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1 주일오전예배 설교(고린도전서 13장 8-11절/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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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PR8KKXz8qnI
성도들이 신앙 생활하면서 궁금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믿음은 어느 정도 자라났을까’ ‘나의 영혼은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을까?’ ‘나의 인격은 얼마나 성숙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나 신앙 인격, 그리고 영적인 성숙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라도 자기 인격과 믿음의 크기를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신체적 연령과 정신적 연령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신체적인 나이는 많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유치한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있고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인격이 성숙하고 생각이 깊고 말하는 것이 어른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영적인 성숙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반드시 신앙이 성숙한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믿었다고 반드시 믿음이 어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11절에 ‘내가 어렸을 때에는’이라는 말과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두 가지가 다 ‘신앙적으로 어렸을 때’와 ‘신앙적으로 장성한 사람이 되었을 때’를 가리킵니다. 어린아이는 자라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성숙한 사람이 되면 어린아이의 일을 버립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 수준의 말과 행동을 하고 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른스러운 말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외부적 활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예배에 잘 참여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헌금을 많이 하고, 봉사를 열심히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내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속사람이 변하고 인격이 성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생활도 변하고 달라질 것입니다. 영적인 성장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며 동시에 우리에게는 큰 축복입니다. 갈라디아서 4:19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에베소서 4:22-24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장성한 신앙이란 하나님의 성품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은 사람이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의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다. 베드로후서 1:4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한 목적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더욱 힘써서 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했습니다. 신성한 성품이란 신적인 본성을 가리킵니다. 사람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입니다. 베드로후서 1:5-7에 성도가 갖추어야 할 성품은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입니다. 이 여덟 가지 덕목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것을 영적 성숙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1. 믿음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고, 믿음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믿음으로 성령 받고, 믿음으로 축복받고, 믿음으로 천국까지 이릅니다. 믿음이 기본이고 모든 것은 믿음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신앙생활은 시작도 하지 못한 것이고 못하고 영적 성장도 불가능합니다.
2. 덕
“믿음에 덕을” 덕은 선행이며 믿음의 실천입니다. 믿음이 있노라 말하면서 그 믿음을 실천하는 덕스러운 생활이 되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아직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 믿음입니다. 덕은 경건한 생활을 통해서 남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내 믿음 생활이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덕입니다. 믿음은 있으나 덕이 없는 성도는 남에게 욕을 먹고 교회에 손해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4:12에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성도는 덕을 세우는 데 힘써야 합니다. 우리 몸에 비유하면 믿음은 뼈와 같고, 덕은 살과 같습니다. 믿음만 있고 덕이 없는 사람은 뼈만 있고 살이 없는 사람과 같습니다.
3. 지식
“덕에 지식을” 여기 지식은 성경 말씀에 근거한 올바른 지식을 말합니다. 덕만 있고 지식이 없으면 마귀에게 속아 바른 신앙의 길을 걷지 못하게 되고, 이단 사설에 속아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진리 지식을 가지지 못하면 눈먼 소경이 되어 갈 바를 알지 못합니다. 신앙이 어린 사람의 특징은 신앙의 모습을 갖추기는 했는데 미숙합니다. 경험이 적고 지식이 불완전하고 분별력이 없습니다. 알기는 아는데 부분적으로 조금씩 아는 지식입니다. 고린도후서 13:9에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고린도 교인들이 예언, 방언, 우상 제물, 은사, 결혼문제, 부활, 헌금 등 알기는 다 압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알았습니다. 그 부분적 지식으로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에베소서 4:13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는 아직 온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인격적으로나 생활면에서나 신앙적으로나 더 성숙해져야 합니다.
