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8 수요저녁예배 설교(롬 16:1-16 / 교회의 일꾼을 영접하라)(김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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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8 수요저녁예배 로마서 16장 1-16절 교회의 일꾼을 영접하라김희신 목사.mp3 (75.9M) 1회 다운로드 DATE : 2024-08-28 21: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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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6장 1-16절 교회의 일꾼을 영접하라(김희신 목사)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을 받고, 믿음을 선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중생하여 성령께서 인쳐주신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된 자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살게 하신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배와 말씀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모든 성도는 교회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본문에는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간 충성된 일꾼들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들은 바울이 복음을 위해 일하는 가운데 여러 모양으로 도움을 주고, 함께 일한 일꾼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로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이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로마 교회가 함께 문안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3절부터 시작되는 인사의 글에는 총 26명의 개인이 등장하고, 2개의 가족들과 3개의 가정 교회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들 중 몇 사람을 제외한 대다수가 이 본문에만 기록된 사람들입니다. 만약 바울이 여기에 이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존재 자체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이들의 모든 수고를 다 보고 계셨습니다. 이들의 수고와 헌신을 귀하게 보시고 성령께서 바울에게 감동하시므로 이들의 이름을 성경에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로 하여금 여기 기록된 일꾼들이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고 헌신한 모습을 본받게 하고, 우리도 이들처럼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교회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 교회만 보더라도 각기 다른 형편과 사정과 상황에 놓인 많은 성도님들이 모여서 복용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입니다. 그때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이 심했습니다. 귀족이 있는가 하면 노예가 있었습니다. 병든 자와 가난한 자는 무시와 멸시를 당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사회는 계급화되어 있었고 개인적으로 출신 성분을 극복할 수 없었던 때입니다. 여인과 어린아이는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때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이 문안 인사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여자가 여러명이 있고, 노예 출신으로 여겨지는 사람들도 여러 명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이것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이 될 수도 있겠지만, 2천년 전 로마시대를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교회 안에서는 차별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자녀들이고, 예수님을 머리로 한 한 몸된 지체들로서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 있습니다.교회 안에 다양한 직분이 존재하고, 각각 다른 여러 은사들이 있지만 직분과 은사가 누군가를 높이고, 누군가는 낮게 여기는 차별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교회 안에 직분을 주시고,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서로 협력하고 섬기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기에 앞서 한 사람을 추천하는 말을 합니다.
1-2절
바울이 뵈뵈라는 사람을 로마교회에 추천합니다. 이 사람을 가리켜 "자매"라고 한 것을 보면
여자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뵈뵈를 자매라고 부른 것은 단순히 그가 여자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자매라는 호칭 안에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한 형제, 자매라는 인식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는 서로를 형제로, 자매로 대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사랑으로 대하고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아름다운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겐그레아는 고린도 지역에 있는 항구도시로 당시에 매우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바울이 이 지역에 복음을 전해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고, 뵈뵈도 바울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 같습니다.
이 뵈뵈를 가리켜 "교회의 일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뵈뵈는 교회의 충성된 일꾼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뵈뵈를 소개하면서 공식적으로 일꾼이라고 부른 것을 볼 때 뵈뵈는 겐그리아 교회의 집사 직분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꾼에 해당되는 헬라어 원어가 "디아코노스"인데
초대 교회 집사들을 세울 때 같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뵈뵈는 정중한 자였습니다. 깨끗한 양심과 바른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정숙하고, 모함하지 않고,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였습니다(딤전 3장).
