했는데, 주일을 가리킨다. 주일에 성찬식을 하고 말씀을 전했다.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안식일을 토요일이든, 주일이든 알아서 하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정하신대로 순종해야 한다. 이단 안식교와 하나님의 교회(안상홍 증인회)는 토요일에 모여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식일 외에 기념일, 축제일, 금식일 등 유대인들이 어떤 날을 특별히 정해서 지키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 날들은 사람이 원하는 날로 택해서 해도 된다. 금식을 자기가 하고 싶을 때 정해서 해도 된다. 추수감사절을 한국에서는 11월 셋째 주일에 지킨다. 캐나다에서는 10월에 지킨다. 캐나다는 추위가 일찍 오니까 한달 먼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이다. 성경에 확실하게 명하지 않은 날에 대해서는 비방하거나 다투지 말고 정할 수 있다.

성경에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은 것을 가지고 논쟁할 필요가 없다. 극장에 가도 되는가? 골프장에 가도 되는가? 화장을 해도 되는가? 염색을 해도 되는가? 이것을 논쟁한다. 성경에 없는 것을 가지고 논쟁할 필요가 없다. 성경에 없는 것을 가지고 비판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6절

어떤 사람은 어느 날을 중히 여겨서 금식하면서 주님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면 그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다른 사람은 또 다른 날을 정해서 금식하면서 특별 기도를 했다면 그것도 존중해줘야 한다. 주님을 위해서 하는 일들이기 때문에 비방할 일이 아니고 존중해줘야 한다. 음식을 먹지 않는 자도 자기 나름대로 주를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비방하지 말고 존중해줘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믿음으로 하는 일에 대해서 시비하지 말고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진리에 어긋난 것은 단호하게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 분명하게 말씀하지 않은 것은 관용을 베풀고 서로 받아줘야 한다. 


7-8절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아야 되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는 자라고 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다! 참 아름답고 위대한 고백이다. 주님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 마음을 가지는 것이 본질이고 핵심이다. 이 본질적인 것을 잘 지키고 세워나가고 본질적인 것이 아닌 소소한 문제는 관용을 베풀고 너그럽게 이해해줘야 한다. 


9절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그것은 성도를 구원하기 위해서이고 성도가 하나되고 단합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죽음심을 헛되게 만들지 말고 단합하고 하나되는 일을 잘 감당해야 한다. 


10절

"형제" 내가 비판하는 그 사람이 형제라는 것이다. 내가 업신여기는 그 사람이 형제라는 것이다. 주님의 보혈로 구원받고 한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형제이기에 원수와 같이 여기면 안된다.

아브라함과 롯이 점점 양떼가 많아지고 부자가 되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다퉜다. 아브라함은 우리가 한 골육이라고 말하면서 양보하고 믿음으로 나아갔다. 위대한 모습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내가 미워하는 저 사람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 나도 하나님께서 잘했는지 못했는지 저울에 달아보시고 판단하시는 날이 온다. 그날 책망받지 않도록 잘 살아야 한다. 


11-12절

"내가 살았노니" 하나님을 살아계신다. 하나님이 다 보시고 들으시고 알고 계신다. 하나님이 다 심판하실 것이다. 

마지막 심판 때 모든 사람이 다 각각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자기 죄를 자백하게 될 것이다.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 자기 잘못을 직접 고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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