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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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4 수요예배 설교(고린도후서 12장 1-10절/바울이 받은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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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5-25 04:46 조회5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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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상 : https://youtu.be/Z65_DLe1xHs 


20230524 수요저녁예배 고린도후서 121-10절 바울이 받은 은혜

 

1. 바울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감(1-6)

2. 가시를 주심(7-9)

3. 약한 것을 자랑함(9-10)

 

바울이 신기하고 놀라운 간증을 한다. 그 간증을 매우 조심스럽게 하면서 제 3자의 경험인 것처럼 표현한다. 이 환상은 주님이 주신 신비한 계시였다. 14년 전에 셋째 하늘, 곧 낙원에 다녀온 것이다.

 

1

바울은 명예 영광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랑하는 것은 무익하고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거짓 교사들이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대적을 했기에 부득불 자랑했다.

무엇을 자랑했나?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고 했다. 환상은 신비하고 영적인 것을 보는 것이고, 계시는 가려져 있전 것을 열어서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이 셋째 하늘에 다녀온 것을 말하면서 이것이 주님이 주신 환상과 계시라고 했다. 이것은 표준 계시로 주신 것이다. 바울이 사도이기 때문에 주신 것이고, 성경에 기록하게 해서 우리에게도 알게 하셨다. 표준 계시는 사도 시대에 종결되었다. 오늘날 꿈, 환상을 보았다고 하면서 계시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옳지 않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3:5)

3절에는 계시로 비밀을 알게하셨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세대에는 알리지 않겠다고 하셨다. 66권 성경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더 이상 주시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만 표준 계시로 삼고 성경만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오늘날도 계시 받았다고 주장하면 볼 것도 없이 잘못된 것이다,

 

2

"셋째 하늘" 첫째 하늘은 물질계, 대기권이고, 둘째 하늘은 은하계이고, 셋째 하늘은 낙원이다. 즉 천국을 가리키는 것이다. 바울이 하늘나라에 갔다 왔는데, 이것은 자기 노력으로 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신기한 역사였다. 바울은 자기가 체험했다고 하지 않고 그 사람을 안다고 했다. 겸손한 표현이다. 자기를 자랑하려고 하지 않고. 사실임에도 드러내지 않고 감추어 두려고 한다. 오늘날 종종 천국에 갔다 왔다 거나 지옥에 갔다 왔다면서 이상한 말을 하고 자랑하고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데 주의하고 물리쳐야 될 일이다.

바울이 낙원에 다녀온 것과 어떻게 다른가? 세밀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셋째 하늘에 다녀온 뒤에도 자기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신비주의자들의 환상은 입신한 것처럼 몽롱한 상태이다.

바울은 자기가 노력해서 간 것이 아니다. 기도해서 억지로 간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서 이끌려서 갔다. 이것이 큰 차이이다. 신비주의자들은 자기가 가기를 원하고 노력한다. 그래서 갔다 왔다고 한다. 이것이 말도 안되는 엉터리 주장이다.

바울은 14년 전에 한번 갔다 온 것을 이번에 밝히고 있다. 하늘나라에 갔다 온 것 자체도 놀랍지만 그런 체험을 하고서도 14년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다고 처음 밝히는 것도 놀랍다. 사도행전에서 다른 내용을 다 말하면서 이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고린도교회에서 여러 말씀을 전하면서 이 내용은 한번도 밝히지 않았다. 이렇게 신비하고 은혜의 체험을 하고서도 한번도 말하지 않은 것도 놀라운 일이다.

어떤 사람은 이상한 일 한번만 있어도 드러내려고 한다. 바울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바울이 셋째 하늘에 간 것은 성경과 일치하고 성경 진리와 같다. 그러나 신비주의자들의 체험은 성경에 맞지 않다. 천국에 아파트를 짓고 있다고 말한다. 천국은 창세전에 완성되어 있다. 지금 건물 짓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건물 짓듯이 짓는 것이 아니다. 신비주의자들의 주장은 성경과 맞지 않는 것으로 알고 물리쳐야 한다.

