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2 수요예배 설교(누가복음 6장 12-26절/제자들을 택하시고 교훈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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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9-22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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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시기 전날밤의 행적을 알려주고 있다.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에 가시고 밤새도록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밝자 열두 제자를 택하셨다. 주님께서 제자를 택하시기 전에 밤새 기도하셨다. 자기 마음에 드는 자를 제자로 삼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자를 뽑기 위해서 기도하신 것이다.
주님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예수님도 중요한 일을 앞두고 밤새 기도하셨는데 우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어떤 일도 내 힘과 경험으로 할수 없다. 내가 할수 있다는 것은 교만이다. 내 힘으로 할수 없다는 것이 겸손이고, 겸손한 자가 하나님께 기도할수 있다.
만약 일이 많고 너무 바쁘다면 더 기도에 힘써야 한다. 바뻐서 기도할 시간을 빼앗긴다면 큰 실수를 할수 밖에 없다.
13절
기도하고 나서 다음날 열두 제자를 불러서 사도라 칭하셨다. "사도"는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인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에 의해서 직접 보냄을 받은 자가 사도이다. 사도들에게는 신약성경을 기록할 은혜를 주셨다. 복음을 전해서 신약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교회의 기초를 놓는 역할을 하게 하셨다. 사도들은 아주 중요한 일을 감당했다.
에베소서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는 사도와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말씀을 가리킨다. 성경말씀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사도라 칭함을 받았다. 이들은 중요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직접 불러서 사도로 세우셨다(후에 가룟 유다 대신에 바울이 사도로 세워졌다).
지금은 사도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도 자기를 사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도가 뭔지도 모르는 잘못된 사람이다. 요즘 이단들 가운데 신사도운동이라는 신비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사도는 성령충만한 자들로 성경을 기록하고 복음을 전해서 신약교회를 세우는 역할을 했다. 지금은 이런 사도가 없다. 그런데도 자기를 사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볼것도 없이 잘못된 사람들이다.
14-16절
열두 사도들의 이름을 기록했다. 참 복된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열둘 밖에 안되는데 그 안에 포함되었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우리는 사도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움을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감사함과 기쁨으로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겠다.
가룟유다는 제자로 부름을 받았지만 불택자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자이다.
요한복음 6: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요 6:64, 개역개정)
요한복음 6:70-7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어떤 사람들은 가룟유다가 예수님 잘 믿다가 타락한줄 안다. 그렇지 않다. 그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마귀의 종이었다.
그러면 왜 가룟유다를 제자로 삼으셨나? 실수로 하신 것이 아니다. 다 아시면서 제자로 삼으셨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첫째, 후대에 교회의 교역자와 성도 중에도 불택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불택자, 믿지 않는 자도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이용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물론 중요한 일에는 택한 일꾼에게 사명을 주셔서 쓰시지만 때로는 불택자도 사용하신다. 가룟유다가 그런 대표적인 사람이다.
셋째,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요한복음 13: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한말씀도 거짓이 없고 헛된 것이 없다.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가 주님을 배반하고 팔 것을 예언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가룟유다가 배반했다. 가룟유다가 은 30에 주님을 팔아 넘긴다.
17-19절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셔서 평지에 서셨다. 그러자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말씀도 듣고 병고침도 받기 위해서이다.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은 자들도 고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온 무리가 예수님을 만지려고 힘썼다. 만지면 능력이 나와서 고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래서 만질때 예수님에게서 능력이 나왔다.무슨 병에 걸렸던지 나았다.
마가복음 5장에 12년 동안 혈루증 앓던 여인이 여러 의원을 찾아가고 여러 약을 썼지만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다 허비했는데,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가 병에 나았다. 이런 놀라운 역사와 능력이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예수님을 직접 만질수는 없지만 접촉할수 있다. 그 방법이 예배와 기도이다. 예배는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두 세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중에 함께 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기도시간이 주님과 만나는 시간이요 교제하는 시간이다. 기도할때 능력이 우리에게 임한다. 영적으로 주님과 교제하고 만나는 방법이 우리에게 있다. "예배와 기도"
예배 드리다가 은혜 받음으로 기도하다가 능력받음으로 고침 받고 새사람이 되는 일들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 주님 만나기를 힘써야 한다. 모든 능력이 주님에게서 나온다. 사람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다. 돈, 세상 권세, 지식도 능력이 아니다. 참된 능력은 오직 주님에게서 나온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시고 죄를 사하시고 새생명을 주시는 능력은 주님에게만 있다. 세상 능력이 커보일 때가 있지만 주님에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나아가 주님 만나는 일에 힘써야 하겠다.
