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1 주일오전예배 설교(마 9:35-10:4 / 주님의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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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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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KthsMcWdZg4?si=g_1DpEIpxKmyFrfA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하신 일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주님은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셨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일들입니다. 그리고 목자 없는 양 같이 고생하는 무리를 보시면서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군이 적은 것을 보시며 일군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택하셨습니다. 그 제자들을 통해서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계승하고 계속해 나가기를 원하셨습니다.
1. 주님의 사역
35절에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이 세례받습니다. 세례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고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그후 광야로 가서 40일 금식하시고 마귀가 시험하는 3가지 시험을 이깁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4:23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여기에 중요한 동사 3가지가 나옵니다. “가르치시며, 전파하시며, 고치시니” 그 3가지 동사가 9장 35절에 그대로 다시 나옵니다. 주님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셨지만 그 핵심을 모아 정리하면 이 세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다니사” 예수님은 한 곳에만 머물지 않고 모든 도시와 모든 마을을 두루 다니셨습니다. 두루 다닌다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말씀을 전하시고, 유대인을 싫어하고 배척하는 사마리아 땅에 가서도 전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고을이라고 불리는 저 북쪽 갈릴리 지방에 가서도 전도하셨습니다. 마가복음 3:20에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마가복음 6:31에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주님은 쉬지 않고 일하셨고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이 바쁘게 일하셨습니다.
1) “가르치시며” 마가복음 6:34에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가르침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믿는 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가르치셨습니다.
2)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것은 전도한 것입니다. 주님은 참 열심히 전도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38-39에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밝히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요구에 끌려다니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셨습니다.
3)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9장에 나온 것만 보겠습니다. 2절에는 중풍병에 걸려 침상에 누워 있는 사람을 고치셨고, 9절에는 세리 마태를 부르셨고, 20절에는 길을 가다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을 고쳐주셨고, 24절에는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셨고, 27절에는 두 맹인을 고치셨고, 32절에는 귀신들려 말 못 하는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육신의 질병만 고치신 것이 아닙니다.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병든 영혼을 살리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사역을 요약하면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시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이 일은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여 믿지 않는 자들을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또 믿는 자들에게는 성경 말씀을 가르쳐서 믿음이 성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병든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하신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2. 주님의 마음
36절에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우선 생각할 것은 예수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 무리는 다 죄인들입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입니다. 약하고 천한 자들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멸시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강도를 만난 사람을 보고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상처를 싸매고 치료해 주고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주었습니다. 누가복음 10:33에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자비를 베풉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어떤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있었습니다. 그 종은 갚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사정하자 주인은 그 종을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빚을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 동료가 엎드려 사정했으나 허락하지 않고 그 동료를 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그 악한 종을 불러서 한 말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8:33에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주인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일만 달란트를 탕감 해주지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종은 백 데나리온도 탕감 해주지 못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용서의 시작이고 구원의 원동력입니다.
주님은 우리도 이 마음 갖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9:13에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복음을 전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용서하고 사랑을 베풉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못하고 실수해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을 알지 못해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복음을 깨닫지 못해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해서 그런다고 생각하며’ 불쌍히 여깁시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주님이 불쌍히 여긴 이유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기 때문입니다. 참 목자이신 예수님이 와서 그들 가운데 계시는데 깨닫지 못하고 유리하며 방황하며 고생하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목자가 없는 양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죽게 됩니다. 목자 없는 양은 길을 찾지 못하고 꼴을 찾지 못합니다. 목자 없는 양은 닥쳐오는 위험에서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양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목자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눈에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서 방황하는 인생들이 목자 없는 양으로 보였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곡식이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을 보십시오. 추수해야 하는데 일군이 없습니다.
3. 주님의 제자
주님은 열두 제자를 세우셨고 그 제자들을 통해서 이 사역이 계속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1에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주님께서 직접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3년 반 동안 이들과 함께 생활하시며 가르치고 훈련 시켜서 일군으로 세우셨습니다. 1절에는 “열두 제자”라고 했는데, 2절에는 “열두 사도”라고 했습니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주님이 직접 부르시고, 훈련 시켜서, 세상으로 보낸 자들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들이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자들이고 낮고 천한 자들입니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주님의 손에 붙들리니까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음으로 세상을 뒤집어 놓는 위대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기둥이 됩니다. 하늘나라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됩니다. 우리가 열두 제자는 아니지만 우리도 주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소명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대를 걸고 계십니다. 우리를 통해 일하기 원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나가 복음을 전할 때 주님이 함께하시며 권능을 나타내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6:20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친히 역사해 주셨으므로 큰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2-4절에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열두 제자 이름입니다. 영광스러운 이름들이고, 복된 이름들입니다. 사도 시대에 많은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표적의 목적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죽은 영혼이 거듭나게 하고, 강건한 심령으로 믿음 생활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나도 강해지고 다른 사람도 강하게 만들어 능력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이 권능을 주실 때 그것을 사용해서 일해야 자기의 능력이 되고 자기의 인격이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유다는 주님의 제자였지만 제자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팔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출신 성분이 남다른 자였습니다. 배우기도 많이 배우고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남들보다 똑똑하고 좋은 조건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살지 못하고 실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열두 제자 모두에게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 능력을 주님을 위해서 쓰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주님의 사역을 살폈습니다. 가르치며, 전파하며,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살폈습니다. 목자 없는 양같은 무리들을 보시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을 살폈습니다. 그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여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 제자들이 또 나가서 제자를 세우고, 그렇게 계속되다가 오늘 우리를 제자로 세우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일을 계승하기 원하십니다. 말씀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하며,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합시다. 주님이 주신 능력을 사용합시다. 이제는 우리 복용교회가 이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일군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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