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0818 주일오전예배 설교(마 14:22-33 / 바다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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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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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zKS3WrKpLok?si=f_Uw9rf0rDqThMcB
본문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후 있었던 사건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을 배불리 먹게 하였습니다. 주님의 여러 기적 중 가장 매력적인 기적이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은 혜택을 입는 사람이 제한적입니다. 맹인, 중풍병자, 앉은뱅이, 귀신들린자 등이 고침을 받았지만 혜택은 본인과 가족들입니다. 주변에 있었던 많은 사람, 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였을지언정 직접적인 혜택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기적은 모든 사람을 배불리 먹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주님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요한복음 6:15에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가난한 군중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 자체로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면 먹는 문제가 해결되고, 병에 걸려도 기적을 베풀어 고쳐 주면 되니까 질병에 대한 걱정이 없어질 것입니다. 지혜롭고 능력 있는 예수님이 왕이 되면 나라도 잘 다스리고 백성들이 평안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 옆에 있는 제자들은 어땠을까요? 제자들도 덩달아 어깨가 으슥해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좋은 일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제 비로소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님이 왕이 되면 자기들도 한자리씩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1. 제자들을 재촉하신 주님
22절에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여기 ‘즉시 재촉하사’라는 단어는 주님의 마음을 엿보게 합니다. 주님은 급하게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왕 삼으려는 것은 시험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왕이 되려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왕 삼으려 한 것은 주님께 큰 시험이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가실 길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높은 자리에 앉아서 부귀영화 누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제자들이 건설해야 할 나라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니라 하늘나라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군중들에게 동요되어 헛된 소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이런 제자들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려고 피하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적을 행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려는 것이며, 그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이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섬기려는 마음보다는 기적 자체를 좋아했습니다. 떡 먹고 배부른 것, 병 고침 받은 것을 좋아했습니다.
2. 혼자 기도하신 주님
23절에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제자들을 건너편으로 보내고 무리를 다 흩어 보내신 주님은 홀로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원하는 길로 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했습니다. 사람들을 만족하게 해주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혼자 산으로 가신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기도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압니다. 고난당할 때도 기도해야 하지만 세상에서 성공하고 큰 인기를 얻을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은 성공하여 인기가 많을 때 쉽게 타락합니다.
3. 풍랑을 만난 제자들
24절에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제자들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이미 수 리나 떠나왔기 때문에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거센 바람과 풍랑이 일어날 때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제자들은 대부분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바람과 풍랑을 다스리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날 밤의 풍랑은 그들의 경험이나 기술이나 방법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힘으로는 세상의 바람도 조절할 수 없고, 풍랑 하나도 극복할 수 없는, 지극히 나약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자신들의 무능과 연약을 깨닫고 높아지고 싶은 마음과 허영심과 자존심이 다 깨져 나갔습니다.
4. 바다 위로 걸어오신 주님
25절에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밤 사경은 새벽 3-6시 사이를 가리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시간이 전날 저녁때였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 바다를 건너왔으니까 대충 생각해도 제자들은 밤새도록 풍랑으로 고생했습니다. 산 위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을 아시고 밤중에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깊은 밤에 찾아오셨습니다. 모두가 잠자는 이른 새벽에 찾아오셨습니다. 누구도 도울 수 없는 장소, 바다 한가운데로 찾아오셨습니다. 바다 위를 걸어서 오셨습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것을 믿습니까? 이것은 자연법칙에 어긋납니다. 부력의 법칙에 어긋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이것은 뭘 의미합니까? 이 법칙에서 벗어난 일을 하시는 분이라면 그분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물 위로 걸은 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이것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물에 빠졌다면 그런 예수님을 왜 믿습니까? 예수님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신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분입니다.
26절에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제자들은 놀라며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설마 바다를 걸어서 찾아오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27절에 보면 주님께서 즉시 이르셨습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의 이 한마디에 제자들은 얼마나 안심이 되었을까요? 바람과 파도에 두려워 떨고 있던 제자들, 유령인가 하여 공포에 시달리던 제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을 것입니다. 바람과 풍랑이 아직 그치지 않았지만 더 이상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5. 물 위를 걷는 베드로
28절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여기 ‘만일 주님이시거든’ 이것은 일종의 감탄사입니다. ‘주님이 만일 물 위로 걸어오실 수 있는 그런 주님이라면’ 이런 뜻입니다. 베드로는 자기도 물 위로 오라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주님께서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었습니다.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걸은 것은 예수님께서 “오라” 말씀하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주님의 말씀 없이 시험적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절대로 물에 뛰어들지 마십시오. 주님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사건을 영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걸을 수 없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일어설 수 없는 데 일어서는 것입니다.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용기 있게 일어서는 것이 물 위를 걷는 것입니다. 병에 걸려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는데 감사하며 찬송하는 것은 바다 위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큰 시험이 왔는데 믿음으로 이기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것은 물 위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엄청난 위기에 빠져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여전히 당당하게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물 위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오직 주님의 능력으로 걷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주님만 보고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30절에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물속으로 빠져갑니다.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걸어갔으면 계속해서 걸어갈 수 있었을 텐데.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다가 물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세상에 빠지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문제나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면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길 잘 걷다가 넘어지게 되었으면 즉시 부르짖어야 합니다.
31절에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주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잡아주셨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잡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책망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베드로의 손을 잡아 건지신 주님은 함께 배에 오르자 바람은 그쳤습니다(32절).
33절에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주님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려고 하던 게네사렛 땅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34절).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이 세상에 바람은 언제나 있고 어디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바람을 보지 않고 예수님만 바라보는 사람은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며 살 수 있습니다. 바람 때문에 지치고 피곤해진 분들이 계십니까? 물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주님은 바람도 잔잔케 하시고 풍랑도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 혹 물에 빠지고 세상에 빠진 분이 있습니까?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소리쳐 간구하면 주님께서 찾아와 우리 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주님을 내 인생의 배에 모시면 우리는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주님 모시고 복된 인생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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