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0 수요저녁예배 설교(롬 13:1-7 /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김희신 목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본문
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ACFZxpOFT3o?si=OPDLgyRQowqO19_O
우리는 로마서의 두번째 부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크게 두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장부터 11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일들, 구원의 은혜의 교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고, 12장부터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해야될 일들,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1-8절은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예배와 삶으로 영광을 올려드려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12장 9-21절에서는 구원받은 성도가 교회와 이웃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1-7절은 구원받은 성도가 국가와 국가의 통치자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제목이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인데, 성도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세상 속에서 세상의 통치를 받고 있는 세상에 속한 백성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성도는 이러한 이중적인 신분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와 권세자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생각해볼 문제는 바울이 이 말씀을 쓸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냐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의 기독교인들 가운데 세상은 악한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 받아 멸망할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것들은 멀리하고, 피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같은 말씀, 성도가 거룩해야 한다는 말씀을 너무 극단적으로 받아들인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씀이 세상은 속한 것을 전부 죄악된 것으로 치부하고, 무조건 피해야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에 속했다고 해서 전부 악한 것이 아닙니다. 공중 권세 잡은 마귀가 세상의 왕노릇을 한다고 말하지만 마귀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안에서 제한된 행동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사를 주관하시고, 모든 것을 합력하셔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에 세상 것은 전부 악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국가의 권세자들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1절을 다시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모든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났기 때문이고,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더 중요하게 바라봐야 하는 부분은 '복종하라'는 명령 자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복종해야 된다'라는 이유가 명령보다 더 중요합니다. 국가의 권세자들에게 복종해야 될 이유가 그들이 단지 그들이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권세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법과 명령으로 여기고 절대 복종해야 되는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 권세자들에게 권세를 주셨고 그들에게 복종해야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자 명령이기 때문에 복종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 4장 17절을 보면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왕을 세우시는데, 하나님 앞에서는 어떠한 왕이라도 지극히 천한 자일 뿐입니다. 우리는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만사를 주장하시며,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모든 것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현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현상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만사 속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내가 겪는 어떤 일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고, 재수 없어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행운의 결과도 아니고, 어쩌다가 이만저만해서 생긴 일이 아닙니다. 내가 겪는 모든 사건과 상황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자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2절에 보면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했습니다. 모든 권세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국가 권세에 복종하지 않고, 대항하는 것을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 됩니다. 거스르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권세를 거스르는 행동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모든 권세를 하나님이 주셨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하나님의 백성이자,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을 온 우주를 다스리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인정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세상의 권세에도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위에 더 높이 계신 하나님께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국가의 권세자들에게 권세를 주신 것일까요? 그 이유가 4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하나님께서 국가의 권세자들에게 주신 사명을 크게 두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국가의 사명을 소극적 측면과 적극적 측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소극적 측면에서 국가는 악을 제어하는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은 타락한 죄인들이 모여서 살아가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언제나 죄악이 가득합니다. 타락한 인간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 모든 단체가 이기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죄성을 제어되지 않으면 이 세상은 금방 혼란과 무질서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국가의 권세자들에게 "칼"이라는 권력을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4절)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국가는 하나님이 주신 칼을 가지고 국가 내부의 악과 외부의 악을 방어해야 합니다. 내부의 악은 법과 경찰 등의 공권력을 통해 방어할 수 있는데, 죄 있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심한 경우에는 사형을 집행할 수도 있습니다. 외부의 악은 군대를 동원하여 나라와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악을 제어할 수 있는 '칼'을 부여받은 기관은 국가가 유일합니다. 국가 외에 다른 기관이나 단체들도 나름의 악을 제어하는 권력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을 감옥에 가두거나 사형까지 시킬 수 있는 권한은 오직 국가에게만 부여된 권세입니다.
국가가 가진 소극적 사명이 악을 제어하는 것이라면, 적극적 사명은 선을 장려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여기서 말하는 선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나라의 권세자들에게 원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22장 2-3절 “[2] 이르기를 다윗의 왕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국가는 정의와 공의를 행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로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국가는 국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행복한 삶을 살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시행하고, 전반적으로 국민 전체가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게하는 것을 국정 운영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국가를 세우시고, 국가의 통치자들을 세우셔서 그들에게 권세를 주신 목적입니다.
4절 말씀에서 주목해야 될 표현은 국가의 권세자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권세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그들에게 권세를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권세자들이 다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권세자들 중에서는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사역자, 하나님의 종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국가의 권세자들은 그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목적대로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악한 자들을 벌하고, 선을 장려하는 일을 하는 것은 국가를 세우시고 권세자들을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권세자들은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악을 벌하는 책임을 주셨기 때문에, 그 권세를 가진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악한 일은 멀리하고 선한 일을 열심히 행해야 합니다.
