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4 주일오전예배 설교(디모데후서 2장 1-4절/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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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10-24 15:08
조회87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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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보면 우리 믿는 사람에 대한 호칭이 여러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제자, 예수님의 친구, 나그네와 행인, 하나님의 종, 신자, 하나님의 일군, 천국 시민 등 참 다양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그리스도 예수의 병사’입니다. 성경에서 우리 예수님 믿는 성도들에 대한 호칭을 이렇게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은 그 명칭에 내포되어있는 성도의 신분과 사명과 목적이 다양함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신자’라고 부를 때 그 의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 혹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도를 ‘나그네와 행인’이라고 부를 때는 성도의 본향은 하늘나라에 있고 세상에서는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호칭입니다. 성도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복을 받는 자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병사’라는 호칭은 싸우기 위해서 뽑힌 군인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병사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할아버지나 할머니나 다 예수님의 병사입니다.
1. 우리는 그리스도의 병사임
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그의 믿음의 아들이요 동역자요 사역의 후배가 되는 디모데를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병사는 전쟁을 위해서 특별하게 뽑힘을 받은 사람이며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남자들이 군대에 뽑혀 가면 먼저 머리를 자르고, 세상에서 입던 옷을 벗고 군복을 입습니다. 그리고 훈련소로 보내져서 일정기간 특별한 훈련을 받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되고, 철저한 교육을 받아야 하며, 엄격한 규율과 질서를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정신무장을 시키고, 체력훈련과 담력훈련을 시킵니다. 총기 사용법을 배우고, 화생방 훈련을 하고, 독도법과 지형지물 숙지법을 다 배웁니다. 그래서 적을 무찌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군인은 시장터에 모인 사람들처럼 오합지졸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군인은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들처럼 허약한 자가 아닙니다. 군인은 훈련된 사람이며 정신무장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유사시에 적을 맞아 앞장서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모여 있는 연합체입니다. 교회는 마귀와 싸우고 죄와 싸우기 위하여 특수한 훈련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병사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믿는 자가 되었고 특별히 그리스도의 병사로 뽑힘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를 병사로 모집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장이고 우리의 지휘관이십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내가 그리스도의 병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병사에게 합당한 자격과 능력을 갖추어서 영적인 싸움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교인들이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자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병사인 것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원수가 누구이고, 자기의 대적이 누구인가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저 일주일에 한 번 교회만 갔다 오면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싸움의 연속입니다. 죄와 싸우고, 마귀와 싸우고, 세상과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병사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2. 좋은 병사가 되려면
3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병사입니까? 밥을 많이 먹는다고 좋은 병사입니까? 노래를 잘 부른다고 좋은 병사입니까? 키가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좋은 병사입니까? 옷을 잘 입는다고 좋은 병사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싸움이 일어났을 때 적을 맞이해서 잘 싸워 이기는 병사가 좋은 병사입니다. 아무리 별소리 다하고 다녀도 싸움에서 지면 좋은 병사가 아닙니다. 군인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군인정신입니다. 좋은 군인은 사기가 충천하고 강한 전투 능력이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그리스도의 병사인 것도 모르고, 누구하고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정신상태가 해이해져 가지고 허랑방탕하고 있으면 좋은 군사가 될 수 없습니다. 좋은 병사가 되겠다는 결심과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은혜 가운데서 강해야 함. 1절에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군인은 싸움을 위해서 뽑은 자들입니다. 적과 싸워서 이기려면 강해야 합니다. 약한 군대를 적과 싸울 수 없습니다. 전쟁에는 2등이 없습니다. 지면 죽습니다. 지면 끝장입니다. 죽지 않으면 포로가 됩니다.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강해져야 합니다. 강해지되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해져야 합니다. 육체적 혈기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은혜로 강해져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심령이 강해지고, 믿음도 강해집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그 은혜에 감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입니다. 죄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당해야 마땅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얼마나 귀하고 큰 은혜입니까? 우리가 이 구속의 은혜를 생각 할 때 늘 감사하고 감격하여 몸을 바쳐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지 못하면 마음이 약해집니다. 믿음이 약해집니다. 그렇게 약해지면 적과 싸울 수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에스겔 16:30에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약해서 애굽, 갈대아, 블레셋, 앗수르를 의지하는 것을 보면서 탄식을 하신 말씀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없습니다. 믿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둘째. 충성된 자라야 함. 2절에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군복만 입는다고 좋은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군인은 자기 맘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먹고 싶다고 먹고, 자고 싶다고 자고, 놀고 싶다고 노는 것이 아닙니다. 대장 예수님의 말씀에 충성해야 합니다. 충성이란 말은 “변함이 없는 신실함, 혹은 신뢰한 만한, 믿을 만한” 이런 뜻입니다. 충성된 자는 책임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습니다. 충성된 자는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습니다. 충성된 자는 좋으나 싫으나 꾸준히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합니다. 충성된 자는 일을 맡으면 핑계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고 완수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충성된 자를 사랑하시고 귀하게 쓰십니다.