 

3

바울은 자기가 체험했다고 밝히지 않고 있다.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안다고 하고 넘어간다. 참 겸손한 모습이다. 할 수만 있으면 자랑하지 않고 이런 내용도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4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셋째 하늘을 낙원이라고 했다. 하늘나라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굉장하고 신기한 체험을 했다. 에녹과 엘리야는 죽지 않고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기적적인 체험을 했다. 바울도 하늘나라에 다녀오는 신비한 체험을 했고 사도 요한도 하늘나라를 본 것을 기록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이런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것은 그대로 믿어야 한다. 신비하고 어려운 일이라고해서 안믿으면 안된다. 창조, 부활, 죽은 자를 살리신 것, 홍해 갈라진 것, 바울이 낙원에 다녀온 것을 다 믿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에 없는 것은 믿으면 안된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말해도 성경에 없으면 믿으면 안된다.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황홀하고 놀라워서 세상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이후에 죽으면 천국에 갈텐데 지금 상상하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너무 좋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보석으로 설명을 했다. 실제로 그런 보석으로 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황홀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가면 너무 몰랄 것이다.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사람이 말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계시로 알려주신 것, 환상으로 보여주신 것을 직접 보았다. 사도로서 직접 체험했는데, 이렇게만 말하고 본 것을 다 기록하지는 않았다.

그것도 참 성령의 감동 가운데서 분별하여 이와같이 한 것이다. 해야될 정도까지 기록하고 그 이상은 하지 않는 분별력이 있었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랑하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든지 하나님의 뜻만 이루고 진리만 증거하려고 했다.

참고로 11장에서 바울이 무시무시한 많은 환난과 시험을 겪은 것을 고백했다. 자랑한다고 하면서 이것을 말했다. 그런 환난과 핍박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왔겠나? 하나님의 은혜이고 말씀을 붙들고 이긴 것도 있겠지만 천국을 보고 온 것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스데반 집사님도 비슷한 체험을 했다.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 평안했다는 것이다. 은혜가 충만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는가? 주님을 보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큰 은혜를 경험하면,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면 고난을 견딜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생긴다.

 

5

만약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면, 자랑할만 하다고 인정했다. 대단하고 자랑할만한 일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바울 자신을 위해서는 약한 것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했다. 설명할 수 없는 놀랍고 신기한 것을 보고 말하지 않았다.

6

바울이 이것을 다 말해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는다. 참말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환상과 계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다 말하면 바울을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렵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받은 계시가 많고 놀라운데, 바울은 더 특별히 여기고 높이면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고 자신이 교만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고 그만 둔다고 했다.

바울같은 사람도 사도이고 실제로 보았던 체험인데도 말하지 않고 있다. 오늘날 엉뚱한 사람들이 천국 갔다 왔다고 하는 것은 분수에 어긋나고 도리에 어긋난 지나치고 교만한 모습이다. 남들이 모르는 이상한 소리 더 한다고 해서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다. 성경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이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7-10

바울이 천국 다녀온 것은 자랑하지 않고 가시를 주신 것을 자랑한다. 가시가 무엇일까? 여러가지 해석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바울의 눈병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4:15)

바울이 성경을 기록할 때 다른 사람에게 대필하게 하고 마지막에 서명을 했다고 했다. 바울은 눈병이 있었다. 그 눈병을 가시라고 표현했다. 가시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이다. 그런데 없어지지 않고 계속 몸에 남아서 고통과 불편을 주는 것이다. 남 보기에는 멀쩡해 보인다. 그러나 가시가 살살 찌르고 아프게 하고 불편하게 한다. 평안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도 살면서 가시가 있을 수 있다. 질병, 가족들, 직장에 괴롭히는 자들, 육체의 여러가지 약점과 부족한 점 등 가시로 작용할 수 있다. 아무튼 바울은 가시를 자랑했다. 그러면서 이 가시를 사탄의 사자라고 했다. 왜 이런 표현을 했다. 예수 믿기 전에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고 잡아 가두고 죽이는 일에 앞장 섰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주님께서 빛으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그때 바울의 눈이 멀었다. 나중에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다 나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마귀의 앞잡이 노릇을 할 때 생긴 것이라고 사탄의 사자라고 부른 것이다.

또 한가지는 이 가시가 실제로 마귀의 도구 노릇을 해서 바울을 늘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고 낙심하게 하고 원망불평하는 죄를 짓게 하는 도구로 이용되기 때문에 사탄의 사자라고 한 것일 수도 있다.