20-23절
주님께서 네가지 복을 말씀하셨다. 마태복음에는 팔복이 나와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네가지 복을 기록했다. 이것은 세상의 복과 다르다. 신령한 복을 가리킨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마태복음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했다. 심령이 살아서 배고픔을 느끼는 사람이다. 심령이 죽은 자는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다. 배고픔을 느끼는 자는 하나님을 사모하고 신령한 것에 갈급한 마음을 가진다. 반대로 배고픔을 전혀 못느끼고 영적인 갈급함이 없으면 심령이 가난한 것이 아니다. 심령이 부요하고 배부른 자이다. 이런 자에게는 복이 없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서 배고픔을 느껴야 되고, 배고픔 때문에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늘 사모하고 갈망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심령에 하늘나라가 임하게 해주신다. 이런 복을 받으면 부러울 것이 없다. 주님께서 이런 은혜를 받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마태복음에서는 의에 주린 자라고 했다. 의에 굶주린 자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게 되어 있다. 이런 자를 하나님께서 배부르게 하신다. 영적 배고픔에 대해서 채워주시고 하나님으로 만족하게 해주신다. 우리에게 의에 굶주린 심령이 있어야 한다. 의를 사모하고 의를 얻기를 힘쓰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마태복음에서는 애통하는 자라고 했다. 세상은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는데 예수님을 우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다. 죄때문에 회개하면서 우는 자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애쓰며 애통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데 잘 되지 않으니 울면서 힘쓰는 자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역사를 위해서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고 늘 힘쓰는 자이다. 그러면 너희가 웃을 것이라고 헀다. 위로를 받고 기쁨을 얻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욕을 듣고 악하다고 버림을 당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으로 인하여"이다. 자기 때문에 욕먹는 것은 해당되지 않는다. 자기가 잘못해서 욕먹으면서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는다고 한다. 내 잘못이 아닌데, 순전히 예수님으로 인해서, 예수님 믿는 일 때문에 미움을 받고 욕을 먹고 버림 당할때 오히려 복이 있을 것이다. 그때 "기뻐하고 뛰놀라"고 했다. 큰 복을 받을 기회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와같이 할수 있어야 하겠다. 제자들이 당하는 고난과 핍박은 예수님의 종이 되었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벌받는 것은 상급이 많다. 그런 자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했기 때문에 주님의 영광과 상급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 주의 일 하지 않으면,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이런 고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편안하게 지낼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고난은 없지만 상급도 영광도 없다. 그러므로 이런 고난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믿음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복음을 전하고 제자로서의 삶을 감당해야 하겠다.
하늘에서 상이 크다고 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을 하면서, 복음 전하면서, 말씀 순종하다가 욕먹을때 상을 바라봐야 한다. 상이 클 것을 바라보며 소망을 갖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기뻐하고 뛰놀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다. 이것은 수지 맞는 일이다. 하늘의 영광과 상 받기로 예정된 자만 이런 일을 당하게 된다.
24-26절
네가지 화에 대해서 말씀한다.
첫째,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심령에 가난을 못느끼고 세상 것에 만족하고 부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은혜 없어도 세상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돈이 실제로 많은 부자라도 심령이 가난하면 복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마음만 부자가 되어서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마음이 없으면 화있는 자이다.
야고보서 5:1-3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엄하게 경고하셨다. 부한 자에게 심한 경고를 하셨다. 물질이 많으면 마음으로 부자가 되기 쉽다. 그러나 부자라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진리를 지키며 살면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고 복이 있는 자가 될수 있다. 마음이 부요해서 이만하면 됐다 하면서 기도하지 않고 은혜 사모하지 않으면 큰 일이다.
둘째, 너희 지금 부른자여! 진리에 대해서 배고픔이 없다. 말씀을 주어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받아 먹지 않고 싫어하고 배척한다. 그런 사람은 화가 있다. 그런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하고 복도 받지 못한다.