이렇게 바울이 뵈뵈를 소개하면서 1절 끝에 "너희에게 추천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추천한다는 것은 바울이 뵈뵈에게 로마서를 로마교회에 전달하는 일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로마 교인들은 뵈뵈 집사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바울이 그녀를 보증하면서 소개해준 것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뵈뵈 집사님을 잘 맞이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뵈뵈는 겐그리아 교회의 여 집사님이고, 이방인이었습니다. 로마교회에 처음 방문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뵈뵈 집사님을 "주 안에서" 잘 맞이해주고 사랑으로 대해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특별히 염려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한 것 같지는 않고, 성도 간에는 이러한 마음과 자세로 서로를 대해야 된다는 점을 강조해서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2절 끝에 뵈뵈에 대한 설명이 또 하나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고 했습니다. 뵈뵈 집사님이 사도 바울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보호자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뵈뵈 집사님이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것 같습니다. 그녀의 직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겐그레아라는 무역 요충지에서 많은 돈을 벌었고, 뵈뵈는 그 돈을 교회와 하나님의 일꾼들을 후원하는 일에 많이 사용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의 복을 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도 뵈뵈 집사님처럼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뵈뵈 집사님은 교회의 일꾼이었고, 주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된 자였고, 하나님의 일꾼들과 교회를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헌신하고 후원한 성도님이셨습니다. 뵈뵈 집사님은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좋은 본보기가 되는 아름다운 성도님이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뵈뵈 집사님과 같이 충성하고 헌신하여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고 주님께 칭찬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4절
바울은 문안할 대상 가운데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가장 먼저 언급합니다. 이들은 성경에 기록된 부부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부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들 부부는 성경에 여러 차례 언급이 되었는데 사도행전 18장에 가장 처음 등장합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브리스가의 이름을 브리스길라라고 기록했는데, 브리스가는 이름을 간단히 부른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 복음을 전하러 갔을 때 본도 출신의 유대인 아굴라와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를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로마에서 살고 있었는데, 글라우디오 황제가 모든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는 명령을 내렸을 때 고린도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들은 바울을 만나기 전에 이미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로 여겨집니다. 그들은 고린도에서 텐트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고린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만나게 되고, 그를 영접하여 함께 생활하며, 텐트 만드는 일도 함께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을 통해 복음을 더 깊이 알게 되고, 그들의 믿음도 더욱 자라나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갈 때에도 이들 부부가 함께 갔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점 가운데 하나는 당시에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명한 성경학자인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그 내용을 듣고 아굴라가 전하는 말이 성경에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이 빠져있는 것을 보고 아굴라를 초청하여 그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사도바울과 동고동락하면서 바울에게 복음의 진수를 잘 배웠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열심을 냈던 충성된 일꾼들이었습니다.
이런 이들을 가리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사도바울에게 꼭 필요한 동역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사도바울의 선교 사역에 있어서 이들 부부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하나님의 일인데 그 사람들 없다고 어떻게 되겠어?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겠지! 라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일하실 때 언제나 충성된 일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실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보다는 신실한 성도들을 사용하시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우리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동역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목사님이 혼자 목회해서 이끌어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당회 장로님들이 교회의 일을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서 서로 협력하고 도와주고 자기가 맡은 역할을 잘 감당할 때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같은 동역자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다 하겠지 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내가 이 교회에 소속이 되어서 복용교회의 성도가 된 것은 내가 주님의 몸된 교회에 꼭 필요한 지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용교회라는 주님의 몸에 접붙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개 목사님, 아무개 장로님, 아무개 권사님, 아무개 집사님만 동역자가 아니라, 복용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는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동역자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충성을 다했는데, 특별히 바울을 위해 생명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생명의 위협을 당한 일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 부부가 언제 자기들의 목을 내놓을 정도로 바울을 도와주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들의 마음에 바울이 복음 전하는 일을 돕는 일을 위해서는 자기들의 생명도 아끼지 않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 가운데 교회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내 생명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는 분이 계십니까? 누가 이런 각오를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내 육신의 생명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가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칭의와 사죄와 새생명의 은총을 받은 자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때 자기 생명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과, 스데반과 초대 교회 많은 성도들을 비롯한 역사속에서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진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위대한 믿음의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때나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은 우리가 평안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과거 일제시대 때나, 한국 전쟁 때와 같이, 지금의 이슬람권 나라들과 북한과 같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생명을 내놓아야 되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때를 위해서 지금 믿음준비를 잘 해놓아야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4절 끝에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의 믿음과 헌신이 많은 교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많은 성도들에게 모범이 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5절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가정에서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로마 교회 전체가 다 모인 것은 아니었고, 로마 교회에 소속된 성도들 가운데 일부가 이 가정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 것으로 보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일평생 믿음으로 살았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습니다. 로마에서 믿음을 지키다가 고린도로 떠나왔고, 고린도에서 바울의 복음사역을 도왔고, 바울을 따라 에베소로 이동하였으며, 이 로마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로마교회에서 자신의 집을 예배의 장소로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또 에베소 지역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우리도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5절 중간에 에배네도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에배네도는 바울의 사랑을 받는 성도였습니다. 주 안에서 한 몸된 성도이기에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 지역을 전도하면서 처음으로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니 얼마나 더 기억에 남을까요?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 가운데 첫번째로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라니 바울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서 열매 맺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바울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에배네도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전도 대상자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냥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전도를 해야 합니다.
