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1 수요예배 설교 (마태복음 5:21-48 / 율법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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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SM4gfwyUiog
(설교요약)
본문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가운데 하신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어떤 의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보통 율법을 생각할 때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 먼저 떠올립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괜찮고, 간음하지 않았으면 괜찮고,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을 단지 외적인 행위의 문제로만 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과 감정, 시선과 말, 그리고 관계까지 보십니다. 그래서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며, 율법의 참뜻을 밝히십니다. 율법은 손으로 짓는 죄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품는 죄까지 다루며, 사람들 앞에서 멀쩡해 보이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중심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 앞에서는 누구도 자신 있게 “나는 괜찮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목적은 우리를 절망시키는 데 있지 않고, 얕은 자기의를 깨뜨리고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데 있습니다.
1. 살인에 대한 규정 (21-26)
예수님은 먼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의 참뜻을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이 계명을 지켰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형제를 향한 분노와 미움, 경멸과 모욕도 하나님 앞에서는 살인의 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라가”나 “미련한 놈”이라는 말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이미 상대를 업신여기고 인격을 무너뜨리는 죄입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도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살인은 손으로만 짓는 죄가 아니라 마음으로도 짓는 죄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예배보다 먼저 화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먼저 가서 화목하고 그 후에 예물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예배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참된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형제와의 관계 속에서도 드러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삶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이 아닙니다. 또한 화해는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마음이 굳어지기 전에, 관계가 완전히 깨어지기 전에 급히 사화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를 향한 미움과 분노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먼저 가서 화목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2. 간음에 대한 규정 (27-32)
예수님은 이어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의 참뜻도 밝히십니다. 사람들은 실제 간음의 행동만 하지 않으면 자신은 깨끗하다고 여겼지만, 예수님은 음욕을 품고 이성을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행동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마음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음욕은 단순히 눈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죄로 마음을 채우려는 영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쉽게 마음을 더럽히는 것들에 노출되어 있고, 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이 이미 더러워졌다면 그것이 죄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른눈과 오른손이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버리고 찍어 내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실제로 몸을 훼손하라는 뜻이 아니라, 죄를 그만큼 심각하게 여기고 죄를 짓게 만드는 원인을 단호히 끊어내라는 뜻입니다. 눈도 중요하고 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혼과 거룩과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혼의 문제도 말씀하시며, 결혼이 사람의 감정과 편의에 따라 쉽게 끊어 버릴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맺은 거룩한 언약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단지 몸의 순결만이 아니라 마음의 정결, 죄에 대한 단호함, 그리고 언약의 신실함을 요구합니다.
3. 맹세에 대한 규정 (33-37)
예수님은 우리의 말에 대해서도 가르치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만 직접 사용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여기며 하늘과 땅과 예루살렘, 자기 머리를 두고 쉽게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도 땅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며, 사람은 자기 머리카락 하나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경솔하고 위선적인 맹세는 자기 한계를 모르는 교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고 하십니다. 제자의 말은 맹세가 필요 없을 만큼 진실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다고 하고,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고 하며,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해야 합니다. 사람은 손해를 피하려고, 관계의 불편함을 피하려고 자꾸 말을 흐리고 꾸미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은 사람 앞에서도 정직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에서도 거룩해야 하며, 진실하고 책임감 있는 언어생활로 신뢰를 드러내야 합니다.
4. 율법 정신의 완성: 원수 사랑 (38-48)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율법 정신의 완성이 원수 사랑에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말씀은 원래 개인 복수를 허락하는 법이 아니라 공정한 재판을 위한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보복의 근거처럼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며,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 대고,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동행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정의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라, 개인적인 보복심과 자존심에 사로잡힌 맞대응을 금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존심과 권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평안과 영혼의 거룩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셨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못 박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원수 사랑은 억지 도덕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아는 자에게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해를 비추시고,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비를 내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편협한 사랑을 버리고, 차별하지 않는 사랑, 원수에게까지 미치는 사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이 온전함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완전무결함이 아니라, 날마다 분노 대신 사랑을, 보복 대신 용서를 택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성화의 길입니다.
결론
결국 율법의 완성은 외식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형식이 아니라 중심입니다. 사람 앞에서 괜찮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힘으로 의로워지려 하지 말고,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 주님의 은혜 안에서 미움 대신 사랑으로, 더러움 대신 거룩으로, 거짓 대신 진실로, 보복 대신 자비로 살아가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을 닮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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