셋째, 너희 지금 웃는 자여! 애통하는 자의 반대 내용으로 육신적 향락과 세상 것으로 즐거워하며 웃는 자들이다. 이런 자에게는 화가 있다. 영적 생활을 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 사모함이 없고 믿음을 쓰지 않고 신령한 것을 바라보는 자세도 갖디 못한다. 세상에 빠져 쾌락을 쫓아 방탕생활을 하면 마지막 심판 때에 애통하며 울때가 온다. 크게 탄식하며 괴로워할때가 올 것이다.
넷째,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살전 3:2 "진리는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고 했다. 우리가 참으로 믿음으로 살면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을수 없다. 믿는 사람은 좋아하겠지만 불신자들에게는 배척을 당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받는 사람이 있는데, 거짓 선지자이다. 좋은 말만 하니 누구도 싫어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화 있는 길이다. 그 길을 가려고 하면 안된다. 진리를 양보하고 불의와 타협하과 죄징도 괜찮다고 하면 복받을 길이 아니다. 미움 받고 욕먹을 각오를 하고 믿음을 바로 지키고 복음을 바로 전하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
오늘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이 다가 아니다. 지금 핍박 받는 사람, 지금 환난 받는 사람, 욕먹고 미움 받고 배척 받는 사람이 천국에서 상을 받을 것이다. 지금 웃고 지금 재미있고 지금 좋다고 하지만 나중에 울면서 탄식할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지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다. 성도는 앞날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다.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일은 금방 지나간다.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하늘나이다. 하늘나라에서 영광 누리고 상 받는 자가 되는 것이 진정한 복있는 자이고 진정한 승리자이다.
지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 힘들고 고난을 받을지언정 다음에, 내일 가서 웃을수 있는 사람, 나중에 큰 복을 받을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말씀을 주셨다. 우리는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지금은 씨를 뿌리고 희생하고 주를 위해서 핍박받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면 나중에 복을 거두는 것이다. 나중에 신령한 것을 받을 것을 사모하며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겠다.
소망을 붙들고 바라봐야 한다. 소망을 바라보지 못하고 지금 어려운 것만 생각하고 낙심하면 믿음 지키기 어렵다. 소망을 붙들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큰 소망을 가지라! 소망을 가지면 이겨낼수 있다.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고 복받는 길로 걸어가야 하겠다.
12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시기 전날밤의 행적을 알려주고 있다.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에 가시고 밤새도록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밝자 열두 제자를 택하셨다. 주님께서 제자를 택하시기 전에 밤새 기도하셨다. 자기 마음에 드는 자를 제자로 삼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자를 뽑기 위해서 기도하신 것이다.
주님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예수님도 중요한 일을 앞두고 밤새 기도하셨는데 우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어떤 일도 내 힘과 경험으로 할수 없다. 내가 할수 있다는 것은 교만이다. 내 힘으로 할수 없다는 것이 겸손이고, 겸손한 자가 하나님께 기도할수 있다.
만약 일이 많고 너무 바쁘다면 더 기도에 힘써야 한다. 바뻐서 기도할 시간을 빼앗긴다면 큰 실수를 할수 밖에 없다.
13절
기도하고 나서 다음날 열두 제자를 불러서 사도라 칭하셨다. "사도"는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인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에 의해서 직접 보냄을 받은 자가 사도이다. 사도들에게는 신약성경을 기록할 은혜를 주셨다. 복음을 전해서 신약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교회의 기초를 놓는 역할을 하게 하셨다. 사도들은 아주 중요한 일을 감당했다.
에베소서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는 사도와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말씀을 가리킨다. 성경말씀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사도라 칭함을 받았다. 이들은 중요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직접 불러서 사도로 세우셨다(후에 가룟 유다 대신에 바울이 사도로 세워졌다).
지금은 사도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도 자기를 사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도가 뭔지도 모르는 잘못된 사람이다. 요즘 이단들 가운데 신사도운동이라는 신비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사도는 성령충만한 자들로 성경을 기록하고 복음을 전해서 신약교회를 세우는 역할을 했다. 지금은 이런 사도가 없다. 그런데도 자기를 사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볼것도 없이 잘못된 사람들이다.
14-16절
열두 사도들의 이름을 기록했다. 참 복된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열둘 밖에 안되는데 그 안에 포함되었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우리는 사도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움을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감사함과 기쁨으로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겠다.
가룟유다는 제자로 부름을 받았지만 불택자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자이다.