성도는 충성하되 예배 생활부터 충성해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예배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일도 예배보다 중요한 알은 없습니다. 교회에서 다른 봉사한다고 예배 빠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신실한 성도는 예배를 최우선적인 문제로 삼습니다. 예배는 사람의 몸에다 비유하면 척추뼈와 같습니다. 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척추뼈입니다. 척추뼈가 잘못되면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예배를 바로 드리고,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으면 신앙이 튼튼하고 흔들림이 없습니다. 무엇을 해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배가 휘청거리는 사람이 무엇을 잘 할 수 있습니까? 볼 것도 없이 항상 불안합니다. 그런 사람이 기도는, 전도는, 봉사는, 잘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모든 힘이 예배로부터 생기는 법입니다.
셋째. 고난을 받아야 함. 3절 끝에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가 강해지려면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실제로 젊은이들이 군대에 입대하면 강한 훈련을 받으면서 고난을 당합니다. 특수부대 병사들은 더 강한 훈련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병사인 우리도 영적인 훈련을 받으며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 기도하는 훈련, 낮아져서 섬기는 훈련, 죄를 이기는 훈련, 원수를 사랑하는 훈련, 참고 견디는 훈련, 고난을 견디는 훈련 등 많은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는 고난이 있고, 주를 위해서 일하다 보면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을 참고 견뎌야 합니다. 성도는 고난을 통해서 연단을 받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많이 받고 능력있는 주님의 군사가 되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희한한 능력도 많이 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9:13-16에 보면 어떤 마술하는 사람이 시험 삼아 귀신들린 사람에게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 이름으로 명하니 나가라’고 했습니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쫓겨나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들었습니다. 악귀가 말하기를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도망했습니다. 아무리 말은 잘하고, 아는 것이 많아도, 실제로 싸움에서 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죄의 유혹이 올 때 싸워서 이기고, 마귀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넷째,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아야 함. 4절에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병사로 부름을 받으면 가정을 떠나 부대로 들어가야 합니다. 아무리 개인적인 볼일이 많아도 다 제쳐두고 군인으로서의 본분과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우선해야 합니다. 누구라도 사생활에 얽매이면 군인의 책임과 사명을 다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만사를 다 제쳐놓고 “예”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사생활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부터 먼저 하라는 말입니다. 생활의 염려는 주님께 맡기고 믿는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자들이며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군인입니다. 밥 먹다가도 출동하면 그냥 나가야 합니다. 잠을 자다가도 집합하면 뛰쳐나가서 모여야 합니다. 군대에 가면 그 전투력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초적이고 초보적인 것이 뭐냐면 ‘집합’입니다.
훈련이 제대로 된 군대는 ‘5분 내로 집합’하면, 5분 안에 연병장에 집합을 완료합니다. 그런데 예비군 훈련이나 민방위 훈련 같은 것은 보면 한심합니다. 한 시간 늦게 오는 사람, 두 시간 늦게 오는 사람, 제 마음대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주일날 ‘탄방교회로 집합’하고 말씀하실 때에 제대로 되고 있습니까? 나의 영적인 전투력, 군인정신이 어떤가 알 수 있습니다.
