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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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30 주일오전예배 설교(요한복음 4장 20-24절/하나님이 찾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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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4-30 19:39 조회6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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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9efw8KanMHU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대화하면서 예배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제사장이 아니고 서기관도 아니고 장로도 아닌 평범한 여인이 예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질문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성도는 예배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의 중심은 예배입니다. 신앙이 어떤가를 보려면 예배를 보면 됩니다. 예배를 위해 힘쓰지 않고 바른 예배드리기 위해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살아 있는 신앙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배 없이 하나님 만날 수 없고, 예배 없는 신자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의 중요성을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살피겠습니다.

1. 참되게 예배하는 자
23절에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이 말씀은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이 많지 않다는 뜻입니다. 제대로 예배하는 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왜 지으셨습니까? 사람은 왜 사는 것입니까? 인생의 목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데 있습니다. 이사야 43:21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나를 찬송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아 누리며 하나님으로 기뻐하며 살라고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해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배를 위해서입니다. 그 이스라엘은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다가 결국 망했습니다. 그 화려하던 솔로몬의 성전도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있습니다. 고전 6:20에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구원받은 성도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은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봉사 잘하는 사람을, 헌금 많이 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를 찾는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사업 잘하는 사람, 정치 잘하는 사람, 일 잘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괴로워하신 적이 많습니다. 제사를 잘못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잘못된 제사가 많았습니다.
20절에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질문한 내용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주전 400경에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우고 거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1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이 말씀은 예배드리기 위해 예루살렘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은 교회에 모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땅에 세워진 최초의 성전이 솔로몬 성전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로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무 곳이나 가까운 곳에 가서 제사드렸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이후 산당을 다 폐지하고 아무 곳에서나 자기 맘대로 제사드리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택하신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에서만 제사드렸습니다. 신명기 12:13-14에 보면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신약에 와서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처럼 짐승 제사를 드리지 않고 예배를 드립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복용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마태복음 18:20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우리가 모여서 예배드릴 때 주님도 그곳에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곳에 예수님께서 계시겠죠? 예배드리면서 이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 중에 계신 하나님을 의식해야 합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린다면 우리의 예배가 달라질 것입니다.

2.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
23절에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명시한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 성령을 통해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에게 늘 은혜를 내려주시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첫 부분은 바로 예배의 대상을 알려줍니다. 출애굽기 20:3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하나님은 유일한 예배의 대상입니다. 이 예배를 위해 많은 성도들이 목숨을 걸었습니다. 로마제국에는 황제숭배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거부하던 많은 성도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던 많은 목사님과 성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것은 예배의 대상이 오직 하나님뿐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범하기 쉬운 위험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를 드리면서도 너무나 사람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도, 찬송하면서도, 헌금을 하면서도,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나가서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영적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우리와의 만남입니다. 예배는 신령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3.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
23절에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두 번이나 강조하여 말씀한 것이 무엇입니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첫째, 영으로 드리는 예배. 우리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영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영으로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영적인 행위입니다. 우리의 거듭난 영이 하나님과 영으로 교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의 영을 보십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육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기분과 감정을 앞세웁니다. 영적인 예배를 드리려고 힘쓰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예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자기만족을 추구합니다. 경건하고 거룩한 예배 보다는 세속적인 예배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영으로 예배드리려면 성령의 감동과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 영으로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거듭난 영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고 영화롭게 할 때 그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는 것이 예배입니다. 찬양을 드리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영으로 은혜를 받고 힘을 얻습니다. 영으로 예배드리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하고 갈망해야 합니다. 온 마음과 힘을 다해서 영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둘째, 진리로 드리는 예배. 진리 말씀에 맞게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로 그의 제물만 받아주셨습니다. 가인은 진리에 맞지 않게 제사했고, 아벨은 진리에 맞게 제사드렸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후 남쪽 유다는 하나님 말씀에 맞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드리고, 레위 지파 중 아론의 자손으로 제사장을 세우고, 절기도 7월 15일에 지켰습니다. 그러나 북쪽 이스라엘은 벧엘과 단에 가서 금송아지 앞에서 제사드렸습니다. 제사장도 아무나 세웠습니다. 절기도 8월 15일로 바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버림을 받았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예배는 하나님 앞에 나가서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배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혼자 예배드리고, 찬양대가 그 예배를 도와주고, 대표기도 하는 사람은 협력하는 자이고, 성도들은 구경꾼인 줄로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배가 끝난 후에 평가합니다. ‘찬양대가 좋았다. 안 좋았다. 설교가 은혜로웠다 별로였다. 기도를 잘하더라, 못하더라.’ 이런 사람은 예배를 바로 드린 사람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는 주체가 누구입니까? 누가 예배를 드리는 당사자입니까? 나 자신입니다. 여러분 자신입니다. 목사님이나 찬양대원들이나 대표 기도하는 분들은 성도들이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창세기 22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이삭은 나무를 지고 아브라함은 불을 들고 갑니다. 가면서 아들 이삭이 아버지께 묻습니다. 창세기 22:7에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번제 할 어린 양입니다. 다른 것이 다 준비가 되어 있어도 양이 없으면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번제할 어린양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은 무엇을 바치려고 가고 있습니까? 이삭입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가고 있었으나 이삭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 그곳에 단을 쌓고 이삭을 잡으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리고는 수풀 가운데 수양 한 마리를 준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삭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삭 대신 수양이 죽고 이삭은 살았습니다. 이 수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우리가 죽어야 할 대신에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제물 삼아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림으로 구약시대의 제사는 완전히 끝나고 이제는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는 나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내가 예배드리는 주체자인데 누구를 평가하고 판단합니까? 절대로 영화 감상하는 것처럼 예배를 감상하지 마십시오. 구경꾼처럼 예배를 구경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예배의 평가자가 아닙니다. 예배를 받는 사람도 아니고 예배의 심판자도 아닙니다. 예배를 잘 드렸는지 못 드렸는지 판단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예배를 제대로 드렸는지 아닌지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먼저 압니다. 나 자신이 지루하게 여기며, 부담스럽게 여기고, 귀찮게 여기며, 예배드린다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찬송하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말씀을 들으십시오. 우리가 믿음으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시면 그것이 우리에게 기쁨이고 은혜입니다.

4.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자
시편 96:8-9에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하나님이 얼마나 높으십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존귀하십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크십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십니까? 그 하나님께 합당한 것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을 드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무엇이든지 최상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시간을 드릴 때도 최상의 것으로, 물질을 드릴 때에도 최상의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문제는 가장 좋은 것을 누가 가지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을 자기가 써버리고 남은 찌꺼기를 가지고 드린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말라기 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병들고 눈멀고 저는 것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자기가 쓰고 몹쓸 것만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귀한 것은 자기를 위해서 다 쓰고, 찌꺼기 시간으로 예배드리고, 찌꺼기 돈으로 헌금하고, 찌꺼기 힘으로 봉사하고, 찌꺼기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고린도후서 9:5에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예배 순서를 맡은 사람들은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목사님이 준비 없이 설교하는 목사님은 없습니다. 이 말 했다가 저 말 했다가 하면 하나님 앞에 잘못하는 것이고 성도들에게도 합당치 않은 일입니다. 또한 교인들도 말씀 들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야 말씀을 잘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일찍 나와서 한 주간을 돌아보며 부족한 것을 회개하고 은혜받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대표 기도하는 사람은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받은 말씀을 가지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서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참되게 예배한 것입니다.
참되게 예배하는 자,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찾는 그런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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