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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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9 수요예배 설교 (마태복음 8:18-34 / 풍랑을 잠잠하게 하신 예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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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6-05-04 10:03 조회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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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fH92frtUWN8


(설교요약)  

 

마태복음 8장은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을 집중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시고, 백부장의 하인을 말씀으로 고치시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셨으며, 많은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치유 사역을 통해 주님의 신적 권위가 드러나자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사람은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 예수님의 능력을 보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 사람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1. 제자도의 본질

18절에서 예수님은 무리가 자신을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사역의 성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인기와 환호에 머무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야 할 길, 곧 십자가의 길을 아셨습니다.

그때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서기관은 당시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중요한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배척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고백은 매우 대단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열심을 무조건 칭찬하지 않으시고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세상적인 안정과 편안함을 보장하는 길이 아님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고난의 길이며, 멸시와 조롱을 받는 길이며,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지만, 그 복은 세상적 성공과 안락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고, 주님과 동행하는 복입니다.

이어서 또 다른 제자가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부모 공경을 명령합니다. 예수님도 부모 공경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의 죽은 자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뒤의 죽은 자들은 육신적으로 죽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부르심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우선되어야 함을 가르칩니다. 성도는 가족을 사랑해야 하지만, 가족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을 가장 사랑할 때 가족도 바르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자도의 본질입니다.


2. 풍랑을 잠잠케 하심

23절에서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 배에 오른 제자들에게 평안한 항해가 아니라 큰 풍랑이 닥쳤습니다. 24절은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고 말합니다. 갈릴리 바다는 지형적으로 갑작스러운 돌풍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풍랑은 어부 출신 제자들조차 두려워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참 사람이심을 보여줍니다. 사람이시기에 피곤하셔서 주무십니다. 주님은 이땅에 계시는 동안 온 힘을 다해 사역하셨습니다. 또한 죽음의 공포 앞에서 두려워하는 제자들과 달리,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의 외침에는 믿음도 있었지만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나아갔지만,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온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의 두려움을 책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주님께서 문제 삼으신 것은 풍랑의 크기가 아니라 제자들의 작은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은 인생에 풍랑이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풍랑 속에서도 주님이 함께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자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단순한 선생이나 선지자가 아니라 자연 만물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인생의 풍랑 속에서 두려움에 삼켜지지 말고, 풍랑보다 크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3.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심

예수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이르셨을 때,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무덤은 죽음의 장소이며, 귀신 들린 자들의 모습은 죄와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인간의 비참함을 보여줍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하나님께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거룩하게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죄 아래 있는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고, 자신과 이웃을 해치며, 결국 죽음의 자리로 떨어지게 됩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을 보자 “하나님의 아들이여”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라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라고 물었지만, 귀신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믿음으로 의지하지 않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세 앞에서 두려워할 뿐이었습니다.

귀신들은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고 하시자 귀신들이 나와 돼지에게 들어갔고, 온 떼가 바다에 빠져 몰사했습니다. 이 사건은 귀신이 해롭게 하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사탄의 역사는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아니라 파괴하는 역사입니다. 또한 이 사건은 한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귀한지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돼지 떼의 손실을 크게 보았지만, 예수님은 귀신 들린 자의 회복을 더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가다라 사람들은 예수님께 떠나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들은 한 영혼의 회복보다 재산의 손실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이것이 불신앙의 비극입니다. 예수님을 눈앞에서 보고도 영접하지 않고, 주님의 능력을 보고도 감사하지 않으며, 물질 때문에 생명의 주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우리도 물질과 세상 가치 때문에 주님을 밀어내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주님, 제 삶에 머물러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이시며,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귀신을 쫓아내고 영혼을 회복시키시는 권세의 주님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단순한 위로자나 문제 해결자로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 전체의 주인이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에는 대가가 있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따르는 주님은 풍랑보다 크시고, 귀신보다 강하시며, 죽음보다 강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 앞에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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