그 말씀이 3절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성도가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권세자들에게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권세자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해서, 다시 말해 악을 제어하고 선을 베푸는 일을 임무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국가나 국가의 권세자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 주신 은혜의 한 요소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국가나 권세자들에 대해 반대하거나 미워하는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므로 순종하는 입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해야 하는데, 권세자들이 가진 칼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복종하기 보다는, 양심에 따라 복종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성도다운 모습입니다.
5절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이 양심은 일반적인 사람의 양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 안에 내주해 계신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성도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성도의 선한 양심은 하나님과 하나님에 뜻에 대해서 올바르게 반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양심을 따라 복종해야 된다고 말씀한 것은 단지 악을 행했을 때 벌받을 것이 무서워서 복종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자들에게 권세를 주셨다는 진리를 믿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믿음을 갖고 권세에 복종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서 "양심"이 강조되는 이유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국가를 세우시고 권세자들을 세우신 목적 자체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임받아서 악을 제어하고 선을 장려함으로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뜻대로 권세를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악을 행하고, 선을 억압하는 형태로 권세를 악용하는 일들이 역사 속에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지금도 북한과 같은 독재 정권은 국민들을 억압하고 오직 자기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에만 권세를 이용해 먹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권세를 위임받은 국가의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명령을 내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명령 자체가 하나님의 권세에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국가의 권세자들이 아무리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고 그 권세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이용당해야 합니다. 권세자는 자기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섬기고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명령을 내린다면 성도는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구약시대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왕이 하나님의 명령과 정반대되는 명령을 내렸을 때 죽음을 각오하고 왕의 명령을 불복종했습니다.
그러다가 풀무불에 들어가고 사자굴에도 들어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다가 산헤드린 공의회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고, "예수의 이름으로는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은 그 명령을 거부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국가의 법을 잘 따르는 것이 성도의 의무이지만, 하나님의 법과 반대되는 법은 따르면 안됩니다. 국가에 대한 순종은 무조건적인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의 테두리 안에서의 순종입니다. 그렇다면 세속적인 국가가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일들을 하는 경우에 우리 성도들은 어떤 믿음을 가지는 것이 좋을까요?
이사야 40장 23-24절 “[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국가의 흥망성쇠를 하나님이 주장하신다는 믿음을 확고히 붙잡아야 합니다. 세상의 권세자들은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면 부서지고 날아가 버릴 마른 잡초와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명령을 내리고, 권선징악이라는 하나님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제 멋대로 행하는 권세자들을 심판하시고 멸하실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앗수르와 바벨론과 페르시아와 로마가 이러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악용하고 남용하는 나라와 권세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6-7절에서 사도바울은 권세에 복종하는 구체적인 사례로 납세의 의무에 대해서 언급을 합니다.
6절에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고 했습니다. 바울은 세금을 바쳐야 되는 이유에 대해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한마디로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기 때문에 그들을 존중하고, 납세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 일꾼에 해당되는 헬라어 단어는 "레이투르고스"인데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과 복음을 위해서 헌신한 자들을 나타낼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이를 통해 바울은 국가의 권세자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다는 점을 좀 더 강력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7절에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될 바는 해야 된다는 취지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자들을 인정하고 존경한다는 것을 겉으로만 마지 못해 인정하지 말고, 실제로 그들을 존중하고 존경해야 하고, 그것은 백성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될 납세의 의무를 통해 나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납세의 의무를 강조하는 점에 대해서 당시 역사적 정황을 살펴볼 때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주후 50년대 로마 제국 안에서 세금을 지불하는데 상당한 저항이 있었고, 58년 즈음에 정점을 이루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유대인 성도들 가운데는 열심당이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로마의 억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해내는데 무력을 통해 이 일을 이루고자 했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사상과 행동들에 대해서 바울은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려주려는 의도를 갖고 이 말씀을 기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의 권세자는 대항하고 반대하고 싸워할 원수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일꾼된 자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되고, 국가가 요구하는 의무들을 성실하게 행하라는 것이 이 말씀의 요지입니다.
오늘날도 국가가 하나님께서 목적하시는 권선징악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국가를 운영하려면 많은 경비가 필요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의료, 복지, 국방 등 국가가 해야 될 일들이 많은데,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국가의 살림살이를 해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는 여러가지 명목의 세금들을 거둡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금이 아깝다는 말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든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 납세의 의무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는 것과 납세의 의무를 감당하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국가 권세자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 대한 존경과 두려운 마음을 갖는 것이 마땅합니다. 국가의 권세자들이 하나님의 임명을 받아 권선징악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을 때 성도들은 국가의 명령에 잘 순종해야 합니다.
국가에 대한 복종과 복종의 구체적인 형태로서 세금 납부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국가의 권력 자체를 절대시 해서 무조건적으로 국가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는 태도를 가지면 안됩니다. 국가의 권세자들이 하나님의 법과 반대되는 법을 재정해서 명령할 때에는 국가의 권세에도 불복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국가에 소속되어 있는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성도에게 있어 최상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국가의 법이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지 않을 때에는 잘 복종해야 하고, 하나님의 법에 위배될 때에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는 것이 성도의 바른 자세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