다섯째,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함. 4절 끝에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성도는 우리의 모병관이며 지휘관이며 통수권자인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모이라고 하면 모이고, 주님이 돌격하라고 하면 돌격해야 합니다. 주님이 지휘하는 대로 싸워야 합니다. 주님께 절대 복종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병사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삶의 목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1:10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살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영적인 능력은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 성경 지식이 얼마나 많으냐, 직분이 무엇이냐에 달린 것이 아니고, 얼마나 열심히 전도하여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려내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 병사로 삼은 것은 복음을 전하여 택한 백성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은사를 주신 것도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고, 주님께서 직분을 주신 것도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적인 싸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최고의 명령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병사로 살아가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큰 영광을 누리는 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가 되면 하늘나라에서 큰 영광과 상급을 얻게 됩니다. 우리를 위해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좋은 병사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믿는 사람에 대한 호칭이 여러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제자, 예수님의 친구, 나그네와 행인, 하나님의 종, 신자, 하나님의 일군, 천국 시민 등 참 다양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그리스도 예수의 병사’입니다. 성경에서 우리 예수님 믿는 성도들에 대한 호칭을 이렇게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은 그 명칭에 내포되어있는 성도의 신분과 사명과 목적이 다양함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신자’라고 부를 때 그 의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 혹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도를 ‘나그네와 행인’이라고 부를 때는 성도의 본향은 하늘나라에 있고 세상에서는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호칭입니다. 성도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복을 받는 자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병사’라는 호칭은 싸우기 위해서 뽑힌 군인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병사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할아버지나 할머니나 다 예수님의 병사입니다.
1. 우리는 그리스도의 병사임
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그의 믿음의 아들이요 동역자요 사역의 후배가 되는 디모데를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병사는 전쟁을 위해서 특별하게 뽑힘을 받은 사람이며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남자들이 군대에 뽑혀 가면 먼저 머리를 자르고, 세상에서 입던 옷을 벗고 군복을 입습니다. 그리고 훈련소로 보내져서 일정기간 특별한 훈련을 받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되고, 철저한 교육을 받아야 하며, 엄격한 규율과 질서를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정신무장을 시키고, 체력훈련과 담력훈련을 시킵니다. 총기 사용법을 배우고, 화생방 훈련을 하고, 독도법과 지형지물 숙지법을 다 배웁니다. 그래서 적을 무찌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군인은 시장터에 모인 사람들처럼 오합지졸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군인은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들처럼 허약한 자가 아닙니다. 군인은 훈련된 사람이며 정신무장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유사시에 적을 맞아 앞장서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모여 있는 연합체입니다. 교회는 마귀와 싸우고 죄와 싸우기 위하여 특수한 훈련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병사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믿는 자가 되었고 특별히 그리스도의 병사로 뽑힘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를 병사로 모집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장이고 우리의 지휘관이십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내가 그리스도의 병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병사에게 합당한 자격과 능력을 갖추어서 영적인 싸움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교인들이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자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병사인 것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원수가 누구이고, 자기의 대적이 누구인가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저 일주일에 한 번 교회만 갔다 오면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싸움의 연속입니다. 죄와 싸우고, 마귀와 싸우고, 세상과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병사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2. 좋은 병사가 되려면
3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병사입니까? 밥을 많이 먹는다고 좋은 병사입니까? 노래를 잘 부른다고 좋은 병사입니까? 키가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좋은 병사입니까? 옷을 잘 입는다고 좋은 병사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싸움이 일어났을 때 적을 맞이해서 잘 싸워 이기는 병사가 좋은 병사입니다. 아무리 별소리 다하고 다녀도 싸움에서 지면 좋은 병사가 아닙니다. 군인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군인정신입니다. 좋은 군인은 사기가 충천하고 강한 전투 능력이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그리스도의 병사인 것도 모르고, 누구하고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정신상태가 해이해져 가지고 허랑방탕하고 있으면 좋은 군사가 될 수 없습니다. 좋은 병사가 되겠다는 결심과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은혜 가운데서 강해야 함. 1절에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군인은 싸움을 위해서 뽑은 자들입니다. 적과 싸워서 이기려면 강해야 합니다. 약한 군대를 적과 싸울 수 없습니다. 전쟁에는 2등이 없습니다. 지면 죽습니다. 지면 끝장입니다. 죽지 않으면 포로가 됩니다.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강해져야 합니다. 강해지되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해져야 합니다. 육체적 혈기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은혜로 강해져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심령이 강해지고, 믿음도 강해집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그 은혜에 감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입니다. 죄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당해야 마땅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얼마나 귀하고 큰 은혜입니까? 우리가 이 구속의 은혜를 생각 할 때 늘 감사하고 감격하여 몸을 바쳐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지 못하면 마음이 약해집니다. 믿음이 약해집니다. 그렇게 약해지면 적과 싸울 수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에스겔 16:30에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약해서 애굽, 갈대아, 블레셋, 앗수르를 의지하는 것을 보면서 탄식을 하신 말씀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없습니다. 믿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둘째. 충성된 자라야 함. 2절에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군복만 입는다고 좋은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군인은 자기 맘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먹고 싶다고 먹고, 자고 싶다고 자고, 놀고 싶다고 노는 것이 아닙니다. 대장 예수님의 말씀에 충성해야 합니다. 충성이란 말은 “변함이 없는 신실함, 혹은 신뢰한 만한, 믿을 만한” 이런 뜻입니다. 충성된 자는 책임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습니다. 충성된 자는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습니다. 충성된 자는 좋으나 싫으나 꾸준히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합니다. 충성된 자는 일을 맡으면 핑계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고 완수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충성된 자를 사랑하시고 귀하게 쓰십니다.