바울에게 가시를 주시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사람 생각에는 가시가 없었으면 더 많은 일을 하고, 성경도 더 기록하고, 전도도 더 많이 했을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에게 가시가 필요해서 주신 것이다. 가시 자체는 찌르고 괴롭게 하고 해롭게 한다.

그러나 받은 계시가 너무 커서 자만하지 않게 하려고 주셨다고 했다. 교만하면 하나님 앞에서 버림 당하고 망할 수 밖에 없다. 성경에서 모든 죄를 다 나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죄 중에서도 가장 미워하시는 죄로 교만을 들었다. 교만은 죄의 모판과 같다. 가징 기본적인 죄이다.

“[16]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17]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6:16~17)

모든 죄 중에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교만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8:13)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16:5)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18:12)

교만하면 망한다. 그래서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가시를 주신 것이다. 가시 없이 교만한 것보다 가시를 가지고 교만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다. 우리에게 가시가 있다면 겸손하게 하고 은혜로 주신 것으로 받아야 한다. 가시 때문에 오히려 복을 받고 기뻐하는 자리에 이르게 될 것이다.

바울이 받은 계시가 너무 크고 능력이 많아서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할 때 사람들이 우러러 보고 높이고 신기하게 바라볼 때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교만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럴 때마다 가시가 푹푹 찔러서 교만하지 않게 했다. 바울을 깨우치게 해서 교만하지 않게 하므로 가시가 유익이 되었다.

 

9-10절에 약하다는 말이 네번 나온다. 약한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가시를 주셨다. 바울은 가시를 없애달라고 특별히 세번 간구했다. 보통 기도한 것이 아니고 특별히 기도했다. 이것을 좀 없애달라고 특별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다.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세번 기도한 응답이 이것이다. 즉 가시를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약한 모습대로 지내라는 것이다. 바울은 가시를 통해서 깨닫는다. 하나님이 자신을 약한 존재로 만드시고 사용하신다고 믿었다. 그 약점을 감추거나 숨기려고 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았다.

우리도 약한 존재인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흙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다. 능력이 있다고 권세가 있다고 교만해지면 반드시 넘어진다.

약한 사람이 강해지면 은혜라고 말한다.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바울은 거꾸로 말한다. 가시 때문에 비참해졌는데 은혜라고 말한다. 우리도 이것이 은혜인줄 알아야 하겠다. 부자로 살다가 가난해져도, 강하다가도 약해져도, 건강하다가 병들어도 은혜인줄 알아야 한다. 겸손하게 만들어서 귀하게 쓰시려고 은혜를 주셨다.

 

바울은 가시를 크게 기뻐하는 자리까지 이른다.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숨기지 않고 자랑한다. 나는 이런 가시를 가지고 사는 약한 사람이라고 밝히 말한다. 그리고 기뻐한다. 참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다.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바울을 시험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무엇을 가지고 바울을 넘어뜨리겠는가? 돈 있는 사람에게서 돈 빼앗고, 권세 있는 자에게 권세를 없애면 시험 당한다. 부끄러운 것을 숨겨주면서 다 폭로하겠다고 하면 시험 당한다. 바울은 자신의 약한 것, 부끄러운 것을 다 밝힌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이는 내가 약할 때 강함이라" 우리 생각과는 반대이다. 가시가 없어야 강해질 것 같다. 그런데 바울은 약할 때가 강할 때라고 했다. 가시가 있을 때가 능력이 머무르는 때라고 했다. 가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강해지게 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부르짖고 나아간다. 그래서 더 강한 사도가 된다.

역설적인 진리인데 아주 귀한 모습이다. 내 힘, 지 지혜, 내 돈이 있으면 그것 가지고 뭘 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으니까 주님만 의지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더 강하고 능력있는 자가 되었다.

약한 사람도 얼마든지 쓰임받을 수 있다. 가시가 있어도 얼마든지 큰 일을 할 수 있다. 겸손하고, 주님 의지하고, 말씀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혹 병이 있고 약하고 돈이 없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못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바울처럼 주님만 의지하고 살아가면 귀한 종으로 쓰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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