요한복음 6: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요 6:64, 개역개정)
요한복음 6:70-7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어떤 사람들은 가룟유다가 예수님 잘 믿다가 타락한줄 안다. 그렇지 않다. 그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마귀의 종이었다.
그러면 왜 가룟유다를 제자로 삼으셨나? 실수로 하신 것이 아니다. 다 아시면서 제자로 삼으셨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첫째, 후대에 교회의 교역자와 성도 중에도 불택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불택자, 믿지 않는 자도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이용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물론 중요한 일에는 택한 일꾼에게 사명을 주셔서 쓰시지만 때로는 불택자도 사용하신다. 가룟유다가 그런 대표적인 사람이다.
셋째,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요한복음 13: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한말씀도 거짓이 없고 헛된 것이 없다.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가 주님을 배반하고 팔 것을 예언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가룟유다가 배반했다. 가룟유다가 은 30에 주님을 팔아 넘긴다.
17-19절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셔서 평지에 서셨다. 그러자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말씀도 듣고 병고침도 받기 위해서이다.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은 자들도 고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온 무리가 예수님을 만지려고 힘썼다. 만지면 능력이 나와서 고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래서 만질때 예수님에게서 능력이 나왔다.무슨 병에 걸렸던지 나았다.
마가복음 5장에 12년 동안 혈루증 앓던 여인이 여러 의원을 찾아가고 여러 약을 썼지만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다 허비했는데,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가 병에 나았다. 이런 놀라운 역사와 능력이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예수님을 직접 만질수는 없지만 접촉할수 있다. 그 방법이 예배와 기도이다. 예배는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두 세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중에 함께 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기도시간이 주님과 만나는 시간이요 교제하는 시간이다. 기도할때 능력이 우리에게 임한다. 영적으로 주님과 교제하고 만나는 방법이 우리에게 있다. "예배와 기도"
예배 드리다가 은혜 받음으로 기도하다가 능력받음으로 고침 받고 새사람이 되는 일들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 주님 만나기를 힘써야 한다. 모든 능력이 주님에게서 나온다. 사람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다. 돈, 세상 권세, 지식도 능력이 아니다. 참된 능력은 오직 주님에게서 나온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시고 죄를 사하시고 새생명을 주시는 능력은 주님에게만 있다. 세상 능력이 커보일 때가 있지만 주님에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나아가 주님 만나는 일에 힘써야 하겠다.
20-23절
주님께서 네가지 복을 말씀하셨다. 마태복음에는 팔복이 나와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네가지 복을 기록했다. 이것은 세상의 복과 다르다. 신령한 복을 가리킨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마태복음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했다. 심령이 살아서 배고픔을 느끼는 사람이다. 심령이 죽은 자는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다. 배고픔을 느끼는 자는 하나님을 사모하고 신령한 것에 갈급한 마음을 가진다. 반대로 배고픔을 전혀 못느끼고 영적인 갈급함이 없으면 심령이 가난한 것이 아니다. 심령이 부요하고 배부른 자이다. 이런 자에게는 복이 없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서 배고픔을 느껴야 되고, 배고픔 때문에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늘 사모하고 갈망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심령에 하늘나라가 임하게 해주신다. 이런 복을 받으면 부러울 것이 없다. 주님께서 이런 은혜를 받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마태복음에서는 의에 주린 자라고 했다. 의에 굶주린 자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게 되어 있다. 이런 자를 하나님께서 배부르게 하신다. 영적 배고픔에 대해서 채워주시고 하나님으로 만족하게 해주신다. 우리에게 의에 굶주린 심령이 있어야 한다. 의를 사모하고 의를 얻기를 힘쓰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마태복음에서는 애통하는 자라고 했다. 세상은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는데 예수님을 우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다. 죄때문에 회개하면서 우는 자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애쓰며 애통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데 잘 되지 않으니 울면서 힘쓰는 자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역사를 위해서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고 늘 힘쓰는 자이다. 그러면 너희가 웃을 것이라고 헀다. 위로를 받고 기쁨을 얻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욕을 듣고 악하다고 버림을 당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으로 인하여"이다. 자기 때문에 욕먹는 것은 해당되지 않는다. 자기가 잘못해서 욕먹으면서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는다고 한다. 내 잘못이 아닌데, 순전히 예수님으로 인해서, 예수님 믿는 일 때문에 미움을 받고 욕을 먹고 버림 당할때 오히려 복이 있을 것이다. 그때 "기뻐하고 뛰놀라"고 했다. 큰 복을 받을 기회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와같이 할수 있어야 하겠다. 제자들이 당하는 고난과 핍박은 예수님의 종이 되었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벌받는 것은 상급이 많다. 그런 자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했기 때문에 주님의 영광과 상급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 주의 일 하지 않으면,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이런 고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편안하게 지낼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고난은 없지만 상급도 영광도 없다. 그러므로 이런 고난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믿음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복음을 전하고 제자로서의 삶을 감당해야 하겠다.
