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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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5 주일 오전예배 설교 (이사야 38:9-20 / 연장된 삶, 충성된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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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6-03-15 17:06 조회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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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UyrvBNEakQI 

 

(설교요약)  

 

오늘 본문은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후 기록한 감사의 글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병상 일기가 아니라,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신앙고백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서 선하게 살려고 했던 왕이었지만, 그런 그에게도 질병과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믿음이 좋은 사람도 병들 수 있고, 경건한 사람도 고난을 통과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형편만 보고 그 믿음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 자체보다 그 고난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실 히스기야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본래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던 자들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를 살려 주셨고 오늘도 붙들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사는 삶은 당연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장된 삶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냥 살려 두신 것이 아니라, 충성되이 여겨 주시고 직분과 사명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연장된 삶은 헛되이 살아서는 안 되고, 예배와 감사와 충성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1. 죽음의 자리에서 드러나는 신앙

히스기야는 “나의 중년에 스올의 문에 들어가고 나의 여생을 빼앗기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그는 아직 한창 일할 나이에 죽음을 직감했고, 자기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 아쉬워한 것은 단지 생명을 더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그가 평소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 예배의 기쁨,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는 삶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를 보여 줍니다. 또 세상의 거민을 다시 보지 못한다고 한 것을 보면, 사람들과의 관계도 귀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도 귀하게 여깁니다.

또한 히스기야는 자신의 고통을 장막이 걷히고 실이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 사자가 뼈를 꺾는 것 같은 고통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고통 속에서 그가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점입니다. 그는 제비처럼, 학처럼, 비둘기처럼 울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은 점잖고 다듬어진 기도가 아니라, 신음과 눈물이 섞인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성도는 고난 속에서 원망과 불평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죽음의 자리, 고난의 자리는 오히려 예배와 기도와 하나님과의 교통이 얼마나 귀한지를 깨닫게 하는 자리입니다.


2. 고통 속에서 붙드는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

히스기야는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기 인생에 일어난 일을 우연으로 보지 않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병드는 것도, 낫는 것도, 죽고 사는 것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믿음입니다. 물론 이것은 쉬운 고백이 아닙니다. 사람은 고난 중에 원망하기 쉽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형편이 좋을 때만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형편이 무너질 때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고 해서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은 손을 놓는 사람이 아니라 더욱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고 고백합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나고 나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무너뜨리려 하신 것이 아니라 더 깊은 평안으로 이끄시기 위해 그 고통을 허락하셨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는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고난의 밑바닥에는 버리심이 아니라 사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영혼을 사랑하셨고, 멸망에서 건지셨으며, 죄를 처리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 멸망의 구덩이로 갈 자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3. 연장된 삶, 예배와 감사와 충성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려 주신 목적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단지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 있지 않고, 남은 삶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라고 말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단순히 숨 쉬는 시간이 아니라 감사의 기회이며, 찬양의 기회이며, 예배의 기회입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아버지가 자녀에게 알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혼자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야 합니다.

마침내 히스기야는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연장된 삶의 방향입니다. 성도는 단지 생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전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충성되이 여겨 맡겨 주신 직분과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살려 주셨고, 주님이 구원해 주셨고, 주님이 맡겨 주셨고, 주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무익한 종의 마음입니다.


결론

결국 우리는 모두 히스기야처럼 죽을 자리에서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아 연장된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삶을 내 영광을 위해 살지 말고, 예배와 감사와 충성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내가 하였다”가 아니라 “주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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