성도는 충성하되 예배 생활부터 충성해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예배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일도 예배보다 중요한 알은 없습니다. 교회에서 다른 봉사한다고 예배 빠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신실한 성도는 예배를 최우선적인 문제로 삼습니다. 예배는 사람의 몸에다 비유하면 척추뼈와 같습니다. 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척추뼈입니다. 척추뼈가 잘못되면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예배를 바로 드리고,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으면 신앙이 튼튼하고 흔들림이 없습니다. 무엇을 해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배가 휘청거리는 사람이 무엇을 잘 할 수 있습니까? 볼 것도 없이 항상 불안합니다. 그런 사람이 기도는, 전도는, 봉사는, 잘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모든 힘이 예배로부터 생기는 법입니다.
셋째. 고난을 받아야 함. 3절 끝에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가 강해지려면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실제로 젊은이들이 군대에 입대하면 강한 훈련을 받으면서 고난을 당합니다. 특수부대 병사들은 더 강한 훈련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병사인 우리도 영적인 훈련을 받으며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 기도하는 훈련, 낮아져서 섬기는 훈련, 죄를 이기는 훈련, 원수를 사랑하는 훈련, 참고 견디는 훈련, 고난을 견디는 훈련 등 많은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는 고난이 있고, 주를 위해서 일하다 보면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을 참고 견뎌야 합니다. 성도는 고난을 통해서 연단을 받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많이 받고 능력있는 주님의 군사가 되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희한한 능력도 많이 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9:13-16에 보면 어떤 마술하는 사람이 시험 삼아 귀신들린 사람에게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 이름으로 명하니 나가라’고 했습니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쫓겨나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들었습니다. 악귀가 말하기를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도망했습니다. 아무리 말은 잘하고, 아는 것이 많아도, 실제로 싸움에서 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죄의 유혹이 올 때 싸워서 이기고, 마귀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넷째,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아야 함. 4절에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병사로 부름을 받으면 가정을 떠나 부대로 들어가야 합니다. 아무리 개인적인 볼일이 많아도 다 제쳐두고 군인으로서의 본분과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우선해야 합니다. 누구라도 사생활에 얽매이면 군인의 책임과 사명을 다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만사를 다 제쳐놓고 “예”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사생활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부터 먼저 하라는 말입니다. 생활의 염려는 주님께 맡기고 믿는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자들이며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군인입니다. 밥 먹다가도 출동하면 그냥 나가야 합니다. 잠을 자다가도 집합하면 뛰쳐나가서 모여야 합니다. 군대에 가면 그 전투력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초적이고 초보적인 것이 뭐냐면 ‘집합’입니다.
훈련이 제대로 된 군대는 ‘5분 내로 집합’하면, 5분 안에 연병장에 집합을 완료합니다. 그런데 예비군 훈련이나 민방위 훈련 같은 것은 보면 한심합니다. 한 시간 늦게 오는 사람, 두 시간 늦게 오는 사람, 제 마음대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주일날 ‘탄방교회로 집합’하고 말씀하실 때에 제대로 되고 있습니까? 나의 영적인 전투력, 군인정신이 어떤가 알 수 있습니다.
다섯째,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함. 4절 끝에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성도는 우리의 모병관이며 지휘관이며 통수권자인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모이라고 하면 모이고, 주님이 돌격하라고 하면 돌격해야 합니다. 주님이 지휘하는 대로 싸워야 합니다. 주님께 절대 복종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병사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삶의 목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1:10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살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영적인 능력은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 성경 지식이 얼마나 많으냐, 직분이 무엇이냐에 달린 것이 아니고, 얼마나 열심히 전도하여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려내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 병사로 삼은 것은 복음을 전하여 택한 백성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은사를 주신 것도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고, 주님께서 직분을 주신 것도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적인 싸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최고의 명령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병사로 살아가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큰 영광을 누리는 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가 되면 하늘나라에서 큰 영광과 상급을 얻게 됩니다. 우리를 위해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좋은 병사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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