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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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8 주일오전예배 설교(요한계시록 1장 9-20절/주의 날에 받은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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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5-28 18:14 조회5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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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qHs5McdYVho


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기록했습니다. 기록한 장소는 밧모섬입니다. 밧모섬은 소아시아 해안의 불모의 바위섬으로 당시 죄인들을 유배 보내던 곳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이 밧모라 섬에 유배되어 있었습니다. 그 요한이 주의 날에 큰 은혜를 받습니다. 


1. 사도 요한의 형편

9절에서 사도 요한은 자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예수의 환난”이란 예수님 때문에 받는 환난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사느라고 받는 환난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지 않으면 환난이 없고 평안할 텐데 예수님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환난을 받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때부터 환난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죽였고, 예수님 믿는 성도들을 죽였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었고, 야고보 사도도 순교를 당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에도 큰 환난이 있었습니다.

로마에서는 황제숭배를 강요했습니다. 황제숭배 자에게는 큰 혜택을 주고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은 심하게 박해했습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님만 주님으로 섬기고 주님의 말씀만 따르다가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네로 황제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죽였습니다. 네로는 로마 시내에 불을 지르고 기독교인이 불을 질렀다고 뒤집어씌워서 수많은 기독교인을 사자 밥이 되게 하고 불태워 죽였습니다. 도미티안 황제 때는 박해가 더욱 심했습니다. 로마가 다스리는 모든 국가에까지 박해가 심했고 그 시기에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런 박해 가운데서 말씀을 지키고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요한을 붙잡아 끓는 기름 가마에 던졌는데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그러자 밧모섬에 유배 보냈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예수님의 환난에 동참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환난에 동참하는 자는 예수님 나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환난에 참여하려면 참음이 필요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지키고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면 여러 모양의 환난이 옵니다. 그러나 환난을 받으면서도 참고 견디는 사람이 예수님의 나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2. 주의 날에 들은 것

10절에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주의 날은 지금의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도 주일이고, 부활하신 주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날도 주일이고, 사도행전 2:1에 보면 보혜사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도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말씀을 주신 날도 주일입니다. 주일은 성부 성자 성령께서 은혜 주신 날입니다. “성령에 감동되어” 사도 요한이 성령 충만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세상 사람에게 버림받고 밧모섬에 유배되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고 그를 찾아와 주시고 그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요한은 영적인 세계에 깊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성령의 특별한 역사 가운데서 계시를 받았습니다.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밧모섬에 유배되어 간 사도 요한에게 성령의 감동이 크게 임하여 나팔 소리와 같은 큰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그 음성이 사도 요한의 심령을 깨우고 사로잡았습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 말씀이 어떻게 들립니까?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으로 들립니까? 혹은 꿈속에서 듣는 것처럼 아련하게 들리지는 않습니까? 남들은 다 듣는데 나만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 속에 깊이 들어와야 합니다. 안 들을래야 안 들을 수 없고,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크고 강한 음성으로 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강하게 임해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이고 복입니다. 

12절에 사도 요한은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듣고 몸을 돌이켰습니다. 몸을 돌이켰다는 것은 회개했다는 말입니다. 세상으로 향하고 있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로 돌이켰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온전히 돌이킬 때 신령한 은혜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돌이킬 때 금 촛대를 보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돌이키지 않으면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우리도 세상 중심으로 살고, 육신 중심으로 살던 생활에서 돌이켜야 신령한 은혜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요한에게 들렸던 그 음성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1절에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이것이 요한이 들은 음성입니다.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는 여기 나오는 일곱 교회 외에도 여러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곱 교회만 선택하여 말씀하신 것은 신약시대의 모든 교회가 이 일곱 교회의 형편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약시대의 모든 교회는 이 일곱 교회 중 하나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주의 날에 본 것

첫째. 금 촛대를 봄. 12절에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사도 요한이 몸을 돌이켜 그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 무엇을 보았습니까? 일곱 금 촛대를 보았습니다. 일곱 금 촛대는 무엇입니까? 20절 끝에 보면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금 촛대는 교회가 금 촛대와 같이 아름답고 귀한 것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이 피 흘려서 값 주고 사신 교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생명이 넘치고 금 촛대와 같이 아름답고 보배로운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귀한 보배요 영원불멸의 존귀한 것이 교회입니다. 

촛대는 빛을 비추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밤같이 어두운 세상입니다. 죄악이 가득한 암흑 세상입니다. 교회가 빛을 비추어야만 합니다. 마태복음 5:14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했습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진리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세상에 알리는 곳은 교회뿐입니다. 교회가 빛을 비추지 않으면 세상은 소망이 없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을 보여주지 못하면 세상은 망합니다. 예수님 안에만 구원이 있고 교회 안에만 축복이 있습니다. 

