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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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9 주일 오전예배 설교 ( 누가복음 19:35-44 / 십자가를 향하여 들어가시는 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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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6-03-29 17:08 조회33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Kq81bYS6dhs

 

(설교요약)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겉옷을 길에 펴고, 예수님을 향해 찬송하며, 왕으로 맞이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영광스럽고 기쁜 장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단순한 환영과 축제의 장면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버지께서 맡기신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마침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려주일은 단지 환호의 날이 아니라, 십자가를 향하여 들어가시는 왕을 바라보는 날입니다.


1. 뜻을 정하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왕

본문 28절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 가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올라가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자신이 고난받고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피하지 않으시고, 물러서지 않으시고, 앞장서서 그 길로 가셨습니다. 또한 나귀 새끼를 준비시키시는 장면에서도 주님의 주권과 의도적인 순종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며, 억지로 끌려가신 비극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원하여 순종의 길로 가신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7문은 그리스도께서 온 생애 동안, 특히 마지막에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몸과 영혼에 친히 담당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화목제물이 되시기 위한 걸음이며, 우리의 정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한 대속의 걸음입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 피하지 않으셨고, 나를 위해 그 길을 끝까지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주간은 주님의 순종 앞에서 우리의 불순종을 회개하며, 주님의 뜻 앞에 다시 서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2. 세상이 기대한 방식이 아니라 겸손으로 오시는 왕

예수님은 군마나 병거가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셨습니다. 이것은 스가랴 9장 9절의 성취이며, 예수님께서 겸손의 왕, 평화의 왕으로 오셨음을 보여 줍니다. 세상의 왕은 힘으로 다스리고, 권세로 사람들을 굴복시키지만,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 오셨고, 죄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시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의 왕, 곧 정치적 메시아로 기대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로마의 압제를 무너뜨리고 현실 문제를 즉시 해결해 줄 강한 왕을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왕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외적인 어려움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 곧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가 누려야 할 참된 평화는 세상적 안정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는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내 욕망을 이루어 주는 왕으로 찾지 말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참된 왕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종려주일은 내 기대를 내려놓고, 겸손으로 오시는 왕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날입니다.


3.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도 우시며, 십자가로 구원을 이루시는 왕

사람들이 찬송하고 기뻐하는 가운데,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이 평화에 관한 일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은혜의 때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예수님을 환영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했고, 결국 그들은 이 왕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영적 무지와 완악함을 보시고 눈물 흘리셨습니다. 이 눈물은 죄인을 향한 주님의 거룩한 사랑의 눈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눈물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십자가로 나아가십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8문과 39문은, 예수님께서 세상 재판장에게 정죄받으심으로 우리에게 임할 하나님의 엄한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에게 임한 저주를 대신 담당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지 감동적인 희생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며 형벌 담당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정죄받으시고, 우리 대신 저주받으시고, 우리 대신 심판을 담당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십자가를 향한 구원의 행진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군중의 환호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종려가지만 흔들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가시는 왕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십자가가 바로 나를 위한 십자가임을 믿고, 회개와 감사와 순종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번 고난주간이 단순한 절기가 아니라, 십자가를 향하여 들어가시는 왕을 더 깊이 알고, 더 깊이 사랑하고, 더 진실하게 따르는 은혜의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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