에배네도를 가리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라고 했는데, 예수님에게 소속된, 예수님의 소유된 열매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나무의 열매를 보고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에배네도를 통해 맺어진 복음의 열매가 그때부터 계속해서 열매 맺어서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복음의 일꾼이 되어서 많은 열매를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6절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언급된 마리아는 성경 다른 곳에 등장하는 마리아와 다른 인물입니다. 오직 여기에만 기록되어 있어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그가 로마 교회를 위해서 많이 수고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수고했다는 것은 원어적으로 매우 피곤하여 지치게 되었다는 의미로, 제자들이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말씀에 동일한 단어가 쓰였습니다. 제자들은 녹초가 될 정도로 수고했지만 헛수고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마의 수고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알아주시고 칭찬하시므로 바울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받고 있습니다. 마리아 입장에서 바울이 로마 교인들에게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고 부탁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아마도 하나님으로 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는 기분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의 수고와 희생에 대한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고 헌신하는 자를 하나님은 절대로 잊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로하시고, 크신 은혜와 복을 내려주십니다.
7절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바울의 친척인데,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질 정도로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 자들이었고, 바울보다 먼저 예수님을 믿은 오래된 성도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바울과 함께 옥에 갇혔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들은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고,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함께 갇혔던" 이라는 단어가 "포로"에서 유래했는데, "전쟁에서 함께 사로 잡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생활, 복음 전도는 마귀와의 영적 전투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믿음생활하는 것, 전도하는 것, 예배와 봉사와 성도간의 교제 나누는 것을 어떻게든 방해하고 실패하게 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는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복음이 이기고 믿음이 이깁니다.
8-12절
여기 등장하는 암블리아, 우르바노, 스다구, 아벨레, 아리스도불로의 권속들, 헤로디온, 드루배나와 두루보사, 버시 등 여러 사람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들인지, 직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수가 없습니다. 이들을 노예나 귀족, 왕족으로 추측을 하기도 하는데, 이들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있어서가 아니고, 이들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 그런 출신인 경우들이 있었기 때문에 추정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 부류의 여러 출신들의 사람들이 로마교회의 성도가 되어서 함께 신앙생활하고 함께 하나님의 일에 동역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들에 대한 바울의 설명들을 보면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나의 사랑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주 안에 있는 자들, 주 안에서 수고한,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한 사랑하는" 의 표현들이 쓰였습니다. 우리 복용교회 성도님들 가운데 주님께서 보실 때 이렇게 부를 수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렇게 불리울 수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성도님들로 가득 차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3절
루포와 그의 어머니가 나옵니다.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라고 소개합니다. 그녀가 어머니처럼 바울을 사랑하고 보살피고 도와줬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들을 설명함에 있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루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랐던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루포의 어머니는 구레네 시몬의 부인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구경꾼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면서 자꾸 쓰러지셨습니다. 밤새 심문 받으시고 고문 당하셔서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버린 주님께서 십자가의 무게를 이겨낼 수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정해진 처형 시간이 지체될 것을 염려한 로마 군인들은 주변에 구경하고 있던 자들 가운데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으로 인해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가 예루살렘 지역에 왔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조차 잘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일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그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의 역사로, 성령 하나님의 중생하심과 인치시는 역사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수혜자이고, 기적의 주인공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의 은혜로 우리는 구원받았고 복용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의 가족이 구원받아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로 인하여 우리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구원받고, 함께 주님께 쓰임받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4-15절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앞에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가정에 모인 교회와 같이 각 가정에 모였던 교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로마 교회는 교회를 위해 집 공간을 내어주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 드리고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았습니다.
16절
로마 교회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고 말합니다. 입맞춤은 당시 로마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인사법이었습니다. 오늘날 악수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보통의 인사 방법이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로마 교회는 여러 부류의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들은 세상에서는 함께 할 수 없고, 인사할 일도 없는 환경이었지만 이들이 주 안에서 한 몸된 교회의 일원이 된 순간부터 세상의 모든 차별들, 신분고하, 빈부귀천의 조건들은 다 사라지고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한 형제 자매요, 주 안에서 한 몸된 지체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서로를 바라볼 때 하나님 안에서 하나라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는 말 앞에 "거룩하게"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성도의 관계는 거룩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과 구별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들입니다. 따라서 성도 간에는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이 쓰는 욕설이나, 농담이나, 저질적인 말을 하면 안됩니다(엡 4:29). 성도의 언어와 행실은 거룩해야 합니다(벧전 1:15-16).
말씀을 마칩니다. 사도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하면서 하나님의 일에 동역한 사랑하는 일꾼들에게 문안인사를 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그의 주변에는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일꾼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서 일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불러 모아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충성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직분대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우리 복용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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