4. 절제
“지식에 절제를” 절제란 자기 극복, 자기 통제를 의미합니다. 자기를 통제하여 하나님께 합당한 것을 하고, 합당치 않은 것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식에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로 알려주는 것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지 않은 것을 알려고 하면 교만이고 미혹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 시간, 건강, 힘, 환경을 절제해서 하나님께 합당하게 사용하고, 합당치 않은 경우에는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미숙한 사람일수록 자기의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를 못합니다. 분노, 염려, 초조감, 두려움, 미움, 짜증, 욕심 등의 감정을 잘 통제하지 못합니다.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작은 일에도 분노하고 화를 냅니다. 시기와 질투가 많습니다. 때때로 감정을 잘못 폭발시켜서 사랑하는 가족이나 이웃에게 본의 아니게 많은 상처를 주고 주변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줍니다. 장성한 사람은 정서적인 안정감을 가집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를 다스리고 조절합니다.
5. 인내
“절제에 인내를” 인내는 어렵고 힘든 것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인내가 없으면 절제할 수 없고, 믿는 일도 잘할 수 없습니다. 절제는 인내력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인내와 절제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절제의 생활을 완성시키는 것이 바로 인내이기 때문에 절제에 인내를 더해야 합니다. 잘 참는 사람이야말로 절제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인내로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이고, 욥은 인내로서 고난을 이기고 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처럼 인내는 정말 우리 신앙생활에 꼭 필요한 덕목이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격입니다. 로마서 5:4에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22에 보면 인내는 성령의 열매 중 하나입니다. 마태복음 24:13에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6. 경건
“인내에 경건을” 경건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사는 생활입니다. 방탕하지 않고, 더럽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헌신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경건은 걸음걸이를 천천히 하고 성경책을 가슴에 품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겉치레로 꾸미며 외식했습니다. 거룩한 체하고 경건한 체했습니다. 이런 외식과 겉치레로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는 없습니다. 참 경건은 겉모양만 꾸며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떠나고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며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7-8에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7. 형제 우애
“경건에 형제 우애를” 경건해야 형제 우애할 수 있습니다. 형제 우애를 옛날 번역에서는 화목이라 했습니다. 이 화목은 부드러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과 서로 섞여 어울리고 하나가 되며, 자신을 희생하여 타인과 화합하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는 예수님의 피로 죄 씻음을 받고 예수님에게서 새 생명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한 가족이며 형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형제로 여기며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형제 우애입니다. 형제 우애는 상대방을 배려하며 화목한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때는 자기밖에 모릅니다. 내 생각, 내 욕심, 내 편한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믿음이 자라나면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고 교회 생각도 하고 이웃도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웃을 위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성숙한 사람은 말 한마디를 해도 남을 배려해서 말합니다. 일을 할 때도 남을 배려해서 일합니다. 옷을 입을 때도 남을 배려합니다. 사람이 성숙했다는 증거는 그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바울이나 스데반 같은 분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사랑하고, 모든 택한 백성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기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풉시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합니다. 성숙한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남을 생각하고 남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8. 사랑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신앙의 성숙도를 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랑입니다. 여기서 사랑은 아가페 사랑, 즉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는 참사랑을 의미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과 같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자신의 목숨을 주신 것과 같은 사랑입니다. 이런 참사랑은 신앙이 성숙한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 성숙의 기준은 얼마나 오래 믿었느냐 하는 것도 아니고, 직분이 무엇이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얼마나 사랑을 실천하고 사랑을 베푸느냐가 기준입니다. 로마서 13:8에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을 행하는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고, 가장 큰 은사를 받은 사람이고,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3:3에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시기와 분쟁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다투고 싸우는 것입니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다투고 싸웁니다. 조금만 자기 맘에 안 들면 울기도 하고 떼를 씁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나이를 많이 먹고 신체적으로 장성하여 어른이 되었어도, 시기와 분쟁이 있다면 아직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자라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면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갑니다.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다가 팔아먹은 형들과 그런 형들을 용서하고 사랑한 요셉, 누가 성숙한 사람입니까? 다윗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죽이려고 한 사울 왕과 그런 사울 왕을 용서하고 사랑한 다윗, 누가 더 성숙한 사람입니까? 대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스데반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누가 더 성숙한 사람입니까?
베드로후서 1:8절에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이 8가지 덕목이 있으면 영적으로 성숙한 자라는 뜻입니다. 9절에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이 8가지 덕목이 없는 자는 영적으로 맹인과 같다는 것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시기 바랍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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