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9 수요저녁예배 설교 (이사야 22:1-14 /예루살렘에 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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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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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o1Wj219qwN0?si=Sc10KSg3Vl0Up7sp
(설교 요약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루살렘에 관한 경고”입니다. 이사야 1장에서 하나님은 이미 예루살렘을 향해 “슬프다 범죄한 나라여”라고 탄식하셨습니다. 겉으로는 제사를 드리지만 마음은 멀고, 공의는 무시되며, 고아와 과부가 외면당하는 타락한 모습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이사야 22장에서는 다시 한 번,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무거운 경고가 주어집니다. 이사야 13장부터 21장까지 이어지던 열방 심판 선언 중, 갑자기 예루살렘을 향해 경고가 선포된다는 점에서 본문은 특별한 무게를 가집니다. 하나님은 이방이라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악이 있기에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는 유다라도 죄를 방치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과거 유다 백성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교회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회개의 감동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1. 예루살렘이 침략을 당함 (1-7절)
본문은 “환상의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은 실제로 산 위에 지어진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골짜기”라고 부르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가 가장 풍성히 임하는 예루살렘이, 말씀을 버리고 죄악 가운데 있으므로 영적으로 어둡고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상태라는 하나님의 책망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매일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의 산 위에 서 있는지, 아니면 말씀은 풍성하나 삶과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골짜기에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 백성은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지붕에 올라가 적들의 동태만 살피며 불안해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러 올라간 것이 아니라, 문제만 바라보며 하나님을 잊은 채 현실에 짓눌린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소란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라는 표현은,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며, 회개나 묵상 없이 감정에 휘둘리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결국 예루살렘은 비참한 멸망을 맞이합니다. 칼에 죽지 않고도 무기력하게 포로가 되고, 지도자들은 활을 버리고 도망하다 결박당하는 신세가 됩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이사야 선지자는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나는 슬피 통곡하겠다”고 애통합니다. 이 통곡은 이사야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이사야를 통해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로서 눈물로 경고하십니다. 말씀을 외면하고 회개치 않으면, 심판은 반드시 임하게 됩니다.
2. 유다 백성들이 방비를 함 (8-11절)
8절에서 “유다에게 덮였던 것이 벗겨졌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의 덮개, 하나님의 임재가 거두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거두어지자, 백성들은 수풀 곳간(왕궁의 무기고)에 있는 병기를 바라보며 자기 힘으로 방비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살아보려는 영적 자만과 교만의 결정체입니다. 기도하거나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보다, 세상의 방법과 인간적인 수단을 의지하려 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수로를 정비하고, 가옥을 헐어 성벽을 보수하고, 전쟁 대비를 철저히 합니다.
하지만 11절 끝에 하나님은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너희가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 없이 쌓은 노력과 수고는 결국 헛것입니다. 거미줄처럼, 한 번 휘저으면 무너지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잠언 3장 5-8절의,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대로 자기 생각과 계산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진짜 형통의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유다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음 (12-14절)
하나님은 징계 가운데서도 백성들이 회개하길 원하셨습니다.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신 것은 진심 어린 회개를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오히려 쾌락에 빠져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나팔이 울려 퍼지고 있는데도, 그들은 현실 도피와 자기만족 속에 하나님을 외면합니다.
오늘 우리도 마귀의 유혹 앞에서 “지금은 아니야, 나중에 하지”라는 말에 속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지금 말씀하십니다. “오늘 회개하라, 오늘 복음을 믿으라.”
예루살렘은 끝내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받지 못하리라.” 이는 죽을 때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가 없다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언제든지 용서해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의 “용서하다”는 히브리어 카파르는 ‘덮다, 속죄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기준을 충족하는 속죄 없이는 죄를 덮지 않으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 죄를 덮어주는 참된 카파르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덮임을 받은 우리는 이제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론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에 관한 경고”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단지 옛날 유다를 향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와 우리 자신에게 주시는 직접적인 경고의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산 위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현실에 짓눌려 사망의 골짜기에서 방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 우리를 부르십니다. 회개하라, 돌이키라, 은혜의 날을 허락하시며 다시 거룩함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귀는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며 유혹하지만, 하나님은 “오늘 회개하라, 오늘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말씀의 산 위에서 은혜의 빛 가운데 다시 서는 복된 예루살렘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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