교회를 금 촛대라고 했습니다. 이 촛대의 재료는 금입니다. 순금으로 만든 촛대입니다. 위에서 봐도 금, 아래에서 봐도 금, 옆에서 봐도 금입니다. ‘금’은 보배이며 보물입니다. ‘금’은 믿음을 상징합니다. 교회는 믿음으로 성립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금은 어디에 갖다 놓아도 금입니다. 교회의 모든 일은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예배도 믿음으로, 회의도 믿음으로, 친교도 믿음으로, 봉사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만남. 13절에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인자 같은 이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주님이 계신 곳이 어디입니까? 촛대 사이에 계셨습니다. 계시록 2:1에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 촛대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사도 요한은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거니시는 영광스럽고 엄위하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신령한 몸으로 교회에 항상 계시며,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여 주십니다. 우리 눈에 주님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도 촛대 사이에 계십니다. 교회가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은 주님이 교회에 언제나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교회같이 존귀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깨달아져야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를 위해 충성하게 됩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이것은 제사장의 옷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대신 죽어주시고 자신의 몸을 제물로 삼아 속죄 제사를 드려 주신 대제사장입니다. “가슴에 금띠를 띠고” 예수님이 왕이심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이며 왕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며,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이기신 왕이십니다. 

14절에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이것은 예수님의 완전한 성결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고 완전하게 깨끗하고 의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며 의롭게 사셨습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주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모든 것을 보십니다.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 심령 골수까지 다 통찰하시며 과거와 현재의 모든 숨은 죄도 다 아십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같이 다 드러나서 숨길 수가 없습니다(히 4:13).

15절에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풀무불에 단련한 주석과 같은 견고한 발로 대적들을 밟고 죄인들을 심판하시면 아무도 견딜 수 없습니다(사 63:1-6). 또 주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와 같은 것은 큰 위엄과 권세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말씀 한마디면 천하에 있는 것이 벌벌 떱니다.

16절에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은 교회의 사자를 가리키는데 예수님이 오른손으로 교회의 사자들을 붙들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사자를 붙들고 쓰십니다.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날선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아서 우리의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예수님의 얼굴은 영광이 충만하여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런 주님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주의 날 말씀을 듣다가 그 말씀 속에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셋째 자기 자신을 봄. 17절에 보면 요한은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앞에 엎드러졌습니다. 주님의 모습이 너무나 황홀하고 영광스러워서 두려움과 떨림에 압도를 당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 앞에서 자기의 모습을 볼 때 죄와 허물로 너무 한심하기 때문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광의 하나님 앞에서 엎드러져 죽을 수밖에 없는 추한 존재입니다. 그렇게 거꾸러진 요한을 주님이 오른손을 얹고 위로하시며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말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이렇게 우리가 넘어질 때 찾아오시고 붙들어 주시고 손을 얹고 위로해 주십니다. 주의 날 우리도 이런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니” 시작이며 끝이라는 뜻입니다. 창조이시며 심판자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의 시작이요,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분도 예수님입니다.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요한을 붙들어 주셨고, 지금도 붙들어 주시며 나중에도 붙들고 쓸 것이니 두려워 말고 일어나도록 주님께서 자비로운 음성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18절에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예수님이 살아계십니다. 전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3일 만에 부활하셨고, 지금 살아 계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살아계십니다. 큰 환난을 당하고 사도 요한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겠습니까? 죽음을 이긴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부활의 주님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곁에 계십니다. 금 촛대 사이를 다니시며 성도를 살피고 붙들어 주고 계십니다. 약한 자를 붙들어 주시고, 넘어져 쓰러진 자들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19절에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사도 요한은 이 말씀을 순종하여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기록했습니다. 주의 날에 성령 충만했던 것과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은 것과 몸을 돌이키다가 일곱 금 촛대를 발견한 것과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을 본 것을 다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계시로 받은 장차 될 일, 즉 말세에 일어날 예언의 말씀들을 다 기록했습니다. 그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은 마지막까지 자기의 사명을 다 감당했습니다. 밧모섬에서 유배 생활하면서도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여 전했습니다. 우리도 내가 들을 것, 내가 본 것,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20절에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 곧 교역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 종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십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종들에게 먼저 알려주시고 종을 통하여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교회를 직접 책망하거나 칭찬하지 않으시고 교회의 사자를 책망하거나 칭찬하셨습니다. 교회에서 교역자의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주님이 오른손으로 붙들고 있는 별들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주의 날에 모여서 예배드립니다. 주의 날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그 말씀을 듣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 금 촛대인 교회를 발견하고 그 교회 안에 거니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난 주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런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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