하늘에서 상이 크다고 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을 하면서, 복음 전하면서, 말씀 순종하다가 욕먹을때 상을 바라봐야 한다. 상이 클 것을 바라보며 소망을 갖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기뻐하고 뛰놀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다. 이것은 수지 맞는 일이다. 하늘의 영광과 상 받기로 예정된 자만 이런 일을 당하게 된다.
24-26절
네가지 화에 대해서 말씀한다.
첫째,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심령에 가난을 못느끼고 세상 것에 만족하고 부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은혜 없어도 세상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돈이 실제로 많은 부자라도 심령이 가난하면 복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마음만 부자가 되어서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마음이 없으면 화있는 자이다.
야고보서 5:1-3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엄하게 경고하셨다. 부한 자에게 심한 경고를 하셨다. 물질이 많으면 마음으로 부자가 되기 쉽다. 그러나 부자라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진리를 지키며 살면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고 복이 있는 자가 될수 있다. 마음이 부요해서 이만하면 됐다 하면서 기도하지 않고 은혜 사모하지 않으면 큰 일이다.
둘째, 너희 지금 부른자여! 진리에 대해서 배고픔이 없다. 말씀을 주어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받아 먹지 않고 싫어하고 배척한다. 그런 사람은 화가 있다. 그런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하고 복도 받지 못한다.
셋째, 너희 지금 웃는 자여! 애통하는 자의 반대 내용으로 육신적 향락과 세상 것으로 즐거워하며 웃는 자들이다. 이런 자에게는 화가 있다. 영적 생활을 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 사모함이 없고 믿음을 쓰지 않고 신령한 것을 바라보는 자세도 갖디 못한다. 세상에 빠져 쾌락을 쫓아 방탕생활을 하면 마지막 심판 때에 애통하며 울때가 온다. 크게 탄식하며 괴로워할때가 올 것이다.
넷째,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살전 3:2 "진리는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고 했다. 우리가 참으로 믿음으로 살면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을수 없다. 믿는 사람은 좋아하겠지만 불신자들에게는 배척을 당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받는 사람이 있는데, 거짓 선지자이다. 좋은 말만 하니 누구도 싫어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화 있는 길이다. 그 길을 가려고 하면 안된다. 진리를 양보하고 불의와 타협하과 죄징도 괜찮다고 하면 복받을 길이 아니다. 미움 받고 욕먹을 각오를 하고 믿음을 바로 지키고 복음을 바로 전하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
오늘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이 다가 아니다. 지금 핍박 받는 사람, 지금 환난 받는 사람, 욕먹고 미움 받고 배척 받는 사람이 천국에서 상을 받을 것이다. 지금 웃고 지금 재미있고 지금 좋다고 하지만 나중에 울면서 탄식할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지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다. 성도는 앞날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다.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일은 금방 지나간다.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하늘나이다. 하늘나라에서 영광 누리고 상 받는 자가 되는 것이 진정한 복있는 자이고 진정한 승리자이다.
지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 힘들고 고난을 받을지언정 다음에, 내일 가서 웃을수 있는 사람, 나중에 큰 복을 받을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말씀을 주셨다. 우리는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지금은 씨를 뿌리고 희생하고 주를 위해서 핍박받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면 나중에 복을 거두는 것이다. 나중에 신령한 것을 받을 것을 사모하며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겠다.
소망을 붙들고 바라봐야 한다. 소망을 바라보지 못하고 지금 어려운 것만 생각하고 낙심하면 믿음 지키기 어렵다. 소망을 붙들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큰 소망을 가지라! 소망을 가지면 이겨낼수 있다.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고 복받는 길로 걸어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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