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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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6 수요예배 설교(누가복음 19장 1-10절/삭개오의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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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4-06 21:02 조회7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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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WF_iLuB5K3Q


1-2절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지나가셨다. 삭개오를 만나 전도하기 위해서이다. 삭개오의 이름은 "깨끗, 청결하다"라는 뜻이다. 그의 아버지가 아들이 깨끗하고 청결한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이름처럼 살지 못했다. 여리고는 향료의 산지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도시였고 삭개오는 그 도시의 세리장이었다. 따라서 큰 부자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었다. 세리는 로마정부의 위임을 받아 재량껏 많은 세금을 받고 일부만 로마로 보내고 나머지는 착복했다. 그래서 백성들은 세리를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는 사악한 죄인으로 여겼다. 성경에 죄인의 대명사가 세리와 창기이다. 삭개오는 세리장으로서 죄인 중의 죄인이었다.

그는 겉으로는 성공하고 출세한 것 같았지만 그의 마음에는 고민과 번민이 많았다. 누구도 자기를 싫어하고 상종하기 싫어하는 것을 보고 힘들어 했던 것 같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죄인의 집으로 들어가셨다고 수근거릴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고 경멸하는 자였다. 그렇기에 얼마나 소외를 느꼈을까?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우리가 볼때에는 돈많으면 다 잘살고 행복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돈이 많은데 불행한 사람이 더 많다.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데 근심 걱정이 많은 사람이 더 많다. 돈이 많다고 행복하거나 만족스러운 삶을 살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 참된 행복을 느끼고 구원을 받게 된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힘을 쓴다. 주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관심을 갖고 만나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3-4절

주님을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고 마음에 열망을 가졌다. 

3절에서는 "보고자 하되"라고 했고, 4절에서는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라고 했다.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이렇게 사모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갈망하다가 주님을 만났다.

사람이 많고 자기 키가 작아서 보이지 않았지만 나무에라도 올라가서 주님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귀하다.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하겠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 8:17)

"간절히" 이른 아침 새벽에 부르짖으면 더욱 만날 수 있을 것이다(각주).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 29:13)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 7:8) 


예수님 말고 주변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예수님이 주시는 축복, 제도, 의식, 직분 받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예수님 자체에 관심이 없으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주님 만나는 것에 힘을 써야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필요하면 주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야 한다.

주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은 운명이 바뀐다. 죄사함받고 문제를 해결받게 된다. 병든 자가 병을 고침 받고 고민 있는 사람 고민이 해결되고 죄인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선물로 받는다. 


삭개오는 주님이 지나가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절 끝에 "지나가시더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눅 19:28)

주님께서 여리고에 오래 머무르시지 않았다. 여리고를 지나가시는데 이때 못만나면 영영 주님을 만날 기회가 없다. 삭개오는 주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십자가를 지신다는 것은 몰랐겠지만 주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고 하니 이번에 꼭 만나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주님을 만나기 위해 힘을 썼다. 그러다가 결국 구원의 은혜와 복을 받는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님을 만난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면 대부분이 "나중에 믿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지금은 바쁘니 할일을 좀 하고 차차 믿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미루다가 결국 못믿는 사람이 많다.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은혜 받는 것도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지 않겠다고, 믿음 생활 못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부분 기회를 놓친다. 바쁘고 피곤하고 몸이 않좋고..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예배 참석하지 않고 믿는 일에 힘쓰지 못하다가 후회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회 놓치고 난 뒤에 후회를 한다.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 12:16~17)

에서가 배가 고파서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그릇에 팔아버렸다. 배고플 때에는 팥죽을 장자의 명분보다 귀한 것으로 여겼다가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지만 축복을 받지 못했다. 그도 축복을 받고 싶었지만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고 말았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인생에 찾아온 귀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기회는 우리에게도 온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은혜 받을만한 때가 언제라고 했나? 지금이다. 항상 지금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다. 특별한 날, 특별한 곳에 가서 은혜를 요란하게 특별하게 받아야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시간 이 곳에서 은혜를 받아야겠다고 힘써야 한다. 간절히 찾으면 만나주신다고 하셨다. 


삭개오는 장애물과 난관을 극복했다. 그가 예수님을 보고자 했지만 두가지 장애물과 난관이 있었다. 키가 작은 것과 사람이 많은 것이다. 키가 작은 것은 개인적인 문제이다. 키가 컸더라면 뒤에서도 보였을텐데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니까 보이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나? 키가 작아서 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않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다. 주님을 믿고 은혜 받으려고 하면 방해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있다.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그는 세리장이었고 부자요 어른이었다. 이런 사람이 나무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체면, 염치상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극복했다. 주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에 그것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에워싸고 몰려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극복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믿음생활 못하겠다'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예수 안믿으면 아무리 핑계가 많아도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 천가지, 만가지 핑계거리가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하나님께서 용납해주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극복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믿음생활, 기도, 순종하지 못하는가?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삭개오는 키가 작고 사람들이 많았지만 핑계거리로 삼지 않고 극복하고 주님을 보기 위해서 나무 위로 올라갔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님을 찾아가 간청했을 때 예수님이 거절했지만,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고백하며 간청했다. 결국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다.

장애물은 뛰어 넘으라고 있는 것이다.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극복했다.

삭개오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여러번 들어서 이 내용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삭개오가 가졌던 세가지 마음이다.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기회를 잃지 않는 주님을 만나는 믿음, 난관과 장애물을 뛰어넘는 믿음"

이런 마음으로 나무에 올라가 주님께서 지나가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5절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눅 19:5)

주님께서 삭개오가 올라가 있는 나무 밑에 멈추셔서 "삭개오야" 이름을 불러주셨다. 그냥 지나가실 줄 알았는데 걸음을 멈추고 자기를 쳐다보니 얼마나 긴장되고 놀랐을까? 그는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분위기는 삭개오가 잔치를 베풀고 오라고 해도 아무도 가지 않을 상황인데, 주님께서 먼저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주셨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아실까?' 놀랐을 것이다. '내 이름도 아시니 나의 고민과 슬픔도 다 아시겠구나, 나의 과거 뿐 아니라 미래도 아시겠구나'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이름만 부르고 지나가시지 않고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셨다.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 함께 식사하자고 하신 것이다.

지금 주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주님이 내 이름을 불러주시고 내 집에 찾아오신다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삭개오는 이런 은혜를 받는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고 변화를 받는다. 


6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눅 19:6)

삭개오는 이렇게 주님을 영접했다. 얼마나 기뻤을까? 


7절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눅 19:7)

그러나 사람들은 비난하면서 수근거렸다. 삭개오는 이런 것이 아무 상관이 없다. 주님을 모셨기에 기쁘고 감사하고 신이 났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만나면 이런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는 것에 신경쓰지 말아라. 세상사람들이 하는 말에 신경쓰지 말아라. 주님을 만난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주님을 만났느냐? 주님을 내 마음이 모셨는가? 이다.

삭개오는 행복하고 기쁘고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날아갈 것만 같은 기쁨을 누리고 있다. 천국을 맛보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8절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눅 19:8)

삭개오는 예수님 앞에서 스스로 이런 고백을 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습니다!" 주님께서 삭개오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시지 않았다. 죄를 지적하시지 않았고 회개하라고 하시지 않았다. "삭개오야" 이름을 불러주시고 그 집에 유하시겠다고 했는데 삭개오가 스스로 이런 고백을 한다. 삭개오가 욕 먹어가면서 악착같이 모은 재산이다. 죽기살기로 모든 재산인데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했다. 하라고 하시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주님을 만난 후로 삶의 목적이 달라지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달라졌다. 전에는 돈을 위해 살고 돈 버는데 집착했었는데 이제는 주님이 첫째이고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다고 했다. 이것은 율법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회개하고 죄를 자복하고 많은 재산을 내놓으면서 주님만 섬기고 따라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을 한다.

삭개오가 이렇게 하면서 기뻐했다. 아까워하지 않았다. 이런 기쁨을 우리가 알 수 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을 알았으면 좋겠다. 

마리아는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주님께 부어드리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기쁘고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정말 주님을 만나면 세상 것은 중요하지 않다. 바울도 주님을 만나기 전에 귀하게 여겼던 모든 것이 주님을 만나 후로 다 배설물과 같다고 했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난 후로 기쁘고 즐겁고 재산을 절반을 나누어도 마음이 행복했다.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정말 주님을 만났으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달라져야 한다. 삭개오는 그런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눅 19:9)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을 삭개오도 가졌다. 주님께서 삭개오의 믿음을 인정해주셨다. 그가 참 믿음을 가졌던 것을 인정해주신 것이다. 율법의 해박한 지식을 가졌던 바리새인들도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은데 죄인 취급 받던 삭개오는 구원을 받았다. 구원보다 더 큰 은혜와 복이 무엇인가? 없다. 


10절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

주님께서 삭개오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여리고 마을로 지나가신 것이다. 삭개오가 주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기다리다가 만났는데 주님께서 삭개오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마을을 지나가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받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우리가 주님을 진정으로 만나면 변화받을 수 밖에 없다. 

삭개오가 자기가 말한대로 했을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것이다. 인생 전체를 악착같이 죄지어가면서 돈을 모은 삭개오가 전재산의 절반을 뚝 떼어서 가난한 자들을 도왔다. 동네 전체가 들썩거렸을 것 같다. 이 마을에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을까? 한 사람의 변화가 많은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

우리도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오늘날 삭개오와 같이 주님을 만나고 행복을 누리고 주변에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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